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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윤유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빵점 남편 안내상. 결국 그는 인터넷에 "이게 다 폐경 탓이다"라는 댓글을 남기는 성지순례를 떠난다.
 아내 윤유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빵점 남편 안내상. 결국 그는 인터넷에 "이게 다 폐경 탓이다"라는 댓글을 남기는 성지순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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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어디에요?"
"나 서울에 왔어. 볼 일이 있어서."
"진짜요?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엄마가 또 문 안 닫고 갔지요?"
"어머, 어쩌니. 또 그랬네. 별일은 없지?"
"암튼 엄마. 이게 다 폐경 때문인 거야?"

또 그랬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외출을 한 것이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절대 내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박박 우겼다. 하지만 두세 번 같은 일이 반복되고 문단속뿐 아니라 가스불 단속도 공과금 납부 일자도 심지어는 중요한 약소도 잊어 버리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두 아들과 남편은 나를 거의 환자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집 남자들(두 아들과 남편)도 아내와 엄마의 폐경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서는  MBC 시트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의 안내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이킥의 윤유선은 나이 마흔여섯에 폐경 진단을 받고 혹독한 우울증을 앓는다. 뿐만 아니다. 줄리엔의 샤워하는 뒷태를 훔쳐 보기도 하고 정재형과의 핑크핏 로맨스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 안내상은 아내의 변화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조기폐경을 맞은 아내 윤유선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불만에 대해 "이게 다 폐경 때문이야"라는 말로 투덜거리던 주책없고 배려 없는 얄미운 남편 안내상.

하이킥과 다른 게 있다면 우리 집은 아들들까지도 농담 삼아 "이게 다 폐경 때문이야"라는 유행어를 즐겨 쓴다는 것이다. 솔직히 남자들이 뭘 알까?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생산능력을 잃지 않는다지 않는가? 그들이 폐경기 여성이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감 그리고 실제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알기나 할까.

임신인 줄 알았는데... 폐경이랍니다

MBC 시트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마지막 난자를 떠나보내는 아내 윤유선. 하이킥은 폐경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를 5회나 다루었다.
▲ 안녕, 난자야 MBC 시트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마지막 난자를 떠나보내는 아내 윤유선. 하이킥은 폐경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를 5회나 다루었다.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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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언저리. 유난히 가슴에 통증이 심하고 오래가는 것이 너무나 이상해 유방암 클리닉을 찾았다. 가슴 통증이 심해서인지 온몸 관절들도 아프고 쉽게 피곤해지며 무기력감과 우울감, 불면증도 찾아왔다. 엑스레이, 초음파, CT, 혈액검사... 모든 진단을 마친 의사가 나에게 묻는다.

"생리 언제 하셨나요?"
"생리요? 그러니까... 어... 잠시만요. 그게 언제였더라?"

대답을 떠올리는 몇 초 되지 않는 순간에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생리를 언제했더라? 두 달이 넘었네. 그러다면... 나이 오십에 임신? 어머. 미쳤어. 창피해서 어떻게. 아니야. 말도 안 되지. 남편이 불임수술했잖아. 아니야 그게 오래되면 풀릴 수도 있다고 하잖아. 어머... 정말 그럼 어떻게... 그래도 이 나이에 아기를 가지면 축복인 건가? 근데 어떻게 키우지? 남편은 뭐라고 할까? 애들은 또 뭐라고 할지...' 

혼자 생각에 또 다시 붉어지는 얼굴을 어찌할 바 몰라하고 있는데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너무 걱정 마세요. 큰 병은 아니구요. 폐경전 증후군입니다. 폐경기 전 여성호르몬 분비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여러 가지 증상들이 오는데 유방통의 경우는 호르몬의 이상증가로 인해서 발생 하는 증상중 하나지요..."

'임신이 아니고 폐경이래. 폐경이래. 폐경. 폐경.....'

잠시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이 온 후, 말도 안 되는 내 상상에 그만 "풋"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혹시라도 저 의사가 말도 안 되는 잠깐 동안의 내 상상을 짐작했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하는 생각에 또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폐경이 오는 게 아니구요. 이렇게 천천히 몸에 이상이 오면서 폐경으로 가는 겁니다. 체질적으로 예민하신 분들은 몇 년씩 오래가기도 하는데 유방통뿐 아니라 요통이나 관절통증, 식은땀, 불면증, 무기력감, 우울증... 증세가 다양하게 나타나지요. 운동과 적당한 음식조절 그리고 약물치료로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으니 너무 걱정마시구요."

의사가 처방해준 약과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켜준다는 건강식품등을 먹으면서 유방통과 식은땀, 시도 때도 없는 홍조증상은 사라졌지만 건망증만은 지금도 여전히 고질병처럼 사라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다.

까칠해진 남편... 선배 폐경인이 참는다

폐경전 증후군 완화에 좋다는 약과 건강식품을 복욕하고 있다.
 폐경전 증후군 완화에 좋다는 약과 건강식품을 복욕하고 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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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변화라는데...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폐경을 알지 못하는 남자들이 이해하고 포용하며 위로와 함께 도움을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 이게 다 폐경 때문이야. 그러니까 폐경이라고 놀리지만 말고 알아주고 도와 달란 말이야. 남자들이 폐경인의 슬픔을 알기나 해? 가진 자들이 없는 자의 슬픔을 알아." 

선전포고가 효과가 있었던지 아들도 남편도 조금씩은 이해를 하는 분위기다. 심각한 실수를 해도 슬쩍 폐경증후군에 얹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기도 한다. 약간의 투정과 엄살도 허용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남편이 이상하다. 뭔가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고, 매사에 의욕이 사라졌는지 소파에 길게 눕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이 답답해서 잔소리를 했더니 급기야 버럭 소리를 지른다.

"당신만 폐경인줄 알아. 나도 폐경이야. 남자도 폐경 온다구. 나 좀 내버려 둬."

뭔가 당한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선배' 폐경인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내가 먹는 약들을 남편과 나누어 먹어야겠다. 금실 좋은 부부는 입덧도 임신도 함께 한다는데 우리 부부는 정말 금실이 좋은 모양이다. 심지어 폐경도 함께 하니 말이다.


태그:#폐경기, #남성폐경, #이게 다 폐경때문이야, #폐경전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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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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