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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명동 현장에서 경찰이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것을 봤다. 추워서 오리털 잠바를 입고 나왔는데, 이 날씨에 물대포를 쏜다는 발상에 경악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인지 많은 시민들이 우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물대포 물줄기를 막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 그들은 한나라당이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국가 협약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에 화가 나 뛰쳐나온 사람들이었다. 연령대가 어려질수록 그런 대의명분에 자극받아 화가 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쏟아지는 물대포에도 "날치기 협상은 무효"라고 외치며 항의했다.

 

물대포를 맞아도 비키지 않고 그대로 외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사진을 찍다가 물대포를 맞아 흠뻑 젖었다. 경찰은 가까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겨냥해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도로 위의 사람들을 찍다가 인도로 물러났지만 물대포의 물줄기는 끝까지 피하는 사람을 겨냥했다. '사진 찍지 말고 빨리 여기서 사라지라'고 쫓아내는 것만 같았다. 물줄기가 카메라를 때려 기계가 망가진 사람도 있었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머리가 너무 차가워 만져보니 얼기 직전의 모습으로 굳어 있었다. 현장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도 부들부들 떨면서 왔다. 분노 때문이었는지, 추위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집에 돌아와서는 몸살이 나는 줄 알았다.

 

지난 23일은 더욱 추웠다. '서울광장에 20만 명이 모이면 물대포를 쏘지도 못할 것'이란 말이 그럴 듯했다. 하지만 20만 명이 모이는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집회가 평일 저녁 시간에 열리기도 했고 추운 날씨 때문에 그 정도의 사람은 모일 수 없었으리라. 오프라인 집회 방식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니었다.

 

체감 온도는 영하 10도였다. 밤새워 물대포를 맞고 떨면서 귀가했을 그들이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맞이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몸 상태가 안 좋았던 사람들은 심한 감기에 걸리거나 폐렴에 걸릴 수도 있다. 혹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노숙인이 있었다면 그는 동사했을지도 모른다.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미필적 고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날씨를 고려하지 않는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두고 '사람들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살인무기를 사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저체온 증으로 합병증이 올 수도 있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물대포를 피하지 않았던 것은 차디찬 물줄기가 마음속 분노에 불을 지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은 춥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난다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22일과 23일, 시민들을 향해 발사한 물대포는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다. 경찰이 시민들을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상자가 속출해 살인무기라는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물대포는 꾸준히 사용됐다. 그런데도 왜 시위는 멈추지 않는 것일까.

 

 

지금은 좋은 곳에 가 있을 인디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나는 개>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멍멍대면 너는 찍찍대고..나는 개 너는 쥐...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나는 개> 중)

 

시위는 정부가 계속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경찰의 물대포는 공분을 형성해 왔고, 추운 날씨 속에서 퍼붓는 물줄기는 오히려 가슴을 더 불타오르게 한다. '쫄지 말라'는 외침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정권의 지속된 부조리에 억눌렸던 민심이 부풀어 오르며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팍팍하다'는 서울시장의 말처럼 파국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서민 경제와, 무너진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시 거리에서 외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총선과 대선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몰라서 거리로 나섰을까. 그들은 그저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물론 이틀 동안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정부의 잘못에 항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위가 곧 수그러들까. 쉽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보다 아직 물대포를 맞지 않고 울화통에 치민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태그:#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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