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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은 2011년 9월에 백혈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어느 36살 노동자의 죽음을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제대 후 2001년, 비파괴검사 관련 업체에 입사하여 근 10년 동안 조선소에서 비파괴검사를 해오다가, 결국 계속된 방사능 피폭으로 백혈병을 얻게 되어 죽게 된 김씨의 이야기.

 

김씨의 죽음에 대한 <프레시안>의 논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기업의 무분별한 외주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로서 안전장비도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안전교육·안전수칙과 상관없이 일해야 하는 힘없는 비정규직들과 노동의 유연성을 핑계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려는 기업들, 그 기업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는 국가. 결국 <프레시안>은 노동자 김씨의 사망 원인으로 이 세 주체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비록 비정규직에 관련된 문제를 하필 지금 이 시기에 거론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겠냐는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프레시안>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프레시안>의 기사 중 나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 논조가 아니라 바로 그 제목이었다.  "해병대 예비역 김 씨는 왜 백혈병으로 죽었을까?"라는 기사의 제목. 바로 그것이 그 글을 읽는 나를 내내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왜 하필 해병이었을까?  

 

사실 노동자 김씨의 죽음을 다루는데 있어 '해병대 예비역'을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기사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김씨와 해병대 사이의 상관 관계는 그가 해병대를 제대하고 회사에 취업했다는 것 외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대를 제대하면 대부분 복학 아니면 취업을 택하게 되는데, 노동자 김씨는 그 군대를 해병대로 다녀왔을 뿐이다. 

 

그런데 왜 <프레시안>은 김씨의 죽음과 특별히 관련도 없는 해병대 경력을 제목에다 넣었을까? 진짜로 그들은 해병대 출신들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해병대 예비역들은 백혈병이 걸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답은 뻔하다. <프레시안>은 해병대를 언급함으로써 기사의 제목을 좀 더 섹시하게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목이 섹시한만큼 많이 클릭하기 때문이다. 당장 기사를 읽었던 나 역시도 '어느 노동자의 백혈병'이라면 읽지 않았을 기사를 '해병대 예비역의 백혈병'이라고 이해한 뒤 읽지 않았던가(게다가 단순히 사실관계만 놓고 봤을 때 제목이 거짓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비틀어진 사실관계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낱 기사 제목 하나가 무어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그와 같은 문장 하나 하나가 사회적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이것이 사회적 담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레시안>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주도하는, 얼마 되지 않은 정론 중의 하나 <프레시안> 아니던가. 그러니 기사 제목을 쓰는데 있어서도 더욱 신중해야 할 수밖에. 또한 '해병'은 어떠한가. <프레시안>이 이번에 사용한 '해병'은 우리 사회에서 국가주의, 가부장주의 등과 결합되어 가장 많은 편견을 지닌, 폭력적인 단어 중의 하나이지 않은가.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하필 해병대 군복을 입고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사회.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문장만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해병대 신화'를 무의식적으로 되새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추후 '해병'과 관련된 국가주의나 가부장주의 담론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프레시안>을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이를 기정사실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나의 우려가 침소봉대일 수도 있다. 괜히 '해병'이라는 단어만 보면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떠올리고 마는 민감한 이의 푸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추후 '해병'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담론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이 단어를 쓸 때 좀 더 꼼꼼하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프레시안>의 화이팅을 기대해 본다.


태그:#해병,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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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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