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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열풍입니다. 평생 한 번 가보지도 못한 내곡동이 익숙해졌고, 관심 없었던 디도스(DDoS)가 뭔지도 알게 됐습니다. 블록버스터급 꼼수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 초대형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어떤 꼼수들이 숨어 있을까요.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일상 속의 크고 작은 꼼수를 모아 봤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11월 30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특별공연장에 '나는꼼수다'라고 쓰여있다.
 지난 11월 30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특별공연장에 '나는꼼수다'라고 쓰여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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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의 국어사전적인 의미는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다. 이런저런 유행어나 특정단어가 시대상황에 따라 등장하지만 '꼼수'만큼은 예외적인 단어가 아닐까 싶다. '나는 꼼수다'라는 말이 회자하기까지 MB의 노고가 없다 하진 않겠으나, 이제 '꼼수'라는 단어가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불편하게 들리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문제는 꼼수를 부림에도 꼼수라 생각하지 않는 분들(그분들은 꼼수가 아닌 '대의'라고 할 것이다)일 터이고, 소시민이나 이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꼼수적인 삶'이란 생존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사노라면'이라는 노랫말에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하는 가사가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조금은 쩨쩨하게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이 노랫말은 경종을 울리기도 했을 터이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꼼수 부리지 말고 살자고 다짐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꼼수 부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봐!"하면 몇 명이나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 시절 낯깎이는 경험이 떠오른다.

"저 선배 알고 보니 정치범이었어!"

나는 전면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단체에서 장을 하는 것보다는 참모 역할을 하거나 뒤에서 묵묵하게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협조를 잘해서 일이 되게 하는 스타일이랄까.

1984년 4월, 재학 중이던 대학에서 대동제 기간에 전통놀이인 고싸움을 했다. 그런데 대동제가 끝난 후 시위가 벌어졌고 우리는 페퍼포그와 경찰차로 가로막은 저지선을 뚫기 위해 '고'를 둘러메고 돌진하게 되었다. 고의 무게가 만만치 않으니 여러 명이 둘러 멘 상황에서 나는 퇴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빨리 도망칠 수 있는 위치는 고의 앞부분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보는 이들 처지에서는 맨 앞에 용감하게 선 격이지만, 페퍼포그와 정면으로 부닥친 후 뒤로 돌아오는 경로를 예상한 것이다. 고가 가까워지자 다행히 전경들이 비켜섰고 고에 부딪힌 페퍼포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는 듯했다. 이후, 고를 둘러메고 학교로 돌아와야 정상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모두 고를 놓고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졸지에 나는 고에 갇혀 선두에 남게 되었다.

사태를 깨닫고 뛰기 시작했으나 얼마 안 되어 나를 앞지른 페퍼포그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페퍼포그 문이 열리고 '백골단'이 뛰어나왔지만, 다행히 그들은 앞으로만 뛰었다. 백골단 뒤통수를 보며 달려가는 순간, 참으로 난감했다. 그들도 설마 자기들 뒤에서 달리는 학생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 옆길로 빠져나와 잡히지는 않았지만, 꼼수 부리다 적진 한가운데 남게 된 희한한 경험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 열사, 그해 7월 이 열사 장례식이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다. 연세대에서 신촌로터리, 서울시청 앞까지 이어지는 행진 대열을 보며 나는 그냥 먼발치에서 참석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현수막을 들게 되었는데 나와는 관련이 없는 단체였다. '정치범 관련 단체' 명의의 현수막이었는데 내려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6·29선언 이후였다 하더라도, 정치범이라면 유신체제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분들이었으니 운동권의 대부들이요, 내겐 과분한 자리였던 것이다. 그것을 본 후배들은 "저 선배 알고 보니 정치범이었어!"라고 오해했고, 일일이 내 설명을 듣지 못한 후배들은 내가 '언더 서클'에서 활동하는 골수 운동권임에도 제때 졸업했다며 신기해했다는 후문이다.

그 외의 꼼수에는 조금 관대해도 되지 않을까?

붉은 네온 십자가
 붉은 네온 십자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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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꼼수'까지는 아니지만 '쩨쩨하게' 정도에 속하는 일들은 일상이 된 듯하다.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시대를 목사로 살아가면서, 간혹 문제 있는 목사들이나 대형교회에는 날 선 비판을 하지만 나와 연관된 그룹에 대해서는 쩨쩨하리만큼 관대한 나 자신을 볼 때가 잦다.

마음 같아서는 내부고발자라도 되어야겠는데 이런저런 이해관계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우회적으로 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대놓고 '잘못'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변명부터 생각날 때 무진장 비참해진다. 설교할 때도 그렇다. 물론 교인들의 입맞춤식 설교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직접적으로 해야 할 이야기를 빙빙 돌려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들어라' 하는 심정으로 말할 때, 나는 김어준의 말마따나 '존나' 꼼수 목사가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날 세우며 비판했던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의 자괴감이란…. 그러면서도 거룩한 척하고 살아가는 나를 볼 때 그 자체가 꼼수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꼼수라는 단어가 보편화하면서 내게는 다소 위안 같은 것을 준 것은 아닐까.

가진 자들의 꼼수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꼼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들의 꼼수가 더 갖고 빼앗으려는 것이라면, 가지지 못한 자들의 꼼수는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한 방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자들이 자신들의 꼼수를 '대의'라 강변할 때, 약자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임에도 늘 '쩨쩨하게' 혹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자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이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꼼수엔 분노해야 하지만, 그 외의 꼼수에는 조금 관대해도 되지 않을까?

어떤 유행어가 한 사회를 돌아다닐 때, 그것이 권력의 비리와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면 어떤 격한 단어라도 환영이다. 김어준의 '씨바'도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주는 매개가 된다면 그것도 욕설이 아니라, 치유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좋은 데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는 식의 광고가 한때 유행이었다. 대학 시절 강의시간에 존경하는 교수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노동자가 너무도 좋은 일이 생겼는데 도무지 표현할 재간이 없었단다.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어떤 문장도 그 기분을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 그런데 결국에는 단 한 문장으로 그 기분을 다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씨발, 존나 좋네!"

그거다. 단순히 외형적으로 혹은 국어사전적으로 담긴 의미만 따라가면 말의 행간을 놓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꼼수'라는 단어, 대환영이다. 내 안의 꼼수 때문에 찔리기도 하지만.


태그:#꼼수, #김어준,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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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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