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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막을 내린 드라마 <계백>
 22일 막을 내린 드라마 <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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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드라마 <계백>(연출 김근홍 이성준 정대윤, 극본 정형수)가 36부를 끝으로 그 막을 내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TNmS 기준으로는 11%, AGB닐슨 기준으로는 13%였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드라마 <계백> 역시 흥행에 실패해온 백제 사극들의 전례를 그대로 따랐다. 실제로 백제 사극은 최근 드라마 <근초고왕>(연출 윤창범 김영조, 극본 정성희 유숭열)이 시청률 10% 대에 머물렀고 드라마 <서동요>(연출 이병훈, 극본 김영현) 역시 이병훈 PD의 전작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백제 사극의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 백제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여겨진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자국 위주로 역사를 기술했다. 또한, 삼국 시대에 대한 기록을 그나마 많이 적고 있는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 역시 신라 후손이기에 상대적으로 백제에 대한 기록은 변변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고구려의 경우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는 또 얘기가 다르다. 삼국 중 가장 강성했고 광활한 영토를 소유했던 고구려를 소재로 한 사극은 국민들에게 대리 만족을 안겨주며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던 것이다.

물론 백제 역시 한때는 강성했던 나라였고 드라마 <근초고왕> 등에서 백제의 대륙 영토에 대해 묘사하기도 했지만, 사료 부족과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학설을 토대로 그린 드라마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도 사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전례를 깨고자 한 드라마 <계백>은 <이산>(연출 이병훈 김근홍, 극본 김이영)의 이서진, <주몽>(연출 이주환 김근홍, 극본 최완규 정형수)의 송지효 등 사극의 경험이 있는 배우들의 캐스팅과 초반 아역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통쾌한 복수극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시청률 흥행에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드라마의 끝은 결국 계백의 죽음으로 마무리됐다. 처음부터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백제의 패망과 주인공 계백의 죽음으로 끝나는 드라마는 왠지 개운치 못한 뒷맛을 안겨줬다. 이런 점도 시청률 저조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 본다.

시청률을 떠나 의미를 남긴 <계백>

백제의 충신이었던 계백
 백제의 충신이었던 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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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드라마 <계백>은 시청률을 떠나 여러 의미를 남겼다. 흔히 비운의 영웅으로 여겨지는 계백(이서진 분)의 일대기를 조명한 것이 가장 큰 의의라 할 수 있다. 물론 계백에 대해서는 정확히 언제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역사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결국,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백제 말기의 역사를 살며 백제의 멸망과 운명을 같이 한 '계백'은 좋은 드라마 소재였던 것은 분명하다.

계백은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전에 자신의 가족을 스스로 죽이고 참전한다. 영화 <황산벌>(감독 이준익)에서는 이 장면을 다소 코믹하면서도 계백에게 훈계하는 것으로 묘사한 바 있다. 실제로 조선의 권근 같은 유학자는 계백의 이 행동에 대해 '처자식을 죽인 것은 잔인무도한 행위로 사기를 떨어트려 싸우기도 전에 굴복해 버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계백의 마음 역시 편했을 리 없을 것이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이에 계백의 부인 초영(효민 분)이 스스로를 죽여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실제 계백은 결사항전을 다짐하면서 '패망한 나라의 백성은 노비로 전락하는 것이기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일가족을 죽인 것이고 조선의 안정복과 서거정 등은 이런 계백의 절개와 충절을 높이 평가했다.

계백과 함께 거론되는 인물은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조재현 분)이다. 흔히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몰락으로 이끈 폭군으로 거론되곤 한다. 그와 함께 낙화암에서 삼천 궁녀가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뒤따른다. 그러나 의자왕은 젊은 시절 해동증자로 불릴 정도로 현명하였고, 그가 당나라로 끌려갈 때 백제의 백성들은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의자왕을 한심한 임금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역시 승자의 기록에만 의존했을 때에 그런 것이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의자왕의 비열함과 실정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는 끝까지 한 나라의 군주로서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가 충신이었던 성충(전노민 분)과 흥수(김유석 분)의 말을 좀 더 잘 따랐더라면 백제를 지킬 수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백제는 이미 귀족들의 부패가 만연해 국운이 기운 상황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새롭게 조명된 또 하나의 인물은 은고(송지효 분)이다. 그녀는 의자왕의 비로 삼국사기에도 백제를 멸망하게 만든 원흉으로 기록돼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의자왕과 계백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총명한 여인에서 신라와 내통하는 역적으로 전락하는 모습으로까지 그려졌다. 물론 드라마에서 그녀는 끝내 자결을 선택했지만 실제로는 어땠을까? 그러나 반성을 했다고 해도 백제의 패망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이었다.

계백이 죽은 그 이후의 역사

드라마는 계백의 죽음으로 끝이 났지만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도 드라마 속 못지않게 치열했다. 드라마 <계백>의 마지막 회를 보면 계백이 신라의 김유신(박성웅 분)에게 '신라의 대장부인줄 알았는데 비겁하게 당나라에게 머리를 조아려 군사를 끌어들였느냐'고 호통 치는 장면이 있다.

계백의 말대로 신라와 김유신의 행동은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 어느 나라도 자력만으로는 통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찌됐건 신라는 백제를 멸하고, 이어 고구려마저 멸망시키며 불완전한 삼국 통일을 이루어낸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야욕을 드러낸 당나라와 싸워야했고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신라는 우리 영토 상당 부분을 상실한 채 부분적인 통일을 했고, 결국 이는 고구려 땅에 다시 발해가 들어서며 남북국 시대를 형성하게 되는 원인이 된 것이다.


태그:#계백, #백제, #사극, #드라마, #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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