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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X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려 학교 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 <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에서

탈옥 후 붙잡힌 신창원
 탈옥 후 붙잡힌 신창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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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벌어진 학교 폭력으로 자살에 이른 중학생의 소식에 온 나라가 소란하다.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방방곡곡에서 학교 폭력으로 빚어진 다양한 사례들을 속속 발굴해 쉼 없이 보도하고 있다. 온 나라가 피해 학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해 학생에 대한 분노가 범벅이 돼 비명이 낭자하다. 가해자들을 징벌하는 후속 조치도 속속 진행되고 있고 있다.

구속 수사를 시작으로 형사 처벌 대상(형사 미성년자)을 지금까지의 만 14세에서 만 12세로 낮춘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강제전학, 학부모 소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 폭력 이력 기재 등의 조치들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생뚱맞게도 '생활지도' 강화를 위해 남교사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고, 대구시교육청에서는 30~40대 무술 유단자를 '배움터 지킴이'로 일선 학교에 배치하는 무시무시한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도 스쿨폴리스를 확대하고 학교 폭력 전담팀을 설치한다고 난리이고, 경찰은 1만2000여 명의 외근 형사를 동원해 학교 폭력과 전쟁을 벌이기로 하고 구속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학교 폭력 문제에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학교에는 곧 최신식 무기로 완전 무장한 군인이 상주할 태세다. 그렇다면 이제 학생들은 학교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일까?

'경쟁 만능'을 부르짖으며 학력 향상에 올인하던 교과부는 잠시 주춤하며 '학교폭력근절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여러 날째 회의 중이다. 이달 하순에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는데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탁상공론위원회'가 되거나 '하나마나위원회'가 될 공산이 크다. 20여 년 전부터 학교 폭력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될 때마다 정부는 대책이라는 걸 내놓았지만 재탕 아니면 삼탕이었고 그나마도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지난해 이른바 졸업식 '알몸 뒤풀이'가 논란이 됐을 때도 교육 당국은 경찰을 학교로 불러들이고 졸업식 뒤풀이를 하면 형사처벌하겠다는 협박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실상 이번 학교 폭력 관련 대책의 핵심인 '처벌 강화'와 '예방 (교육) 강화'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좀더 압축하면 학교 폭력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가해자를 더욱 강하게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속 수사, 강제 전학 등 일련의 조치들로 미루어 사실상의 격리와 배제를 준비한다고 할 수 있다.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이 남긴 유서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이 남긴 유서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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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에 대한 '격리와 배제'에 치중된 학교 폭력 대책 

경찰과 구속 수사 등을 들먹이며 학교를 무시무시한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고, 가해자를 격리·배제한다 해도 이토록 무섭고 몸서리처지는 학교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부와 경찰의 이 같은 공포정책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건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의무교육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어 가해자에게는 격리와 배제를, 피해자에게는 보호와 위로를 하는 처방이 효과를 지니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누구에게나 가능해야 할 '돌봄'과 '치유'의 기능이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학교 폭력의 가해자 역시 '돌봄'과 '치유'의 대상이(어야 하)고, 지속적인 관찰과 대화로 상담하고, 필요하다면 의학적인 치료까지 일정 부분 가능해야 한다. 가해학생의 상당수가 이미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들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과 교육 정책, 교육 과정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강제 전학과 구속 이전에 가해학생에 대한 돌봄과 치유를 법제화하고, 비폭력 평화 수업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하는 등의 일 말이다. 이에 필요한 예산 역시 충분히 집행해 법률과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 사회와 연계해 함께하는 돌봄과 치유시스템까지 구축된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사고가 생기면 대책위를 급조해 재탕 삼탕의 대책을 내놓고는 유야무야 되고 마는 일이 재발하지 않아야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다.  

가해자라는 이유로 배제와 격리의 논리로 버리고 솎아내기만 한다면 결국 학교에는 남아있을 학생이 아무도 없다. 가해자가 강제 전학을 가고 구속이 되었다고 해서 학교 폭력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가해자는 또 생겨나기 마련이다. 때로는 피해자가 더욱 지독한 가해자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기까지 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교육 당국과 경찰이 또 다른 형태의 공포와 폭력을 학교에 몰아넣어 학교 폭력을 없애보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너무 위험하다. 모두를 가해자로 만들 수도 있거니와 학생의 잠재적 미래까지 염려하고 살펴야 하는 교육적 행위와도 거리가 먼 일이다.

이른바 '학교부적응' 학생들에게 감옥체험 교육을 해 논란이 된 울산의 한 공립 대안학교
 이른바 '학교부적응' 학생들에게 감옥체험 교육을 해 논란이 된 울산의 한 공립 대안학교
ⓒ 이은영 울산시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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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머리 한번 쓸어주는 일'

또 학생들을 체벌하고 폭행하는 것을 학생생활지도를 위한 정당한 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할 뿐 그것을 결코 '폭력'이라고는 여기지 않는 학교(교사)와 교과부의 인권 감수성도 재고돼야 한다. 학교(교사)와 교과부의 체벌을 빙자한 폭력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정당한 것인 양 가르치고 있었음을 이제라도 아프게 느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금지 때문에 생활지도를 못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도 알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폭력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거기에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정당한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지금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 쏠린 비난과 원망, 그리고 그들을 당장이라도 처단해야 한다는 분노로 가해자들의 격리와 배제를 정당화한다면 단언컨대 우리는 영원히 학교 폭력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당장은 공포 분위기를 통한 격리와 배제로 학교 폭력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은폐'일 뿐이다. 매번 교육 당국의 조치라고 하는 것이 이러한 은폐 행위였기에 그토록 수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은 갈수록 늘고 수위도 높아져 온 것이다.

2011년 3월 경기도교육청 스쿨폴리스 발대식
 2011년 3월 경기도교육청 스쿨폴리스 발대식
ⓒ 경기도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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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대구 사건'의 가해 학생들이 점퍼에 머리를 싸매고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신창원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에 끌려가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처절하게 반성하며 뉘우치는 눈물을 흘렸을까. 아니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멸시와 천대에 더더욱 솟구치는 분노와 적개심을 느끼며 형언할 수 없는 복수심을 다졌을까.

지금 가해자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이 X놈의 새끼야, 빨리 꺼져"라고 외마디 비수를 꽂는 것이 아니라 "너 착한 놈이다"라며 머리 한번 쓸어주는 일이 돼야 한다. 그들에게 기회와 시간을 주어야 한다. 돌봄과 치유 시스템의 법제화와 정책적 입안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악마'의 탄생을 단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임정훈 기자는 중학교 교사입니다.



태그:#학교폭력, #중학생 자살, #대구 중학생, #자살,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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