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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자기도 내내 건강하고 복도 많이 받으라고!"라는 덕담을 건네며 시작한 2011년(辛卯)이 아쉬움을 남긴 채 저물고 2012년 새 아침이 밝았다.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아쉬움이 따라다니는 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싶다. 기쁘고 보람을 느꼈던 날도 많았으니까.

아내와 아쉬움을 달랬던 김치찌개. 보는 것으로도 포만감을 느꼈다.
 아내와 아쉬움을 달랬던 김치찌개. 보는 것으로도 포만감을 느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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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009년 연말에는 형제들이 우리 집에 모여 송년회도 하고 신년회도 했다. 그러나 2010년, 2011년은 안타깝게도 누님들 몸이 불편해서 모이지 못했다. 2011년도 그냥 보내면 서운할 것 같아 아내와 작은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아쉬움을 달랬다. 

"오늘 출근하면 내년에 올틴디 저녁이나 함께하지..."

눈이 많이 내렸던 지난 12월 24일 오후였다. 조카 결혼식에 다녀온 아내가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네요!"라고 했다. 쉬는 날이니 저녁에 칼국수라도 외식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그러게 말이야, 옛날 같으면 교회에서 예배를 봤을 텐데···"라고 답하고 그냥 지나쳤다.

며칠 후 아내는 "송년회 날은 뭘 하고 지내지?"라며 비슷한 말을 또 했다. 환갑·진갑 다 지났음에도 연말이 가까워지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한 모양이었다. 아내 심정을 알면서도 "나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집에서 조용히 보내야겠네!"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이유가 있었다. 12월에 가죽 장갑 등 이런저런 선물을 받고 말로만 고맙다고 했지, 답례는 하나도 못했기 때문. 그렇다고 생활비로 답례품을 고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어서 고민하다가 12월 31일 아침에야 작은 이벤트 계획이 떠올랐다. 2011년 송년회로 저녁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이틀 연속 밤 근무니까, 오늘 출근하면 내년에 올틴디 저녁이나 함께하지. 오후에 함께 시내에 나가자고. 이발도 해야 하고, 시장도 봐야 하거든. 그리고 어디든 가서 밥이나 먹고 들어오자고."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렇게 하죠! 뭐. 기름(원유)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외지로 나가자고 하기도 겁나는데 간단하게 밥 먹는 것도 괜찮죠. 뭘 먹으려고 하는데요?"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동의했다. 그러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원유값 때문에 몇 년 동안 드라이브 한번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1리터에 1600원~1700백 원 할 때만 해도 아내 쉬는 날이면 인근 유적지나 바닷가에 다녀왔었다.  

"뭘 먹기는 단둘이서 하는 송년회니까, 양식이든, 한식이든, 떡볶이든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가고 싶은 음식점 있으면 말해보라고. 되도록 분위기 있는 곳으로···."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은 없어요. 그냥 가까운 식당에서 맛있는 김치찌개나 먹었으면 좋겠네. 밤에 출근해야 하니까요."

내 호주머니 사정을 알아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다른 고급메뉴를 골라보라고 해도 나이트(밤 근무)를 하려면 잠을 조금이라도 자두어야 하니까 시간이 없다며 굳이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고집 피우는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내가 얘기하는 '가까운 식당'은 6개월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맛나식당'.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은 지인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뒤편에 있는 작은 백반집으로 김치찌개가 일품이었다. 해서 기억해두었다가 두어 번 함께 가서 먹었는데 아내는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송년회가 따로 있나, 1년 마지막 날 저녁 먹으면 그게 송년회지!"

아내와 시장에 들렀다가 낭만이 흐르는 옛날 다방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식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주방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어서 오세유~"라며 반겼다. 매콤한 고춧가루 양념 냄새가 서민이 애용하는 식당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내가 김치찌개 2인분을 상위에 올려놓고 있다.
 아내가 김치찌개 2인분을 상위에 올려놓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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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참조기 튀김. 싱싱한 생조기여서 맛이 그만이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참조기 튀김. 싱싱한 생조기여서 맛이 그만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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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2인분을 주문하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상 차리기는 식당 영업상무로 통하는 바깥주인 몫. 그는 낮부터 한 잔 걸쳤는지 취기 오른 목소리로 "여기 찌개상 하나 근사하게 챙겨요!"라고 외치면서 행주로 상을 닦았다. 곧이어 상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적당히 익은 총각김치와 배추김치, 상큼한 배추나물, 파래향이 그윽한 대파 무침. 들깨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버섯탕, 개운한 깻잎 장아찌와 꼴뚜기 젓갈,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돋우는 참조기 튀김 등이 나왔다. 참조기는 단골에게만 따라붙는 덤이라고 했다. 

아내는 배가 고팠던지 총각김치를 잘라 우적우적 깨물어 먹었다. 나도 한 조각 입에 넣었더니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특히 입안에 착착 감기는 참조기 튀김은 뜨거운 밥과 조화를 이루며 도망간 입맛을 잡기에 충분했다. 

뒤이어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도 차려졌다. 포만감이 느껴지는 두부와 매콤한 양념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는 김치찌개는 보기만 해도 푸짐했다. 얼큰하고 달달한 국물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은 순간 "아~ 꼬솝고 개운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찌개에 들어가는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의 음식궁합이 환상적으로 잘 맞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음식 취향이 반대여서 서로 양보해가며 사이좋게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아내는 살코기를 나는 비계 부위를 좋아하기 때문.

소주잔을 나누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옆 테이블 손님들.
 소주잔을 나누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옆 테이블 손님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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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테이블에서는 남녀손님 셋이 닭볶음탕을 시켜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누이와 처남 사이로 2011년 마지막 날이어서 소주 한잔하러 왔다고 했다. 그들에게 "이곳의 무엇이 맛있어서 오셨나요?"라고 물으니까 여성분이 "동네에 사는디 아주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 먹는 것 아니겠어유?"라고 반문했다. 더 물어볼 게 없었다. 명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치찌개 2인분 식대는 1만2000원. 식당을 나오면서도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반복하는 아내에게 "송년회가 따로 있나, 1년 마지막 날 만나서 저녁 먹으면 그게 송년회지!"라고 하니까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2011송년회, #김치찌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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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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