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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분씨가 녹이쓴 조세를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있다
 가재분씨가 녹이쓴 조세를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있다
ⓒ 신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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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산다. 그 아픔을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던 지난 3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서 일년여 만에 만난 가재분(64)씨는 기자와 좀처럼 눈을 맞추려하지 않았다.

7일로 태안기름유출사고 4년을 맞아 신음하는 태안지역 피해민들의 아픔을 가씨 역시 고스란히 안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말을 맞아 사촌 혼사 집에 다녀왔다는 가씨는 "요즘은 혼사에 경조비 내기도 부족한 형편"이라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앞으로 20여일 있으면 남편의 기일이 되는데..."

한참을 말을 잊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다시 말을 잊는 가씨는 "남편이 죽고 나서 지난 봄에 맨손어업 사정 결과라며 137만 원을 받았고 나는 어업 신고가 안 되어 한푼도 안나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웃에 이사를 오고 굴 한번 안 깐 사람은 300만 원 받았다고 하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이렇듯 국제기금의 사정 결과를 불신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 바다에서 평생을 산 사람은 보상을 못 받거나 적게 받고 외지에서 바다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힘없는 피해민들의 현실이다.

"요즘은 하루에 인근 바다를 헤매고 다니며 굴을 까야 하루 4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할 수 있는데, 이마저 물때 따라 작업을 하니 일정하지도 않은 벌이로 말 그대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

가씨는 남편을 대신해 막내 아들을 장가 보내는 대사를 치루면서 남편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남편 고 이영권씨는 기름유출사고 이후 본인의 실망도 컸지만 피해주민들을 살려달라는 마음으로 생을 마감했는데, 남편의 죽음이 헛되는 것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긴 시간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굴을 까려 가야 하기 때문이다. 굴 까는 일은 생계와 직결이 되기 때문에 내 욕심을 접어야했다. 사고 후 4년, 아무런 변함 없이 피해민들이 속으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문을 나서는 기자의 눈에는 녹이 쓴 조세(굴을 까는 도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어 가씨도 조세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기름사고만 안났어도 남편과 함께 굴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남편이 더 그리워지는 표정이었다. 가씨의 대문에 걸린 녹이 쓴 조세는 사고 4년이 지난 현재 태안 피해주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바른지역언론연대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태안기름유출사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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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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