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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소·돼지 등의 숫자가 400만 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부산광역시 인구수와 비슷한 많은 동물을 살처분하는 과정에서, 살아 있는 돼지들을 구덩이에 쏟아붓고 매몰하는 참혹한 광경이 뉴스와 인터넷을 달궜다. 그러면서 동물 복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 논란은 이내 돼지고기값 파동에 묻히고 말았다(정부는 수입 돼지고기에 한시적으로 세금을 받지 않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물가대책을 발표했다).

수많은 질병, 공장식 축산과 무관하지 않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겉표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겉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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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009년 출판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논픽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가 올해 한국에서 출판된 것은 지난 구제역 파동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글쓴이는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조류독감(AI), 신종플루(H1N1) 바이러스의 숙주는 '공장식 축산'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글쓴이는 미국의 동물농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도시의 하수보다 160배나 더 많지만, 배설물을 처리하는 정화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지침, 배설물 처리 기반시설물이나 하수도가 거의 없다 보니 독소가 가득한 배설물을 강이나 공기 속으로 흘려보낸다고 비판한다. 이어 미국에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신뢰성 있는 자료를 수집하는 연방 기구조차 없다고 탄식한다. 

"축구장 크기만 한 분뇨 구덩이가 흘러넘칠 지경이 되면, 스미스 필드(축산업체)는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들판에 액화시킨 배설물을 뿌린다. 아니면 그냥 공기 중에 바로 뿌릴 때도 있다." (본문 중에서)

공장식 축산 농장의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여러 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축산업계의 분뇨배출 관행을 제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려고 하지만, 업계는 미국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규제법을 무력화시키거나 시행 못 하게 만들어버린다. 그간 다큐멘터리 통해 공장식 축산의 밀실형 사육 행태가 밝혀진 적이 있지만, 일상적인 학대와 도축 과정의 참혹함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소, 돼지, 닭들은 자동화된 컨베이어 시스템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기 장치를 통해 동물의 의식을 잃게 한 후, 차례로 공정을 따라 부위 별로 해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도축 노동자들의 입을 빌려 '컨베이어 속도가 빨라지면서 의식이 있는 채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머리 가죽을 벗기는 사람이 머리를 잘라 낼 때에도 여전히 소가 의식이 있어서 거칠게 발차기를 해대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소가 거기 왔을 때 벌써 발차기를 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은 뒷머리에 칼을 찔러 넣어 척수를 끊습니다." (본문 중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거칠게 발차기를 해대는 소를 다시 앞쪽으로 보낼 수도 없다. 결국 사태를 수습할 사람을 투입할 수 없는 자동화 시스템은 의식이 있는 소의 다리 아랫부분을 잘라버리고, 뒷머리에 칼을 찌를 수밖에 없다. 가죽이 벗겨지고, 다음 공정에서 내장을 꺼내고, 반으로 절단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냉동실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된다.

의식이 있는 채 발버둥치는 동물의 몸을 칼로 찌르는 상황이 많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찌른 사람은 과연 온전한 정신상태로 생활할 수 있을까. 지난 구제역 파동 당시 살처분에 동원된 수의사들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치료를 받은 바 있다고 한다. 인간이기에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물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죽임을 망설였다가는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글쓴이는 그들이 죄책감, 좌절감을 동물 학대로 분출하기도 한다며 공장식 축산은 동물과 인간 모두를 비참한 삶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식탁을 끔찍하게 만든 생명과학

생명과학의 발전은 공장식 축산이 해마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유전자조작기술의 발달은 공장식 축산업자들에게는 큰 축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동물들과 식량부족으로 고통 받는 국가의 국민들에는 재앙이었다. 육식을 줄이면 환경을 살리고, 굶주리는 이들이 배고픔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진부한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통해 공장식 축산에서 태어난 동물들이 유전자 조작과 약물에 의해 공산품처럼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육식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공장식 축산 암퇘지는 새끼 돼지를 평균적으로 거의 아홉 마리씩 낳고, 젖먹이고 기른다. 해마다 이 숫자를 늘린 결과 아홉 마리까지 온 것이다. 암퇘지는 언제나 똑같이 최대한 많이 새끼를 배는데, 임신 기간이 암퇘지의 일생에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략) 새끼 돼지의 젖을 뗀 다음에는 호르몬을 주사하여 암퇘지를 빨리 '(임신)주기'로 되돌림으로써 3주 만에 다시 인공적으로 수정할 준비를 마친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업은 과학의 힘을 빌려 동물들의 본능을 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최적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종(種)으로 개량해 종을 단일화하고 있다. 돼지만 하더라도 우리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는 공장식 축산에 적합하도록 개량된 품종으로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과학적 사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쓴이는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가 고통에서 나오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 촬영한 필름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한 편의 공포영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를 잘 알면서도 기억 속 어두운 곳에 사실을 묻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공장식 축산 육류를 먹는다는 것이 고문당한 동물의 살을 먹는 것이며, 나중에는 그 고문당한 살이 우리 살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덧붙이는 글 |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씀 |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09 | 1만5000원)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2011)


태그:#공장식축산, #호르몬, #신종플루, #동물,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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