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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원장 정태인)은 새해를 맞아 2012년 한국사회를 전망하는 글을 기획했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경제분야에서는 세계경제, 그리고 가계부채와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경제를 전망하며, 사회 분야에서는 복지 확충을 중심으로 보건의료와 보육 문제를 살펴보고 증세 방안을 검토한다. - 기자말

우리나라는 2011년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9위를 차지했다. 정부와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수출이 약 5500억 달러, 수입이 5200억 달러를 기록했다. 1960년대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수립한 후 50여 년을 지속적으로 수출에 목을 매고 경제성장을 해온 결과인 셈이니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무역 1조 달러 돌파, 무조건 좋기만 할까?

무역의존도 = 상품교역량/GDP×100, 자료 : Global Insight, OECD
▲ [그림1] 무역 의존도와 민간소비 국제비교 무역의존도 = 상품교역량/GDP×100, 자료 : Global Insight, OECD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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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음은 2조 달러'라는 식의 목표를 성급히 세우기 전에 돌아볼 것이 있다. 먼저 우리의 무역 규모가 세계 9인데 비해 경제규모는 15위라는 점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래 [그림1]을 보면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90~100% 안팎으로 대단히 높다. 일본에 비해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출로 성장하고 있어 대외 변수에 취약하다는 중국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말고 아무것도 없던 한국경제가 50년 동안 땀 흘려 노력하여 5천억 달러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팔고, 또 그 만큼의 물건을 밖에서 사다가 쓸 능력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해외에 내다 팔기만 하느라 정작 50년이 지나도록 우리 자신이 윤택하게 살게 위해 나라 안에서 소비하는 규모는 상대적으로 성장하지 않다. 즉, 무역규모가 팽창하는 만큼 내수규모가 커지지는 않았다. [그림1]을 보면 우리 경제에서 민간소비의 비중은 52%로 중국을 제외하고는 주요국가 가운데에서 가장 낮다.

결국 무역 1조 달러 돌파는 수출지향형 한국경제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수와 수출의 상대적 격차가 그만큼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에는 자본과 기술, 시장 등 아무것도 없고 저임금 노동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수출지향형 공업화를 추구해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50년이 지나고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의 내수기반이나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기반이 동반 성장하지 못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세계 경제 침체, 더 이상 무역에 의존할 수 없어

소득에 비해 과도한 소비,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해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책에서 미국 경제학자이자 전 노동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한다. "너무 많은 빚이 문제가 아니고 너무 적은 소득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너무 지나치게 대출을 받은 소비자들을 비난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경솔하게 대출을 남발한 은행을 나무랐다. 어떤 이들은 자기네 물건을 수입하랍시고 우리에게 기꺼이 많은 돈을 빌려준 외국 채권자들, 특히 중국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민들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이 소비한 것이 문제"라고 비난할 때, 라이시(Robert Reich)는 "진짜 문제는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수입 이상으로 (부채를 얻어) 지출하고 소비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수입이, 경제 성장에 따라 그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무역 환경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결코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다. 지금 세계는 전통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 소비시장 국가인 미국까지 앞장서서 수출 경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나라가 경제위기로 망가진 내수시장을 대체할 외수시장, 즉 수출시장을 찾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를 위해 환율인하 경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국제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갈등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동안 수출 의존도가 크고 무역수지 흑자가 컸던 독일, 일본, 중국, 한국 같은 나라들에 대한 경계와 비난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

오랫동안 항상 당위적인 명제일 뿐이었던 내수 기반 강화가 이제는 현실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매우 절박한 문제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올해 '내수 살리기 백가쟁명'의 정치구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내수를 이루는 중요 요소로는 기업 투자나 정부소비도 있지만, 여기서는 특히 민간 소비 측면에서 들여다 보기로 하자.

민간소비 증가율 3.1% 전망하지만

일단 우리 정부는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3.1% 증가하여 지난해의 2.5%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하며 수출 부진을 상당부분 민간소비가 받쳐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우리 경제에서 내수 확장에 의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는 1990년대 전반기 정도다. 그 시기 외에 민간소비가 성장률을 추월했던 시기는 카드대출 남발이 횡행했던 1999~2002년 정도였다. 나머지 시기는 모두 민간소비가 성장률을 밑돌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취약한 민간소비 능력조차도 상당 부분은 노동자의 실제소득이 아니라 금융대출과 부채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빚을 얻어 소비를 하는 일종의 '적자 호황'이 이어진 것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적자호황의 붕괴를 의미했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은 물론 한국 역시 더 이상 빚으로 소비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민간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현재의 내수기반 약화는 바로 이런 적자호황 붕괴로 나온 결과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 단지 물가 상승률이나 소비심리 따위로 판단될 문제가 아니다.

소비와 저축은 하락, 부채는 상승

자료 : 한국은행
▲ [그림2] 민간소비 증가율과 개인부채 증가율 추이 자료 : 한국은행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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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2년 한국경제를 전망하면서 민간소비와 내수회복을 기대한다면 국민들의 소득개선 방안을 찾아야만 한다. 특히 [그림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2010년 1분기를 정점으로 민간소비가 추세적 하락을 계속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채 증가율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어 우려된다. 동시에 저축은 2009년 말을 정점으로 또 다시 줄어들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채를 늘리고 저축을 줄이는데도 불구하고 민간소비가 회복되지 못할 만큼 가계의 구매력은 약화되었다. 이는 국민들의 소득이 필요한 수준만큼 늘지 않았으며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99%의 분배 몫이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빚으로 소비를 늘려왔지만 이는 1000억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봉착하면서 더 이상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적은 소득 규모와 불평등한 분배 구조가 구매력을 약화시켜서 내수는 구조적 정체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해서 민간소비가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임금 상승과 소득 재분배가 내수를 살리는 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지난해 11월 22일 국회에서 비준된 가운데 FTA수혜업종인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수출을 앞둔 차량들이 주차돼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지난해 11월 22일 국회에서 비준된 가운데 FTA수혜업종인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수출을 앞둔 차량들이 주차돼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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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부채를 늘려 민간소비 위축을 막아보겠다는 임시적이고 편의적인 정책을 중단하는 것이다. 가계 부채는 민간소비 부양을 상쇄할 정도로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제는 체계적으로 부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다. 최근 미국의 버핏세 논의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부자 증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자 증세는 복지재원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뿐 아니라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를 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근원적인 해결책은 시장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고 중산층을 두텁게 재조직하는 것이다. 앞서 인용했던 라이시 교수는 1929년 대 공황이 가르쳐 준 핵심 교훈이 "소득분배가 적정 수준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면 경제 조직을 재구성해야 폭 넓은 중산층이 충분한 구매력을 확보해 장기적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내수기반 강화 문제는 단순히 국내 상품시장 확대의 문제가 아니다. 부채를 더 늘리지 않고 소득을 재분배하여 구매력을 회복시켜야 하는 경제개혁의 문제다. 부자 증세, 임금차별 해소, 비정규직 축소, 복지 확대 등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확대되어야 시장 소득이 개선되고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

경제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대 선거에서 내수를 살리기 위한 진정한 경제개혁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올해 성장률이 3%가 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외우내환의 타개는 수출 다변화나 새로운 해외시장 개척, 또는 물가안정에 의한 실질구매력 증대와 같은 단순한 거시정책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새해 전망, #한국 경제, #수출 , #내수, #민간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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