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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5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국세청 내부통신망 게시판에 올렸다가 광주국세청으로부터 파면 처분을 당한 김동일씨.
 지난 2009년 5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국세청 내부통신망 게시판에 올렸다가 광주국세청으로부터 파면 처분을 당한 김동일씨.
ⓒ 시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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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이명박 정권은 공무원을 자신들 하수인 취급하고 있어요. 공무원이 제대로 서야죠. 그렇지 않으니까, 이 추운날에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김동일(49) 전 국세청 나주세무서 계장이다. 24일 오후 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아마 다시 공직자로 돌아갈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고,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당시 국세청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 한상률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국세청은 곧바로 파면시켰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했다. 행정안전부는 그에게 해임처분을 내렸고, 그는 공직자 옷을 벗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정부의 무리한 공권력 집행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의 법정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30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대법원 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이날 김씨의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또 그의 해임처분 역시 부당하다는 기존 판결을 받아들였다.

"게시판에 글 한번 올렸다고, 쫓겨나고..."

- 2009년 5월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알았나.
"당연히 몰랐다. 그떈 정말 내가 몸담고 있는 국세청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 국세청은 당시에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는데.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있었고, 청장 등 수뇌부에 철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작 국세청의 명예를 실추시킨 장본인들이 누군지는 이번 판결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지난 30개월동안 생활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묻자, 그는 "퇴직금 받은 것으로 버티고 살았다"면서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하루살이 노동 등으로 일하면서 생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 소식이 나오자, 가장 먼저 아내와 자녀들에게 알렸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이 너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했다"면서 "당시 고3 수험생이었던 딸 아이 충격도 컸고, 아이들의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회고했다.

- 대법원의 판결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사법부가 국가권력의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켜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 게시판에 정부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일터에서 내몰고... 내가 지금 민주국가에서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앞으로도 쫄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것"

- 이제 다시 국세청으로 돌아갈 것인가.
"당연히... 복직 할 것이다."

- 국세청에서도 '복직할 것'이라고 하던데.
"그렇지 않아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국세청으로부터 '다음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국세청에 대법원 판결문이 나오게되면,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 복직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 복직하게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직책으로 가게 될지도... 광주지방국세청쪽에선 아무런 조건없이 원직에 복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긴하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30개월동안 많은 생각들을 하게됐다"고 했다. 이어 "공무원이 바로서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현 정권이 공무원들을 마치 자신들의 하수인 취급하듯 생각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의 말을 좀 들어보자.

"정권이 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제일 먼저 싸워야 하는 집단이 공무원이에요. 그렇게 못하니까, 시민들이 이 추운날에 거리로 나오면서 고생을 하지 않습니까. 특히 고위관료들이 정권을 향해 '아니다'라고 말을 제대로 해야죠."

- 일부에선 법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말하기도 한다.
"정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일을 하자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와서 자신들 뜻과 맞지 않는다고 국민들을 겁박하고, 그런 사례들이 얼마나 많았나. 공무원들이 내부에서 제대로 싸우지 않으니까, 시민들이 나서지 않는가."

'복직하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곧장 답이 돌아왔다. 그는 "더이상 국민 무시하고, 소통하지 않고, 겁박하는 정권은 없어야 한다"면서 "정권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부터 쫄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가 나에게 30개월동안 이같은 생각을 갖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국세청 본청.
 서울 종로구 국세청 본청.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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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세청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24일 "법원의 결정을 존중할 뿐"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다. 김씨의 향후 복직 여부에 대해서도, 그는 "김씨의 해임처분 등도 법원에서 취소됐기 때문에 적절한 절차에 따라 복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지난 2009년 5월 김씨가 내부통신망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한상률 전 청장의 책임 등을 거론하는 글을 올리자, 징계위원회를 열어 파면 결정과 함께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까지 했었다.

이후 김씨의 파면 결정은 행정안전부에서 해임으로 수위가 한단계 낮아졌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국세청과 검찰 등은 김씨를 상대로 한 과잉 대응과 무리한 고소 등의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태그:#김동일, #국세청, #한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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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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