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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 양심적 병역거부자 캐나다 망명…국내 첫 사례"를 보도한 지난 16일자 <한겨레> 1면
 "동성애 양심적 병역거부자 캐나다 망명…국내 첫 사례"를 보도한 지난 16일자 <한겨레> 1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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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한국을 떠났다. 보수 언론 매체에선 그의 떠남이 '병역기피'라며 폄하하고 있지만, 그는 동성애자로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것이다. 과연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한다는 병역을 거부한 채 캐나다로 망명할 만큼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나의 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2000년, 나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빨리 갔다 오자는 생각도 있었고, 더불어 어떠한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 아마 나는 '군대'에 대해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군대갔다오면 사람이 된다'는 그런 철부지 같은 생각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들은 자대에 배치되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자대 배치받기 전부터 발생했던 '내무실 구타 사건'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등병이었던 내게 앞으로 일어날 괴롭고 끔찍한 시간의 전조였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구타 사실을 폭로한 선임병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 당했고, 그러면서 위축되어 말도 없게 된 내게 내무실 사람들은 "게이가 아니냐?"며 비아냥거렸다. 탈출구라 착각했던 그곳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겨우 중대장과 면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나는 동성애자입니다"라고 커밍아웃을 했다. 중대장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만 대수롭지 않게 나를 '의무대'로 넘겼다. 그날 이후, 나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육공트럭에 실려 쇠창살이 박혀있는 정신병동에 갇히게 되었다.

입실 첫날, 정신교육이라는 명목하에 하루종일 PT 체조를 강요당했고, '관심 사병'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위생병들은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니, "여긴 여자 변기는 없다"며 인권 모독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입실 둘째 날, 의무관과 면담을 하게 되었고 그때 심한 구타를 당했다.

'동성애'를 핑계로 군 기피자를 가려내기 위한 정당한 폭력이라고 그는 말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내 스스로가 이런 비참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분노하게 되었고, 더이상 물러서지 않기 위해 "나는 동성애자입니다"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결국 내가 군 기피를 목적으로 커밍아웃한 게 아님을 안 의무관은 그제야 나와 심층적인 면담을 시작했다.

폭력과 비인간적인 행위 일삼고 '동성애자'를 혐오대상으로 간주하는 군대

"남자와 성교할 때는 뒤로만 하니?" "항문이 찢어지는데 왜 좋니?" "남자랑 성교했던 상황을 자세히 말해보렴."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비인권적이고도 모욕적인 말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싸워야겠다, 반드시 당신들의 생각만큼 나라는 존재가 더럽고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 보이겠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차별적인 상황 앞에서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군에서는 이러한 모욕적이고 차별적인 대우도 모자라,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 정체성을 가족에게 알리는, 이른바 '아웃팅'까지 서슴없이 자행했다. 나는 근 일 년 동안 군 정신병원에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감금, 관리되었다. 군 당국은 '동성애'가 정신병이 아님을 인정하지만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음에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인권 차별적인 행위이다. 나는 병실 생활 일 년 동안 목욕도 따로 해야 했고, 혹시나 모를 상황 때문에 환우들과도 따로 떨어져 자야 했다. 그렇다. 군에서 바라보는 '동성애자'는 '남자'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색가'일 뿐이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갖은 모욕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십 년 전의 상황이지만 여전히 바뀐 것은 없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을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아프다.

현재 병역법은 종교적 신념, 개인적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나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군형법 92조는 동성 행위를 성군기 위반자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 당국은 동성애자를 보호하고 존중할 수 있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혀서는 안 되며, 혹 그걸 밝혔을 시에는 군대 내의 법규에 따라 개조되어야 한다는 이 논리를,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김경환씨는 한국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동성애자로서 떳떳하게 군대를 갔다 오는 것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긍정하는 방향이지 않냐고. 과연 그럴까. 폭력과 비인간적인 행위를 일삼고 '동성애자'를 혐오대상으로 간주하는 군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의 선택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가 국적을 포기하고 캐나다로 망명 신청을 한 이유는 바로 군 내부의, 아니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혐오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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