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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 들썩, 흔들흔들, 저희를 태운 차는 이리저리 움푹 패인 길을 지나면서 요동을 칩니다. 그때마다 차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이쿠! 어이쿠! 저절로 장단을 맞추게 되지요. 이렇게 안동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으로 넘어가는 길은, 완전히 자연 친화적인 길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길은 포장을 하지 않고 이대로 놔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병산서원을 만나러 갈 때는, 이런 길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막 파헤쳐지고 있는 '병산리습지'를 보면서 지나왔기에 씁쓸한 기분은 쉽게 가셔지질 않습니다. 그 넓고 광대한 습지는 각종 공사장비에 위해 파헤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조금 더 지나면 이곳의 지형이 완전히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손대지 말아야합니다. "방치하는 것이 제일 잘 보존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병산서원에 가까워지면, 또 멋진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서원 앞에 펼쳐진 모래톱이지요. 광활한 모래가 펼쳐진 모습을 보면 누구라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사적 제 260호인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선조 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곳이라고 합니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이지요. 그가 죽은 뒤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사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존속된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저희 일행은 일단 모래톱보다는 서원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래를 밝고 강가로 먼저 가기를 원했지만,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가니 할 수 없이 뒤따라왔죠. 처음 보이는 문이 "복례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 복례문 뒤로 만대루가 살짝 보입니다.

 

 

 

만대루는 상당히 넓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여기에 200명이 다 앉아도 자리가 남는다고 말이죠.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못 올라가게 해놨다는 것입니다. 좀 일찍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누구나 이 누각에 올라서 낙동강변을 한 없이 바라봤을 텐데요.

 

만대루 뒤로는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고, 그 중앙에 입교당이 만대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입교당에서 앉아서 만재루를 보면,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 또한 장관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 한 없이 입교당에 앉아서 그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입교당 뒤로 돌아나가면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가 하얀 속내를 드러내고 멋들어지게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서애 류성룡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비록 문은 굳게 잠겨있지만, 잠시 그의 넋을 위로하면서 고개를 숙여봅니다.

 

 

자! 이렇게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한번씩 궁금해서 들어 가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통시'라고 불리는 화장실입니다. 이제는  '머슴뒷간'이라고 더 알려져 있죠. 어느 교수님이 책에 그렇게 적은 이후로 아마, 그렇게 불리나봅니다. 또 누구는 '골뱅이 뒷간'이라고도 하더군요. 생긴 모습을 따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그런데, 이 화장실이 멋있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합니다. 하지만 전 약간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머슴뒷간은, 추측하건대, 서생을 따라온 머슴들이 사용한 화장실이라고, 말들을 하더군요. 추운 겨울날 볼일을 보려고 바지춤을 내리면, '휭' 한 바람에 상당히 추웠을 겁니다. 문이 없으니 당연히 바람이 잘 들어오겠죠. 또 비나 눈이 오면 어찌합니까? 지붕도 없는 곳이라 사용하기 힘들었을 듯합니다.

 

 

진짜로 저곳이, 예전에 머슴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었을까요? 아무리 머슴이라고 하지만, 화장실까지 저렇게 지어야했을까? 정말이라면, 공부하는 서생들도 맘이 편치 않았겠죠? 아! 모르겠습니다.

 

이제 아이들과 강변으로 내려가 볼 시간입니다. 사내놈들은 어느새 조약돌을 한주먹 주워서 주머니가 볼록해지도록 집어넣고 새하얀 모래를 밟고 강가로 내달립니다. 저도 아이들 뒤를 쫓으며 이곳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지새웠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그 옛날, 공부하던 서생들도 이 모래에서 놀았을 것이고, 그들의 머슴들도 그랬으면 좋았겠고, 현대 들어서는 이곳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이 모래톱에서 놀았을 겁니다. 그리고 미래 저 아이들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반대편 여자아이들의 불그레한 얼굴을 보며 연애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풍덩, 풍덩! 아이들이 날리는 돌조각이 강물에 떨어집니다. 먼 훗날 저들이 이곳에 다시오면 지금의 이 모습을 기억하겠죠. '아! 내가 그때 이곳에서 이렇게 놀았다'라고 추억에 잠길 겁니다. 그때도 아무런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 이곳이 지켜지길 기원해보며, 아들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하나 빼앗아 멀리 멀리 날려봅니다.  "풍~~~~덩!"

 

덧붙이는 글 | 12월 11일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제 블로그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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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혹은 여행지의 추억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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