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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읽는 토론학교 : 역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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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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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가 빨리 비준이 되면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게 된다. 그럼 우리도 그만큼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야당이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어물어물 넘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미FTA 국회 비준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 야당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일본도 하지 못한 미국과의 FTA 체결이 이렇게 좋은 것인데 왜 발목만 잡느냐는 얘기다. 대통령의 현실인식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역사의 거울 속에 현실을 비추어 본다. 현실에서 중요한 결단이 필요했던 시기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길을 찾았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구한말 국권피탈 과정에서 매국을 주도했던 이완용의 이야기 한 대목을 들어보자.

"우리는 미국 같은 부강한 경제적 국가를 건설해야지, 남의 나라 노예가 되는 핀란드 같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완용의 말처럼 조선은 미국과 같은 부강한 경제 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남의 나라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던 이완용은 을사조약을 비롯한 각종 주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조약 체결을 주도했다.

'지식과 정답'만 가르치며 살아온 건 아닐까

혁신학교 연수를 받으면서, 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20년 역사교사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내가 수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건 내 의도였을까, 아이들과의 관계였을까. 내 의도를 앞세워 아이들과의 소통을 멀리하지 않았을까.

연수를 통해, 방송을 통해 자극도 충격도 받았지만 교실 수업이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수능을 눈앞에 둔 일반계 고등학교 고3 교실이라는 현실을 앞세워 수능대비 문제풀이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20년 넘게 몸에 굳은 수업 방식이 변화를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이 들면서 몸에 굳은 관성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화들짝 놀라기도 하니까.

수능 끝난 후 읽게 된 <내일을 읽는 토론학교 : 역사>를 통해 혁신학교 연수, 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프로그램 시청을 통해 느꼈던 자극과 충격이 되살아났다. 지난 20년간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역사는 '정답과 지식'이 아니었을까. 우리 학교 다니던 시절처럼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도록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수능 대비 5지선다 문제 풀어주면서 정답을 꼭꼭 짚어 일러주었다. 

머리로만 외운 지식은 현실 적응력이 떨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청동기시대 때 건국되었다고 외우지만, BC 2333년에 건국된 국가가 어떻게 청동기시대 국가일 수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답이 궁해진다.

'청동기시대 계급 발생을 알려주는 유물이 고인돌'이라 외운 학생들에게 이유가 뭔지 설명해보라면 어떤 답을 할까? "교과서에 그렇게 나왔어요"라 답하거나 "고인돌 만드는 데 많은 사람이 동원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족장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답을 할 것이다.

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 무덤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왜 그렇게 단정하는가? 교과서에 나오는 '정답' 말고 다른 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책 속에서)

<내일을 읽는 토론학교 : 역사> 머리말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 살아가는 삶을 다섯 개의 선다형으로 요약해 정답을 찾을 수 없듯이,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역사 역시 정답과 정답이 아닌 것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정답이 있는 역사'만을 강조하고 '호기심과 의문이 있는 역사'를 외면했다.

무너지는 담장 아래로 다투어 달려가는 이들

토론을 통해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머리로만 역사 지식을 축적한 사람들에게 역사를 통해 내일을 읽는 안목을 갖추기 쉽지 않다. 눈앞의 현실에 얽매인 채 먼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는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너지는 담장 아래로 다투어 달려가는 이들도 많다.

<내일을 읽는 토론학교 : 역사>는 토론을 통한 역사 학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정답과 지식이 아닌 토론을 통해 '과연 그럴까?' 의문을 가져보고, '정말 그럴까?' 되짚어 생각해보고, 발상을 바꾸어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역사 수업을 위해 전국역사교사모임 사료모임 선생님들이 오랜 세월 현장에서 접한 경험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 역사 학습은 과거 역사를 통해 내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토론을 통한 역사 수업은 청소년들에게 자신들 앞에 맞닥뜨린 거센 역사 논쟁의 파도를 헤쳐나갈 힘을 길러줄 수 있다.

한미FTA 비준이 국익에 도움이 될 거라고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미FTA 국회 비준을 단독 상정해서 4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킨 한나라당 의원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무엇이 국익이고 무엇이 국익에 배치되는지, 무엇이 국민들을 위한 거고 무엇이 국민들 이익에 배치되는 건지 진지하고 철저한 토론 절차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지나간 역사는 과거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니까. 어제의 역사는 오늘의 눈으로 다시 쓰고 끊임없이 고쳐가는 것이니까.

덧붙이는 글 | <내일을 읽는 토론학교 : 역사> 이인석, 정행렬 씀, 우리학교 펴냄, 2011년 7월, 280쪽, 1만6000원



내일을 읽는 토론학교 : 역사 - 토론으로 다시 쓰는 역사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사료모임 지음, 우리학교(2011)


태그:#토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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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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