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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란 건 이런 날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지인의 소개로 찾은 라촌부락(경기 안성시 삼죽면 진촌리) 이종기·이순달 부부 집 거실엔 사람들이 꽉 차 있다. 자손들과 마을사람 등 십수 명이 있다. 오늘이 김장하는 날이란다. 자손들이 와 있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웬 마을사람들? 오늘의 이런 풍경이 있기까지 그들만의 진한 스토리가 있다.

위암 아내 위해 평생 살던 고향 떠나

원래 경상남도(사천과 진주)가 고향인 이들 부부가 여기로 이사 온 것은 7년 전이다. 평생 살던 터전을 버리고, 그것도 머나먼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 온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로 53년째 동행하는 노부부. 두 분이 사는 시골 집앞에서 다정스레 사진을 찍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보인다.
▲ 노부부 올해로 53년째 동행하는 노부부. 두 분이 사는 시골 집앞에서 다정스레 사진을 찍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보인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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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 살던 그들에게 8년 전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아내 이순달씨가 위암 판정을 받았다. 50여 년을 함께해온 아내가 위암이라니. 자녀들도 모두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기를 권유했다. 한마디로 서울 집에 이사 오라는 이야기였다.

아들의 이런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그들은 서울로 갈 것을 마음먹었다. 단, 한 집에 같이 살지 않는 조건으로. 아들 부부가 서울에 집을 알아봤지만, 집값이 만만찮았다. 그러다 현재의 집을 알게 된 것.

아들은 "병원이 가까운 서울 집에서 부모님이 사시고, 우리가 시골로 내려가겠습니다"라고 했고, 부모는 "아니데이. 너그들은 자슥들도 공부해야 되이까네 우리가 촌으로 가꾸마"라고 했다. 이렇게 서로 양보의 줄다리기를 하다가 부모들이 가기로 하게 된 것. 아내의 건강을 위해 공기 좋은 곳과 서울 병원에 가기 좋은 곳을 선택했다.

낯선 타향에서 그의 인생노하우 발휘해

"내사 마, 안성이 어데 붙었는지도 모르고 이사 왔다 아잉교. 집사람 건강만 아니었어모 여그 이사 올 이유가 전혀 없었제."

그랬다. 남편은 진주에서 30년 넘게 장사만 했다. 70 평생 고향 경상도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아왔다. 순전히 아내의 건강 하나 때문에 평생 터전을 버리고 이사 온 것이다.

이렇게 이사 온 그는 현실에 대해 푸념할 만도 하건만 그러지 않았다. 30년 사업 노하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타지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시골정서조차 그의 타고난 친화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마을 이장과 전 농협조합장, 개발위원 등을 그가 먼저 찾았다. 안성에 있는 '이씨 종친회'도 찾아갔다. 안성시 노인대학도 아내와 함께 다녔다. 마을회관에도 그가 먼저 찾아가 인사하고 같이 놀았다.

아내를 위해서라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남편의 진심은 그렇게 마을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해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김장도 같이하게 된 사이가 되었다.

부부가 평생 살던 곳을 떠나 뿌리 내린 부락 입구다. 안성시 삼죽면 진촌리 라촌부락 입구에 돌 비석이 정겹다.
▲ 라촌부락 부부가 평생 살던 곳을 떠나 뿌리 내린 부락 입구다. 안성시 삼죽면 진촌리 라촌부락 입구에 돌 비석이 정겹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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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사는 비결 알고 보니

"오늘 아니었으모 기자님이 내 못 만났을끼구마. 마침 김장하는 날이라 있었던 긴데."

그는 그랬다. 오늘은 동창회, 내일은 종친회, 낼 모레는 마을회관 등. 칠순의 나이에도 바빴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이사오다보니 아내의 건강도 되찾았다. 남편은 한눈에 봐도 현재의 삶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이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재밌게 사는 비결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욕심을 버리믄 인생이 행복한기라. 하모."

인생을 살만치 살고 나니 이게 보이더라는 남편. 아주 평범하지만, 그렇게 깨닫고 그렇게 살기에는 힘든 삶의 비결, 바로 욕심 없이 사는 길이었다. 전에는 먹고산다고 이런 비법을 몰랐단다. 아내가 아프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보니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고.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사진 한 번 찍자는 나의 말에 두 분은 어린아이같이 좋아했다. 아내는 머리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남편이 아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사진은 원래 이렇게 찍는 거라면서. 우여곡절을 넘긴 그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살믄 앞으로 얼매나 더 살겠는교. 다른 거 바랄 기 없심더.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구마는."

53년을 함께 산 부부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아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6일 이종기 이순달 부부의 시골집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이종기 이순달 부부, #노부부, #삼죽면 라촌부락, #안성,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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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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