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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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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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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정치의 해다. 의회권력과 대통령이 한꺼번에 바뀐다. 선거는 이미 지난해 시작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예정에도 없었다. 결국 여야 정치권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무상급식은 복지논쟁의 촉매제였다. 해묵은(?) 듯한 재벌개혁도 다시 등장했다.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린 한나라당에서다. 복지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등은 더이상 진보의 것이 아닌 셈이 됐다. 또 올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발효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찾았다. 그는 복지와 양극화, 재벌개혁 등의 해법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온 경제학자다. 특히 지난해 말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신문 지면에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 6일 저녁 그와 1시간 넘게 국제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진 그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거리낌없는 직설적 화법도 그대로였다. 지난해에 운동하면서 다쳤던 다리는 다 나았다고 했다. 하지만 후유증이 아직 남은 듯 했다. 장 교수는 "책 보는거나 집필 등엔 별 영향은 없지만, 신체적으로 균형이 깨져서 스트레스를 좀 받는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 대해, 그는 "여야 모두 복지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상복지, 부자복지 모두 맞지 않는 말"이라며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복지는) 국민 전체가 함께 의료, 질병, 탁아, 실업 등의 위험에 대비해 공동으로 보험을 구매하는 것"이라며 "어차피 국민 개개인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들어갈 비용을 정부를 통해서 좀 더 싸게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 집안 쫓아내면 당장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장 교수는 "복지의 많은 부분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며 "경제구조가 고도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복지가 잘 되지 않으면 경제발전에도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벌개혁에 대해, 그는 "재벌의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 등에 대해선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의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등에 재벌이 강하게 반발한 것을 두고, "어느나라든 개혁에는 큰 반발이 따른다"면서 "(이해관계자들이) 쉽게 따라오는 개혁은 대단한 개혁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어 재벌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개선을 두고, 장 교수는 "당장 이건희 회장 집안을 쫓아내면 기분은 좋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올 것인지, 국민경제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경제보다는 단기성과나 이윤에 집착하는 국제투기 금융자본으로 재벌이 넘어가는 것에 대해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장 교수는 의구심을 보였다. "(협정) 재협상이나 폐기 등이 절차상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자체가 국제관계에서 큰 도박일텐데, 과연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FTA에 대해서, 그는 "우리가 중국보다 기술수준이 높은 자동차나 전자 분야 등에서 이익이 나는 등 장기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 농민들의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며 "그동안 양자간 FTA보다는 다자간 무역 체제 속에서 후진국의 보호장치가 더 필요하다고 말해왔는데, 그런 측면에서 한중FTA도 좋은 것은 아니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밖에 올해 각종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한나라당 비대위원의 하마평에 올랐던 것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으로부터) 비대위원 전화를 받은 적 없다"면서 "전화가 왔더라도 사양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날 장 교수와의 인터뷰는 <오마이뉴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인 '이슈를 털어주는 남자(이털남) 김종배입니다'에서 보다 생생하게 들을수 있다. (방송분은 9일 오후 5시께 올라간다.)


"복지 개념부터 바꿔야... 미래 위험 대비해 공동구매하는 것"


장하준 교수.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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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복지문제부터. 장 교수는 오래전부터 '복지국가'를 강조해왔다. 지난 2010년 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이 무슨 대단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관련 기사: "복지 좀 누리자는 게 대단한 혁명인가? 기업들, 세금 안내려면 아프리카에 가라") 요즘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복지 논쟁에 대한 그의 평가를 물었다. 장 교수는 "지난해 무상급식 논쟁 이후 (복지문제가) 핵심적인 정치 어젠다로 들어선 것 같다"면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왜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됐는지, 그의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들 스스로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봐야죠. 한때 '부자되세요'라는 구호 속에 다같이 '부자되자'고 생각했죠. 빈곤층부터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허상'이 드러났죠. 이젠 부자 문제가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갖고,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느냐'고 국민들이 깨달은 거죠."

- 얼마 전 신문 칼럼에 '복지 논쟁 제대로 해야 한다'고 쓰셨는데, 정치권의 복지 논쟁이 제대로 궤도를 타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 의문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여야 모두 복지에 대해 오해가 많다. '무상급식'이라고 하는데, '공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각종 제품이나 서비스 등에 매겨지는) 부가가치세를 내는 등 세금을 다 내고 있다."

- '당연한 권리다'라는 이야기.
"(곧장) 그렇다. (복지문제는) 경제학적으로 공동구매라고 보면된다. 의료, 교육, 탁아, 질병, 실업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해, 국민전체가 함께 돈을 내 보험을 드는 것이다."

- 보수쪽에선 부자들에게도 왜 무상으로 밥을 줘야 하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전후관계를 무시하고, 결과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왜 똑같이 대우해주냐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부자들은 같은 급식을 먹으면서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장 교수는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 손자는 같은 밥을 먹으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5배 이상 돈을 내고 먹고 있는데, 왜 이를 '부자복지'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논쟁에 빠지지 않는 단골매뉴인 '돈은 어디서 마련하느냐'는 것에 대한 그의 말이다.

"돈이 필요하죠. 정부의 쓸데없는 지출 줄여서 복지로 돌릴 수도 있고… 앞서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야죠. 국민 모두가 돈을 좀 더 내야죠. 받아들여야죠. 세금이 높아지는 것을 정부가 가져다가 어디에 태워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그게 아니거든요. 그 돈으로 어차피 들어가야 할 의료, 탁아, 실업 등을 공동구매를 하는거예요."

"KT 방식 같은 재벌개혁은 양극화만 심화 시킬 뿐"

장하준 교수.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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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은 여전히 '돈 많이 버는 사람은 봐주는 것 같고, 왜 우리만 돈을 내라고 하느냐'는 조세감정이 있는데.
"상대적인 이야기다.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부자들은 반대로 지금도 많이 내고 있는데, '더 내라'고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사회적 관행이나 정치적 합의 등을 통해서 천천히 (증세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선진국들도 부자들이 처음부터 세금을 많이 냈던 것이 아니다."

- 교수께선 우리나라도 복지국가 없이는 경제발전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복지의 많은 부분은 사실 투자로 볼 수 있다.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노동자들이 가져야 할 기술이나 지식이 크게 높아졌다. 예전에는 4주나 6주 교육받으면 일할 수 있는데, 요즘엔 1~2년 정도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복지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실패의 비용이 너무 커져 버린다."

장 교수는 "실업재교육이나 의료 등 기본적인 생활안정이 돼야 한다"면서 "실직 당한 사람들이 1~2년 (재교육)후 좀 더 생산성있는 직장을 찾으면, 개인과 나라에도 좋은 일인데, 이것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경제 고도화가 되는 나라일수록 복지가 곧 경제성장에 직결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실업과 양극화, 고용없는 성장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는 재벌 문제로 이어졌다. 재벌 개혁은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내려온 어찌보면 해묵은(?) 꺼리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경제 구조개혁의 커다란 축이기도 하다. 장 교수는 "재벌 개혁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과거부터 재벌 문제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지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노무현 정부 초기의 재벌개혁 논란에서도 당시 기자에게 "벽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냥 깰 수 있나, 대체할 벽을 세워두고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총체적 방향성 상실에 정책 진공상태")  

그의 이같은 인식은 여전하다. 장 교수의 말을 옮겨본다.

"재벌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고쳐야 할 문제들이 있죠. 하지만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죠. 하지만 소위 재벌개혁론자들의 말을 보면, 자본시장을 더 자유화하고, 주주권을 강화해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재벌을 통제하자는 거예요. 제 생각에 재벌의 힘은 약화될지 모르지만, 단기성 투기자본인 국제금융자본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꼴이 될 수도 있죠. 이는 국민경제에 좋지 않다는 것이죠."

- 과거 재벌의 지배구조를 인정해주는 대신, 좀 더 양보를 얻어내자고 주장(사회적 대타협)한 것 같은데.
"어떤 (재벌) 지배구조가 더 바람직한지 논의를 더 해봐야 한다. 지금 논의는 사실상 주주자본주의 논리 아닌가. 이건희 회장 집안이 대주주가 아닌데, 왜 (대주주) 행사를 하느냐는 것이다. 당장 이들 집안 쫓아내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오느냐는 것이다."

장 교수는 과거 진보진영 안에서의 재벌 논쟁을 의식한 듯, 어느새 목소리 톤도 한참 올라갔다. 그는 "재벌 개혁론자들이 지배구조의 모범으로 삼는 포스코나 KT 형태로 (재벌들을) 바꿔놓으면 단기 이윤을 쫓는 국제금융자본 논리에 더 충실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이 그렇게 문제라고 한다면, 차라리 재벌 개혁 이야기하는 분들이 '주요 재벌을 국유화하자'고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인터뷰 두 번째 계속됩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
한국인 최초 케임브리지대 교수 임용... '뮈르달상', '레온티예프상' 수상
장하준 교수.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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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당시 대학 동기들이 미국으로 유학갈 때, 그는 영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둥지를 튼 곳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이곳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1990년 10월 만 27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초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됐다.

1980년대 후반 미국식 개발경제학에서 벗어나 영국에서 공부한 것도 남달랐지만, 그는 영국에서도 주류경제학이 아닌 '제도경제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전공했다. 주로 경제모델과 계량화에 치우친 미국식과는 달리, 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경제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경제학이다.

지난 2002년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꼬집으면서, 그들의 위선적인 세계화를 고발한 <사다리 걷어차기>를 출간했다. 이어 2003년엔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받았다. 2005년에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로 받았다. 국내 경제학자 가운데 이들 상을 받은 사람은 장 교수가 유일하다.

특히 중남미의 반미 성향 좌파 지도자인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장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고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 교수는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등 다수의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모색해왔다. 2007년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세계 1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국제적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국내에선 2008년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되면서, 오히려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진 장 교수는 지난 2010년 8월 영국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출간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세계 주요 언론으로부터 집중조명을 받았고,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10여 개가 넘는 국가에서 번역됐다. 국내에서도 그해 11월 출간한 지 2달 만에 25만여 부가 팔려나가면서 서점가에 '장하준 신드롬'까지 일 정도였다. <그들이...>는 국내에서만 지난해 말까지 무려 50만부 이상 판매됐다.


태그:#장하준, #복지국가,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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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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