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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전 아는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창기야, 구청에서 환경미화원 뽑더라. 함 응시 해 봐라'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응시요령에 대해 나와 있었습니다. 찾아가서 응시원서를 받아 서류 준비해 등록을 했습니다.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11월 20일 오전 10시에 체력검정을 하니 그 때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후 나름대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시설관리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틈틈이 달리기도 해보고 팔굽혀펴기와 철봉에 매달려 오래 매달리기도 해보았습니다.

체력시험에 대한 정보를 보니 3가지 체력측정을 했습니다.

- 모래주머니 멀리 던지기(남자 10kg, 여자 7kg)------ 20점
- 철봉오래매달리기(남자는 손바닥을 앞으로 여자는 뒤로)------ 20점
- 모래주머니 메고 50M 달리기(남자 20kg, 여자 15kg)------ 20점

일터에선 20kg 모래주머니를 만들 수 없어서 오마이뉴스에 적립한 원고료를 찾아서 20kg들이 쌀을 한 포대 샀습니다. 비닐주머니에 넣어 꽁꽁 묶은 후 일하면서 틈틈이 20kg 쌀을 어깨에 메고 달려보곤 했습니다.

체력시험날 오전 8시에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밖을 나서니 오늘 따라 날씨가 상당히 쌀쌀했습니다. 대입학력고사 볼 때마다 한파가 몰아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체력시험 한파라 그런지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체력시험이 치러지는 중학교에 가보니 구청 직원들이 많이 나와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 응시한 분들은 여기 와서 등록하세요."

입구쪽에 책걸상을 준비해놓고 거기서 등록절차를 밟았습니다. 주민증을 제시하고 이름을 확인한 후 응시번호표를 발급받았습니다. 저는 기호 4번이었습니다. 10시경이 되자 가족도 오고해서 150여 명이 모였습니다. 10시가 되자 더이상 등록 받지 말라고 하고 등록받는 곳을 치웠습니다. 모인 응시생 나이 분포도를 물어보니 20대가 극소수 응시하고 다음으로 30대, 40대가 가장 많았습니다. 더러 50대도 있었습니다.

"서류는 모두 92명이 제출했는데 오늘 8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84명이 체력시험을 봅니다."

10시 후 곧 체력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응시생 모두에게 휴대폰을 달라고 했습니다. 휴대폰은 체력시험 끝나고 준다고 했습니다. 구청 환경미화과장이 나와 인삿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각 조별로 모이라 하고 여러가지 체조를 실시했습니다. 저는 응시생들을 나눠서 체력시험을 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체력시험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니다. 모래주머니 던지기 먼저 하고 철봉 매달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래주머니 메고 달리기를 하겠습니다. 한 종목이 다 끝나면 다음 종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남자 10kg, 여자 7kg 을 들고 멀리 던지기를 하고 있습니다.
▲ 모래주머니 멀리 던지기 남자 10kg, 여자 7kg 을 들고 멀리 던지기를 하고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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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체력시험 전 모래주머니 무게라도 알아보려고 접근했으나 구청 직원이 가까이 못 오게 했습니다. '연습용 좀 없나요'하고 물었더니 "평소 연습해야지 왜 여기서 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먼저 모래주머니 멀리 던지기를 하였습니다. 남자는 10kg의 모래주머니를 던지고 여자는 7kg의 모래주머니를 던지게 했습니다. 체력시험은 남녀가 같이 섞여서 보았습니다.

모두 용을 써가며 던졌지만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지 휴휴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멀리 던진 사람들 보면 와 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두 번 던지게 해서 가장 멀리 날아간 거리를 점수로 주었습니다. 저는 두 번 던졌는데 한 번은 6M 09 나오고 또 한 번은 6M 58 이 나와 그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돌덩이처럼 딱딱했습니다.
▲ 모래주머니 들고 뛰기에 사용된 모래주머니 돌덩이처럼 딱딱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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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했습니다. 저는 등록순서가 빨라 가장 먼저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이 시험엔 턱이 철봉에 닿아도 허용되었습니다. 저는 철봉에 매달려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팔에 힘이 빠져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 떨어졌습니다. 시간을 재던 구청 직원이 40초 43 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기록 후 옆에다 서명을 하라 했습니다. 턱걸이 시험 후 어떤 남자분은 "와, 먹고살기 힘들다"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번째로 20kg 짜리 모래주머니를 들고 50M 달리기를 했습니다. 모래주머니 멀리 던지기만 두 번 허용되었고 철봉 오래매달리기와 달리기는 한 번의 기회만 주어졌습니다. 모래주머니는 야무진 봉투에 넣어져 묶여 있었습니다. 공간없이 묶어 모래주머니는 돌처럼 딱딱했습니다.

연습은 할 수 없었고 부정행위 할 때는 1.5점 감점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저는 9.97초 나왔습니다. 모래주머니 메고 달리는데 의외로 넘어지는 응시생이 많았습니다. 넘어진 응시생은 재빨리 일어나 다시 달렸습니다. 어떤 분은 달리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기도 했습니다. 보건소에서 구급차 차량이 와 있었고 거기서 임시 치료를 받았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했습니다.
▲ 20kg 모래주머니 들고 뛰기 모두들 열심히 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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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체력시험이 모두 끝나고 잠시 후 합격자 발표를 했습니다. 대부분 이삼십대 젊은층이었습니다. 저는 체력시험과 합격유형을 보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무조건 빠르게 달리면 되고, 무조건 멀리 던지면 되고, 무조건 오래 버티면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 뽑는데 멀리 던지고, 빨리 달리고, 오래 매달리는 게 무슨 소용이지? 청소부는 그냥 청소만 성실하게 잘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체력시험으로 14명이 합격되었습니다. 나머진 허탈하게 집에 돌아갔습니다. 운동장을 나서며 나이든 사람들이나 여성 응시생이 가장 불만이 많았습니다. 제 이름도 합격자 명단에는 없었습니다.

"여자는 이번 체력시험에 들러리 세운 거지 뭐야. 여자는 하나도 안 됐잖아. 여자 중에도 엄청 잘 하는 사람 있었는데. 시험 방식이 이러면 안 되는거지. 시험 응시 기회만 있고 합격할 기회는 없는 이런 방식이 평등한 방식이랄 수 있나?"

시험에 응시한 남자와 여자는 대다수 저처럼 비정규직 인생이었습니다. 이번에 정규직 인생으로 한 번 전환해 보려고 안간힘 썼지만 가장 빠르게 달렸고, 가장 오래 버텼고, 가장 멀리 던진 14명만 합격되었고 열심히 했지만 14명보다 못 한 응시생은 모두 허탈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14명 체력시험 합격자도 3차 면접시험을 봅니다. 거기서 다시 7명이 불합격 처리되고 7명만 합격처리되어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야심을 품고 운동도 하고 나름 노력도 하며 오늘 체력시험을 보았지만 불합격했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 환경미화원 뽑는 응시체험 한 것으로 만족해야지요 뭐.


태그:#울산 동구, #청소부, #환경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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