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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서울의 몇몇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교장의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견디다 못해 다수의 교사들이 서명한 진정서를 서울시교육청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여러 내용 중에 여교사들을 시켜서 장학사들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학교 사회에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할텐데, 창피하지만 30년째 교사노릇을 하고 있는 제가 보기에 이런 정도의 얘기는 그동안 학교 사회에서 숱하게 보고 듣고 경험한 얘기입니다.

술자리를 자주 갖고 블루스 잘 춰야 승진한다고?

폭탄주
 폭탄주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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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제가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자리가 바로 회식 자리였습니다. 회식자리에서 저보다 모두 나이 지긋한 교사들은 저를 교장선생님 옆자리에 앉혀놓고 교장선생님께 술을 따라 드릴 것을 종용했고, 교장선생님 역시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지! 이 선생 술 좀 따라봐" 했고, 술을 잔 가득히 채우라며 "여자는 안아야 맛이고 술은 채워야 맛이다"라는 말을 늘상 해댔습니다. 술자리에서 해대는 민망한 음담패설은 더욱 참기 힘들었습니다.

또 "어른이 주는 술은 다 마셔야 한다", "소주가 술인가? 음료수지!"하면서 교장이 따라주는 술을 억지로, 그것도 다 마실 것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술 따르는 것도 싫고 술 마시는 것도 싫었지만, 초짜 교사일 때는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2차를 갈 때는 더욱 심했습니다. 음주에 가무까지 할 수 있는 2차에 가면 나이 지긋한 교장과 교감선생님들이 여교사를, 그것도 나이 어린 여교사들 손을 잡아끌면서 블루스를 추자고 했습니다. 다른 교사들은 교장선생님을 위해서 블루스를 춰주라고 했습니다. 싫다고 거부하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어린 제가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하게 거부하고 화를 내니까 제게는 권유하지 않지만, 늘 회식자리에서 나이 지긋한 남자 교장과 교감이 여교사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거나 끌어안고 블루스를 추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교사들 사이에 떠도는 말로 승진을 잘 하려면 윗사람과 술자리 분위기를 잘 만들어야 하고, 블루스도 잘 춰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초고속 승진한 한 관리자는 늘 술에 절어 살았습니다. 술자리에서는 늘 여교사들과 블루스를 췄고, 학부모와도 자주 술자리를 갖고 블루스를 추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고위관리직을 거친 그 관리자 이름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미안하게도, 교육에 대한 장면보다 술에 취해 여교사를 붙들고 블루스를 추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그 관리자와 블루스를 유난히 자주 추어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던 그 여교사는 지금 승진했습니다.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친목회'를 없앴습니다

회식 자리는 주로 학교마다 있는 교직원 친목회 행사로 많이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 친목회라는 것이 교직원들의 친목을 위해 진행되지 못하고 교장과 교감을 위한 행사, 교장과 교감을 잘 모시는 일로 둔갑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학교에 따라 친목회가 달마다 적립한 돈으로 교직원들의 경조사비를 충당하거나 일 년에 한두 번의 회식과 여행을 가기도 하는데, 많은 학교가 교직원들의 친목회비로 명절 때 교장 선물을 사드리는 일도 있습니다.

또 친목회장 자리는 주로 친교장 성향의 교사가 맡아서 교장을 모시는 일을 많이 하고, 교장을 모시고 일년내내 경조사에 쫓아다니느라 바쁩니다. 친목회장은 교사의 또 다른 힘든 업무가 되었고, 그래서 학교에서는 친목회장을 서로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새 학년이 되면 관행으로 친목회장을 뽑고 (또는 억지로 떠 넘기고) 돈을 다달이 걷습니다.

저는 이런 분위기의 친목회가 영 싫어서 언제부턴가 돈을 냈지만 친목회 행사에 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회식이 있으면 되도록 교장·교감자리와 먼 문 앞에 앉아서 밥만 얼른 먹고 도망쳐 나오곤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다수 여교사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교장과 교감 옆을 지키면서 연실 술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부장들입니다. 이 분들이 좋아서 그러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친목회 행사를 몇 번 겪어보면, 친목회가 정작 교직원 전체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올해 선생님들과 협의해서 친목회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그동안 관행처럼 다달이 걷던 친목회비도 걷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친목회를 없애면 교사 친목을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리 학교는 교사 친목을 과거처럼 교장 모시기로 하지 않고 제대로 교사들을 위한 친목을 하기 위해 없앤 것입니다. 별도의 친목회도 없고 다달이 걷는 친목회비도 없이 지낸 올해 우리 학교는 친목회가 있는 다른 학교들보다 훨씬 친목이 두텁습니다. 회식도 교장을 모시기 위한 '괴로운' 행사치레의 회식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모두가 '즐거운' 회식이 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교장비리, #교직원친목회, #회식, #학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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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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