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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소설(11월 23일)은 첫 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리는 추운 절기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9월부터 형성된 '참조기' 어장은 절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3개월째 이어지면서 어민들의 콧노래가 흥겹기만 하다.

11월 첫 번째 조금(음: 10월 8일)에 이어 두 번째 조금(음: 10월 23일)에도 군산시 해망동 공판장을 찾았다. 고깃배(안강망)마다 만선으로 입항하여 풍성해진 부둣가는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고 팔에 힘이 솟는다. 선주도 선원도 친구요, 형제요, 이웃 아니던가.

부둣가 생선가게 주인 부부가 얼음을 채운 생선상자를 옮기고 있다.
 부둣가 생선가게 주인 부부가 얼음을 채운 생선상자를 옮기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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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생선상자를 배에 싣는 안강망 어선 선원들.
 빈 생선상자를 배에 싣는 안강망 어선 선원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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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조금'을 하루 넘긴 지난 주말(19일) 새벽 5시. 아직은 깜깜한 밤인데도 해망동은 대낮처럼 밝다. 가게들이 잔칫집 마당처럼 백열등을 밝혀놓았기 때문. 생선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부부가 참조기 상자를 차에 싣느라 땀 흘리는 모습이 부럽게 보인다.

공판장은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 좀 비켜주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기사 아저씨부터 빈 생선 상자를 배에 싣는 선원들. 얼음이 가득 담긴 손수레와 오토바이를 끌고 오가는 인부들. 공판장을 기웃거리는 상인들, 허리를 활처럼 구부리고 조기 상자를 쌓는 아주머니들···. 

대목을 맞은 대장마차 풍경. 영업은 낮에도 계속 한다고 했다.
 대목을 맞은 대장마차 풍경. 영업은 낮에도 계속 한다고 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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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카페'로 불리는 포장마차도 손님으로 만원이다. 해장국이 생각나는 새벽인데다 바닷바람이 쌀쌀하니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선원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하나 사 먹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유감이다. 

"상자 하나 옮기는 데 700원"

경매가 끝난 갈치 상자를 옮기는 노대평 아저씨
 경매가 끝난 갈치 상자를 옮기는 노대평 아저씨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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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격도 좋고 온화한 인품이 돋보이는 아저씨가 생선 상자를 나르고 있기에 다가갔다. 만선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뒤치다꺼리해주는 선주(船主)로 알고 말을 붙여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해망동에서 35년째 막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노대평(67세)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아저씨에게 하루 품삯은 얼마씩 받느냐니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선창가 '열두 냥짜리 인생'이요!"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이어 "일당은 없고 상자를 옮기는 수대로 먹어요"라며 상자 하나 옮기는디 700원씩 받습니다"라고 한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여유가 넘친다.

아저씨는 새벽 3시에 일어났단다. 하루 수입은 들쑥날쑥. 5만 원도 좋고, 7만 원도 좋고, 10만 원도 좋단다. 최고 기록은 20만 원이란다. 고깃배들이 매일 만선으로 입항해서 정신없이 바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기에 '열두 냥짜리 인생'이라는 것. 노랫말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 떠오르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씨알이 굵은 조기는 뛰고, 작은 조기는 내려 

군산수협 김형문(46) 해망동 공판장장은 "올해는 수온이 알맞게 형성되어 풍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다음 조금(12월)부터 어획량이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데, 아무튼 날씨가 좌우한다"고 말했다. 날이 추워질수록 조기 씨알도 작아지고, 따뜻한 남쪽 해역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라는 것.

군산수협 소속 안강망 어선은 모두 17척(70톤~120톤). 조금날(18일) 들어온 두 척과 이날(19일) 들어온 여섯 척의 어획량은 1100~1300상자. 작년에는 한 척당 600~700상자를 잡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출어 때마다 만선인 올해는 1000상자가 넘어야 만족한단다.

김 공판장장은 지난 조금에 비해 어황이 조금 못하다고 전했다. 17척 중 절반은 지난 조금과 비슷하고, 절반은 약간 떨어졌다는 것. 조기 씨알도 작아졌단다. 가격도 20만 원을 호가했던 상자(300마리)가 전날(18일)에 15만 원 나갔다고. 반면 지난 조금에 40만 원 호가했던 상자(200~230마리)는 60만 원까지 뛰었다고 한다.

해망동 공판장 조기 경매 모습
 해망동 공판장 조기 경매 모습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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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5분에 시작된 경매는 정현용(54) 경매팀장이 힘겹게 한두 판을 넘겼다. 김 공판장장은 "첫 경매는 아주 중요해서 최고의 베테랑 경매사가 나선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조기가 너무 많이 잡히다 보니 신비감이 떨어지는지 중매인들의 호응이 예전만 못하다.

장소를 옮겨 경매 보조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한 상자에 300마리 담긴 참조기 359상자를 경매한다고 신호를 보내면서 바람을 잡는다. 신호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들고, 중매인, 경매사, 구경꾼까지 모두 긴장감 넘치는 표정들이다.

"이~야! 선도 좋은 참조기가 삼백오십 아홉 상자. 자~ 열기~야 십만 오천이야~ (잠시 멈추더니) 조기들 안 사실 겁니까? 어제 조기보다 통통허고 씨알도 좋잖여! 자 절반값에 드릴팅게 시작 헙시다. 열기야~ 십일만 오천이야~ 일십이만 오천! 이야~ 일십삼만 오천···." 

수량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참조기 삼백쉰아홉 상자는 중매인 두 사람이 각각 156상자와 203상자씩 구입하는 것으로 경매를 마쳤다. 한 상자에 13만 5000원으로 지난 조금에 비해 2만 원가량 내려간 가격. 

경매사가 알기 쉽도록 조기 상자에 메모를 해놓았다.
 경매사가 알기 쉽도록 조기 상자에 메모를 해놓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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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공판장장은 조기 상자에 부착한 메모(39x9+8, 359②) 내용에 대해 "앞자리 수 39는 3상자씩 13줄을 쌓아놓았다는 표시이고, 9+8은 가로 아홉, 세로 여덟 상자를, 아래 359는 전체 상사 수, 뒤에 적힌 ②는 마지막 줄에 두 상자가 비어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반가운 소식은 그동안 자주 사용했던 일본식 단어가 대부분 순화되었다는 것. 대표적인 예로 선도가 좋을 때 사용하던 '이찌방', '니방'은 '선도 좋고'와 '조금 떨어지고'로 사용한다고. '호시가리'는 참가자미,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 '이시가리'는 광어(줄가자미)로 표시한단다.

"수산물 취급하는 업자들 정신 차려야!" 

이날 해망동 공판장에서 경매된 조기는 모두 6500상자. 풍어라고 해서 소비자들이 모두 싼 값에 사 먹는 것은 아니었다. 선물을 한다거나, 집안 잔치에 쓰려고 더 주고 사가는 바람에 6만 원 하던 조기가 갑자기 6만 5000원에 경매될 때도 있다고 한다.

악덕 상인에게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현용 경매사
 악덕 상인에게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현용 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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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끝나고 만난 정현용 경매사는 "공판장에서 5만~6만 원에 경매된 조기가 소비자에게 9만~10만 원에 팔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씨알이 작은 조기로 밑바닥을 채우는 행위(일명 '속박이')를 일삼는 악덕상인까지 발견되고 있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정 경매사는 "일반 소비자들은 한 상자에 6만~7만 원(350~380마리) 선을 가장 선호한다"며 "소비자에게 신용을 잃으면 만선을 해도 필요 없으니 수산물 취급 업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 내용과 가격이 다르다는 항의성 전화가 하루에 수십 통씩 걸어온다고.

정 경매사는 "중매인들이 조기를 중간상에게 넘기면서 발생하는 이율(수수료)은 4%에서 5%로 고정돼 있다"며 "신용을 기본으로 하는 양심적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악덕 상인은 철저히 조사해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를 마치고 오면서도 풍어라고 마냥 즐기기만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참조기 풍어, #해망동 공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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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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