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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구나'.

최근 이명박 정부 안팎에서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의혹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물론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검찰의 칼끝이 모처럼 '살아있는' 권력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는 만큼 그저 의혹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끝이 어디쯤일지 짐작하기도 힘든 의혹들을 접하며 대체 그동안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하는 생각에 섬뜩함 마저 든다. 두고 볼 일이다.

지난 4년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
지난 10·26 재보궐 선거가 있던 날 아침, 누군가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를 공격해 2시간여 동안 접속을 막은 사실이 드러났다. 마침 서울시내 2218개의 투표소 네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뀌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새 투표소를 찾아 헤매던 무렵이었다.

한 달쯤 지나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전 수행비서 등 4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1억 원의 돈이 오고간 정황이 드러났고,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한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의 전·현직 비서들과 청와대 행정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사건을 덮기 위해 청와대가 나서 경찰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더해졌다. 정무수석과 민정수석이 의심을 받고 있다.

#2.
올해 들어 모두 16개의 저축은행들이 무더기로 영업 정지를 당했다. 마구잡이식 대출로 부실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탓이다. 이 가운데 제일저축은행도 끼어 있었다. 영업 정지가 취해지기 전 은행 측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검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상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들이었다.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이 4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됐고, 대통령의 손윗동서도 3년간 어느 저축은행의 고문으로 일하며 억대의 고문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이름도 심심찮게 들린다.

#3.
지난 9월 SLS그룹 이국철 회장이 신재민 전 차관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여러 차례 검은 거래를 해왔다고 털어놨다. 청와대의 정치 보복으로 억울하게 빼앗긴 회사를 되찾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거래에 쓰인 돈의 규모는 최대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두 명의 전직 차관에 이어 전 검찰총장까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번에도 대통령 형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최근 불거진 굵직한 의혹들만 이 정도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있으니, 곪아 썩어가던 상처를 도려내게 된 후련함만큼이나 이 나라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씁쓸함도 크다. 대체 지난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명박 정부는 대체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이명박 정부의 악행을 통해 깨달음을 전하다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표지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표지
ⓒ 말글빛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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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런 답답함을 풀어줄 만한 책이 있다. 명진스님이 쓴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이명박 정부의 온갖 악행들을 빠짐없이 담아낸 책으로, 가히 명박실록의 '악행편'이라 부를 만하다.

조선시대에는 사관(史官)이라는 직책을 두어 늘 임금의 곁에 머물며 왕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도록 했다. 후대가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허점은 있었으니, 사관이 기록한 사초(史草)들을 모아 임금이 죽은 뒤 실록으로 편찬하는 과정에 편찬자의 주관이 녹아들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성리학이라는 당대의 세계관이 녹아있는 것은 물론, 훈구·사림 간의 갈등과 동인·서인 등 당파 간 대립으로 인한 시각 차이도 실록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비판하려던 사림파 사관 김일손의 사초를 실록 편찬의 책임자였던 훈구파 당상관 이극돈이 문제 삼아 죽음에 이르게 한 일도 있었으니, 연산군 대에 일어난 무오사화가 그것이다. 또한 <세조실록>은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적고 있으나 인조 때 지은 <병자록>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역사를 기록하고 또 읽어내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서로 다른 세계관과 당파적 견해, 또 다양한 계급적 시각들이 날줄과 씨줄을 이루며 촘촘하게 엮일 때 비로소 '역사'는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때 이명박 정부로부터 '좌파 주지'로 몰리며 박해를 받기도 했던 저자의 이 책은 이명박정부 시대를 읽는 또 하나의 씨줄이 되어줄 것이다.

아울러 단순한 기록을 넘어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며 모두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이명박 정부의 악행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명박 대통령을 '역행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MB 비판을 통해 MB의 잘못도 고쳐야겠지만 MB를 뽑은 우리 시대의 욕망에 대해서도 꼬집고 싶었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오로지 물질적으로 잘 살려고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더 나은 세상으로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누가 이 죽음에 관해 자유로울 수 있는가"

책의 부제인 '서이독경'. '서'자를 쥐 모양으로 그려 넣었다.
 책의 부제인 '서이독경'. '서'자를 쥐 모양으로 그려 넣었다.
ⓒ 말글빛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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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라는 제목 바로 아래에 '서이독경'이란 네 글자가 도장처럼 박혀 있다. 서이독경(鼠耳讀經), '쥐 귀에 경 읽기'란 뜻이다. 표지를 넘기면 다시 한 쪽 가득 이 네 글자가 적혀있는데, 이번엔 아예 '서'자를 쥐 모양으로 그려놓았다. 이 책이 제목만큼 따뜻하지만은 않으리란 점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이 책은 거침이 없다.

이명박 정권을 두고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의 후안무치, 체면을 차릴 줄 모른다는 뜻의 몰염치, 염치를 모르고 뻔뻔스럽다는 뜻의 파렴치이기 때문에 '삼치정권'"이라 부르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자꾸 말만 뒤집으니 퇴임 후 빈대떡 장사나 하라"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어디선가 점잖지 못하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그러나 저자는 개의치 않는다.

"불가의 자비는 때로 파격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할(喝)과 방(棒)이 그것이다. '할'은 요즘 말로 하자면 '버럭' 소리를 질러 잠든 정신을 깨우는 것이고, '방'은 매질로 깨우치는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잠든 정신을 깨우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선방에서 정진할 때 수마(睡魔)에 걸려든 수행자를 깨우기 위해 죽비를 내리친다. 미워서도 아니고, 공격함은 더더욱 아니다. 잠에서 깨라는 자비의 매질이다."

저자는 자신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리석음과 잠든 정신을 깨우기 위한 '자비의 매질'이라고. '너무 정치적'이라며 걱정하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 '수행자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 벌어진 수많은 일 가운데 가장 가슴 아팠던 일로 '용산 참사'를 꼽는다. 2009년 1월 철거민들의 농성을 무리하게 진압하다 6명의 철거민과 경찰관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사건이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천일기도 중이던 저자는 기도를 끝마치는 대로 곧바로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 시대가 낳은 온갖 탐욕과 폭력이 뒤엉킨, 짐승의 세상에서나 벌어질 일이었다.

"용산참사는 인간이 돈이라는 물질적 힘 앞에 참으로 탐욕스럽다는 것을, 그 탐욕스러움을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짐승 같은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돈 없고 힘 없는 게 죄라는 것을, 그런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사건을 두고 "국가에 의한 타살"이라고 못 박으면서도, "누가 이 죽음에 관해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른바 '뉴타운 광풍', '욕망의 광풍'이 결국 용산에서 화마를 일으킨 것"이라며 우리들의 부끄러운 기억을 들추고 있는 것이다.

"용산참사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이 6명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다시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인간이 인간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면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영원한 짐승이 될 뿐이다."

이처럼 저자의 죽비는 결코 이명박 정부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성찰은 우리들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이 던지는 진정한 화두는 '성찰'

명진 스님
 명진 스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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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마지막으로 '단지불회(但知不會)'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다만 아는가, 알지 못하는 줄을'이라는 뜻의 이 말은 보조스님의 <수심결>에 나오는 말이자, 저자가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도 왜 사는지 몰라서 살고 있다. 언제쯤 왜 사는지 알게 되는 날이 올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모르기 때문에 다만 묻고 성찰할 뿐이다. 이 세상 사람들과 내가 나누고 싶은 것은 다만 이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의 서론에서도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사람들이 일상적 삶에서 철학적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저자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뭇 중생들이 하루하루 부딪히는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아파하며, 다만 묻고 성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화두 역시 '성찰'이라 하겠다.

책을 덮고 나니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는 글귀가 새롭게 다가왔다. 만일 우리 시대에 종교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위로'와 '성찰'이 아닐까. 때로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어깨를 토닥여 일으켜주고, 또 때로는 나를 비춰보며 겸허히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종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그런 종교라면 누군들 기대고 싶지 않겠는가.

힘겨웠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오늘, 당신만큼 아프다고 말하는 이 책이 당신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매서운 성찰을 함께 전해주길 진심으로 빈다.

덧붙이는 글 |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명진 씀 | 말글빛냄 | 2011.12.7 | 1만5000원)



태그:#중생이아프면부처도아프다, #명진스님, #천지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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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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