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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 주세요."
"응, 좋아하는 책 골라 오렴."

여태까지 난 딸 민애(5)가 들고 오는 책은 무조건 읽어 주었다. 뽀로로, 방구대장 뿡뿡이, 토마스와 친구들, 프린세스 이야기 등. 고민도 철학도 없이 얄팍한 상술에 끼워 맞춘 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의 선택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작가 이상희씨의 강의를 듣고부터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직접 골라서 가져온다. 이작가는 영월도서관에서 열린 <아이사랑 부모되기>의 세 번째 만남으로 <내가 정말 사자일까><은혜 갚은 꿩 이야기><난 그림책이 정말 좋아요><작은 기차><마법침대>등을 쓰고 원주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를 운영하고 계신 분이다.

강의하는 이상희씨
 강의하는 이상희씨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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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상희씨
 작가 이상희씨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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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밥과 같아요."

왜 밥일까?
1. 먹어야 산다
2. 잘못 먹으면 탈난다
3. 제때 못 먹으면 성장에 지장이 있다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판단력이 생기기 전까지 좋은 책을 만나게 해 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음성에서 단호한 눈빛이 돌았다. '책이면 다 좋다', '다다익선이다'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무식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두 개 주지 말라고 <장미의 이름>을 쓴 작가 옴베르토 에코가 말했어요."

왜 느닷없이 아이스크림?
1. 두 개를 주면 어느 하나를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없다. 둘 맛이 섞인다.
2. '어느 것을 먹을까' 고민하고 선택할 기회를 빼앗는다.
라는 이유에서다.

과잉이나 결핍에 치우치지 않는 법을 여기서도 배워야한다. 이상희씨는 좋은 에너지가 담긴, 예술성을 가진 책을 골라주되, 하루에 두 권 이상 읽어주면 안된다고 말했다.
"한 권을 아주 정성스럽게 읽어주세요. 호흡을 즐기며, 그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생각해보니 후다다닥 10권을 읽어주는 것보다 1권을 온 마음과 정성으로 같이 빠져드는 게 엄마와 아이와의 일체감을 만들어준다. 책 속의 주인공이 한 체험을 같이 하고 나온 기분이 든다.

"책은 쌍방향적입니다. 책은 생각하며 볼 수도 있고 다시 볼 수도 있고 언제든지 보고 싶은 부분만을 택해서 몰두할 수 있어요. 그에 반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상매체는 일방적입니다. 휙 지나갑니다. 책을 읽으면 뇌에서 전두엽이 발달해요. 사물을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생각하는 뇌지요. TV만화를 보면 후두엽인, 동물적인 뇌가 발달합니다. 즉흥적이고 단순하고 본능에 충실하지요. 우리는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어요."

무섭다. 아이들이 자살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조금만 견디면 되는데, 조금만 더 천천히 생각하면 되는 데, 그냥 확 저질러 버린다고 한다.

우리 딸 민애를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이 아이가 어디에서 격려받고 어디에서 살 힘을 받을 수 있을까? 책이다. 그 속에는 억울할 때 격려해 줄 주인공이 있고 힘들어도 꿋꿋하게 해쳐나가는 인생의 모델이 있다.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외롭지 않게 한다. 앞으로 공이 많이 든 책을 고르는 데 게을리 하지 않겠다. 그리고 그 공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에 절을 하고 읽어야겠다. 고맙습니다.

그림책
 그림책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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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그림책, #육아,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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