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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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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2012년의 새아침을 이틀 앞둔 새벽, 당신은 가녀린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차마 볼 수 없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언제나처럼 제 손을 잡아 주시며, 마지막 말씀이라도 하실 것 같아 온 몸의 모든 신경을 당신의 가녀린 숨소리에 맞춥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새벽 여명을 따라, 당신의 헌신과 희생으로 만들었지만, 생전에 당신의 것으로는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영원한 자유와 평화의 길을 따라 아프고 서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미안해! 유은혜!' 마지막에도 당신은 그러셨을 겁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결국 당신의 마지막 말씀도 그러했을 겁니다. 당신은 늘 그런 분이셨습니다. 오랜만에 옛 동지들을 대할 때도, 후배들을 대할 때도, 늘 '미안하다'는 말을 앞세우셨습니다.  

당신의 후배들에게는 '당신의 희생은 보상받았지만, 후배들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미안해했고, 헌신과 희생의 길을 함께 한 이들이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사는 모습에 미안해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현실에 미안해했고, 당신의 곁을 지키는 동지들에게는 '정치적으로 화려한 성공을 하지 못한 김근태의 길'을 미안하다 했습니다.

최근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마다, '지난 정권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제도를 물려준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며 '청년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들을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당신의 영전 앞에서 당신에게 빚을 졌다며 아프게 당신을 추모하지만, 정작 당신은 마지막까지도 세상과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셨습니다.

오늘 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당신의 그 미안함과 그로 인해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 당신의 마지막 여정을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힘들게 닦아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길이 옳았습니다

석방 기념 인터뷰하는 민청련 의장 김근태
 석방 기념 인터뷰하는 민청련 의장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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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와 맞서던 저의 대학시절, '김근태' 당신은 그 이름만으로 저에게 희망이었고, 용기였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현실적 국민운동으로 만들어 낸 당신을 따라 우리는 청춘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탁월한 논리와 용기를 가진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형이고, 선배였습니다. 당신이 정치참여를 선언하던 때, 당신의 정직과 진실함이 대한민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치여정은 고달팠습니다. 당신의 정직과 원칙은 냉소와 멸시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그 서럽고 불편한 몸조차 조롱거리가 되는 그 잔인한 정치현실을 지켜보며 당신의 길을 따르기가 저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금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정치자금 양심고백'을 했을 때, 사람들은 이적행위자라며 공상주의자라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당신 편에 있던 이들도 '어리석은 짓'이라며 당신을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2년 후 금권정치 청산은 모두의 화두가 되었고, 당신의 용기는 정치개혁의 물꼬가 되었습니다.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 꿇지 않겠다'고 할 만큼 목숨을 건 투쟁을 해온 당신이지만, 엄혹하던 그 시절에도 단식농성만큼은 반대해 왔던 분이 당신입니다. 그러던 당신이 2007년 '한미 FTA 반대 단식농성'을 하셨습니다. "단식이 김근태에게 큰 생채기가 되더라도 생채기를 피할 수 없고, 얼마쯤 가지가 부러지고 타 버리더라도 천둥번개를 피하지 않고 제 몸으로 막아내는 들판의 나무 한 그루처럼,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냉소했고 외면했습니다. 어떤 이는 당의장까지 지낸 여당의원이 참으로 무책임하다며 혀를 찼습니다. 

그때 국회의사당 본관 앞 농성장의 싸늘했던 찬바람과 그 속에서 절박감과 무력감으로 고뇌하던 당신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저는 아직도 가슴이 시립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반대하는 가운데 2011년 한미 FTA 비준안 통과를 병상에서 지켜봐야 했을 당신의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1997년 국민경선 주장,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의 '사회적 대타협'의 제안, 공공주택 분양원가 논쟁! 당신은 부조리한 권위와 관행에 늘 맞서 왔고, 그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때로는 크나큰 물결이 되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만든 파장이 물결을 일으키고, 그것이 파도가 되어 온 세상을 휩쓸고 간 자리에 늘 김근태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들은 당신을 실패한 정치인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정치현실에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는 후배들을 다독이며 정직과 진실의 가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의 분노가 세상의 분노가 되고, 당신의 이상이 많은 이들의 현실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또 그렇게 묵묵히 그 길을 가자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했던 이들은 자주 서럽고 너무 억울했습니다. 저, 이제 눈물을 삼키며 당신의 마지막 길에 뒤늦은 회한의 헌사를 올립니다. 반독재 민주화투쟁보다 더 힘겨웠던 현실 정치의 여정이었지만, 아무도 김근태 정치의 성공을 말하지 않지만 늘 그렇듯, 당신의 길이 옳았습니다.

양심을 내던지더라도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정치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떠올릴 것입니다.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했다 하여, 우리 안의 부당함과 싸우지 않는다면 김근태를 기억할 것입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모두가 숨죽일 때,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종이에 추모의 글귀를 적어놓자, 장례 관계자들이 이를 벽에 붙이고 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종이에 추모의 글귀를 적어놓자, 장례 관계자들이 이를 벽에 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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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당신의 미안함에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당신이 기회라고 말씀하신 2012년 새해가 밝아옵니다. 분노하고, 참여하고, 싸워서 희망을 만들자던 그 새해의 아침, 당신은 영정 속에서 사람들을 맞습니다. 당신의 그 웃음을 눈물로 지켜봐야 하는 우리들은 아랑곳없이, 늘 그렇듯이 따뜻한 웃음으로 맞습니다.

이제 슬픔과 아픔의 기억들은 지난 시간에 묻으려 합니다. 당신의 삶을 희망의 근거로 삼아 분노하고 싸우며 2012년의 승리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언젠가 몇 번쯤은 저도 당신께 좀 더 근사한 언어와 풍모로 세련되게 하시라고 했겠지요? 그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잔인한 주문이란 걸 알면서도 당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당신의 가치가 성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리 했습니다. 김근태 의장님! 당신은 참 멋있는 분이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해서 늘 자랑스러웠고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글쓴이 유은혜는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시절에 같은 사무실을 쓰던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김근태 의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김근태 의원 후원회 사무국장, 한반도재단 사무국장 등으로 그와 정치행보를 함께 해왔다. 정치에 입문해서는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민주당 고양시 일산동구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태그:#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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