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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청 앞에 도착한 생명버스.
 강원도청 앞에 도착한 생명버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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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토) 오후 3시 30분, '생명버스'가 강원도청을 방문했다. 지난 해 12월 10일 첫 번째 방문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생명버스라고 이름이 붙은 버스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춘천시 봉의동 산비탈 아래 높게 자리 잡고 있는 도청 청사 앞에 먼저 승용차 여러 대가 주차하더니, 그 끝에 전세 버스가 한 대가 뒤따라 들어왔다. 이날 도청을 찾은 생명버스 탑승자 수는 약 100여 명. 도청 울타리 안에서 65일째 천막농성중인 시위대를 찾아오는 행렬치고는 지극히 조용한 방문이다.

경찰들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간 시민들이 농성장 진입을 위해 경찰과 격렬한 싸움을 벌여야 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로선 상당히 의아한 풍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도청 앞마당 천막농성장 주변을 흐르는 공기는 매우 무겁다. 나이 60을 훌쩍 넘은 어르신들이 이 추운 겨울날 65일째 지속하고 있는 천막농성은 그 자체 매우 힘든 싸움의 연속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 자리에 천막을 치고 두 달이 넘도록 노숙을 하게 만든 것일까?

농성장에 전시중인 사진 일부. 사진에 '18홀 골프장(100ha)을 만들기 위해서는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져 숲과 멸종위기동식물이 사라지고 주민들도 떠나야 한다. 홍천 모곡리에 장락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다'고 적혀 있다.
 농성장에 전시중인 사진 일부. 사진에 '18홀 골프장(100ha)을 만들기 위해서는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져 숲과 멸종위기동식물이 사라지고 주민들도 떠나야 한다. 홍천 모곡리에 장락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다'고 적혀 있다.
ⓒ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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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42개도 많은데 41개를 더 만들겠다고?

현재 강원도에서 운영중이거나 건설 추진중인 골프장은 모두 83곳이다. 골프장 수로는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수다. 83곳의 골프장 중 새로 건설 중인 골프장이 무려 41곳. 현재까지 운영중인 골프장 42곳과 한 끗 차이다. 얼핏 봐도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미 운영중인 골프장도 결코 적지 않은데 거기에 다시 동시다발적으로 41개나 되는 골프장을 더 만들고 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언젠가는 골프장 83군데가 모두 경영난에 처할 수도 있다. 이 일들은 대부분 예전 김진선 도지사가 도정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투자를 유치한다는 명목으로 골프장 승인을 마구 남발한 결과다.

산 높고 물 맑기로 소문난 강원도에서 청정한 자연을 포기한 결과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에 터를 닦고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주민들은 골프장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변 환경이 대규모로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고, 골프장에서 흘러내리는 농약으로 농사(유기농)조차 제대로 지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협받는 건 인간뿐만이 아니다. 그 지역의 천연기념물이나 까막딱따구리 같이 멸종위기에 놓인 생물들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농성장에 전시중인 사진 일부. 사진에 '춘천시 신동면 혈동리에 건설 중이던 신도골프장은 벌목을 모두 하고 성토작업을 하던 중 부도가 나서 공사가 중단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산을 깎아내고는 그 위에 묘지 두 기만 달랑 남겨 놨다.
 농성장에 전시중인 사진 일부. 사진에 '춘천시 신동면 혈동리에 건설 중이던 신도골프장은 벌목을 모두 하고 성토작업을 하던 중 부도가 나서 공사가 중단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산을 깎아내고는 그 위에 묘지 두 기만 달랑 남겨 놨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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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마침내 선산이 굴착기 삽날에 무너지고, 나무숲으로 울창한 고향 땅이 누렇게 파헤쳐지는 것을 보다 못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싸움은 4, 5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도청 앞마당에 농성장이 들어선 건 지난 해 11월 4일. 강릉시청에서 농성중이던 강릉시 구정리 주민들이 도청으로 도지사를 면담하러 왔다가 골프장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아예 이곳에 눌러앉았다. 그 이후로 지역 주민들은 개인생활을 포기한 채 이곳에서 강릉을 오가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강릉시청에서는 현재 농성일이 80일이 넘었다.

지금 도청 앞마당에서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은 강릉시 구정리를 비롯해 춘천시 혈동리, 홍천군 갈마곡리와 구만리 등 강원도 내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모두 같은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역별로 조를 싸서 서로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한 사람이 보통 일주일에 2,3일은 농성장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나이 든 분들이 노구를 이끌고 춘천과 강릉을 오가며 농성을 계속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청 앞마당에 진을 친 농성장. 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지붕이 어른 가슴 높이에 불과하다.
 도청 앞마당에 진을 친 농성장. 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지붕이 어른 가슴 높이에 불과하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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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병들고 주민들의 몸과 마음도 병든다

지역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걸 지켜보는 것도 힘들지만, 집을 떠나 농성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 역시 무척 고된 일이다. 그런데 겨울이 깊어가면서 농성장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날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백아무개 할머니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하소연 하던 끝에, 요즘은 사는 게 지옥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올해 65세인 백 할머니를 비롯해 농성에 참여하는 주민들 대다수가 몸이 성치 않다. 대부분 한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이제는 농성이 길어지면서 없던 병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들은 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도 큰 문제다. 홍천군 구만리는 한때 '범죄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소송에 휩싸여 주민 30여 명이 전과자로 전락했다. 소박한 일상을 영위하던 주민들 가슴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셈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최문순 도지사가 결단을 내려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도지사는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니라고 해서, 이미 법적 절차를 거친 일이라 되돌리기 어렵다고 해서 현재 도민들이 처한 현실마저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사업주들이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는 와중에 저질렀을지도 모를 불법과 탈법 여부를 가려내,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도청 청사 앞 층계에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는 생명버스 참가자들.
 도청 청사 앞 층계에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는 생명버스 참가자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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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원도는 '강원도골프장 민관협의회'의 건의에 따라, 강릉시 구정리에서 진행중인 골프장 사업을 자체 감사하기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일말의 희망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여전히 관료들이 하는 일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모습이 최선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주가 감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장애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 박성율 집행위원장은 생명버스를 차수를 더해 계속 운영할 뜻을 내비쳤다. 생명버스가 골프장 난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행동을 하나로 묶어내는 동시에, 시민들에게 골프장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한 생명버스는 서울과 원주 등지를 떠나, 도청으로 오기 전에 춘천시와 홍천군 내의 골프장 건설 예정지를 들러서 왔다. 그곳에서 처참하게 파괴된 자연을 직접 보고 온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한겨울 노숙 농성을 하루라도 더 빨리 마감하려면...

다음 생명버스는 1월 말 경에 떠날 예정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해서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골프장은 골프장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유형의 토건사업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골프장 난개발은 사실 전국적인 현상이다. 이쯤에서 골프장 같은 사업이 확산되는 걸 막아내지 못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진다.

현수막에 골프장 난개발 반대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한 참가자들.
 현수막에 골프장 난개발 반대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한 참가자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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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생명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비록 그 수는 적어도, 그들이 사는 지역은 비교적 넓었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노년층이 많았던 첫번째 방문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이 농성 주민들에게 전하는 말을 현수막에 적어 남기는 시간이 이어졌다. 대부분 비슷한 바람이다. 강원도에서 싹트고 있는 고귀한 생명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다. 이날 생명버스에 탔던 한 시민은 현수막에 '당신들의 진정한 절규, 마음이 아닌 몸으로 느끼고 간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의 일정은 오후 5시가 넘어 끝이 났다. 그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얇은 비닐을 덮어 쓴 농성장 위로 다시 겨울 추위와 함께 또 다른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 밤으로 농성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 더 앞당겨질지, 아니면 하루 더 멀어질지는 우리들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행동하는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희망버스'에서 이미 그 사실을 체득했다. 이제는 또 다른 희망버스, '생명버스'를 기억해야 할 때다.

녹색연합과 춘천생명의숲 등이 주최가 돼서 2차 생명버스 탑승자들을 모집했던 포스터.
 녹색연합과 춘천생명의숲 등이 주최가 돼서 2차 생명버스 탑승자들을 모집했던 포스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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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생명버스, #골프장, #강원도청, #최문순, #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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