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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붙이는 사족

착환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착환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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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냥 이기적인 존재일까?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이하, <착한 것>)의 저자 정태인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속성과 '이타적'인 속성이 함께 존재한다. 나는 이를 전제로 썰을 풀겠다.

팀플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팀플레이(약칭, 팀플)가 유행인 모양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각자 과제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4~6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이 하나의 과제물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낭만과 열정을 잃고 외로이 남은 학생들을 위한, 교수님의 묘책이다. (사실 개인별 과제보다는 팀플이 '점수 매기는 데에' 훨씬 적은 시간이 든다. 간혹 이 팀플로 시험을 대체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이는 귀차니즘으로 충만한 교수들의 '꼼수'라 여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불충한 상상이다. 교수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잡설이 길었다. 이제 팀플의 구체적인 양상을 지켜보자.

치킨게임

5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유의미한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총 10이라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공평하게 한 명의 팀원 당 2만큼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말라고 있는 법이다.

이 팀에 이기적인 구성원 'a'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좋은 점수를 얻고 싶지만, 그렇다고 팀을 위해 협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시간에 당구 한 게임을 더 치던가,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 이기적인 그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정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소리이다. a가 자신의 몫을 수행하지 않으면, 팀은 전체적으로 8의 성취 밖에 달성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의 목표는 성취되는 것일까?

이타적인, 혹은 학점에 대한 욕망이 대단히 강한 구성원 'b'의 존재로 간단히 설명된다. b는 다른 구성원을 위해서, 혹은 자신의 학점을 위해서 a의 몫으로 할당된 노동력까지 수행한다. 4에 해당하는 b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 팀은 높은 점수를 얻는다. 덩달아 a는 니나노~ 하다가 단물을 빨아먹는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뭔가 씁쓸해지는 이 상황(딜레마)을 '치킨 게임'이라 부른다. <착한 것>에 아주 쉽게 묘사되어 있다.

이기적인 a의 폭주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남은 구성원들이 피박에 광박을 쓰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똑같이 놀다간 모두의 학점이 개털 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한 a로서는 이 또한 본전이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는 '이기적인 놈'만 승리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신뢰와 협력' 대신 '이기적인 독주'를 선택하게 되고, 불신과 눈치게임이 싹트는 미친 대학은 요로코롬 완성된다.

대학교수

한국 대학에 뿌리내린 팀플 과제는 위에 묘사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건전한 도입 취지에도, 팀플에 대한 학생들의 원성이 대단히 높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착한 것>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를 제안한다.

우선, '신뢰에 기초한 협업'에 따른 '이익'이 분명해져야 한다. 수준 높은 과제 성취도를 보였지만, 공평한 협업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팀 A가 있다. 반면 성취도는 조금 미흡하지만, 각 구성원에 대한 역할 분배가 명확하며 공평하게 과제를 수행한 팀 B가 있다. B팀에게 더 높은 점수가 부여 되는 구조라면, 이기적 존재의 폭주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이기적 존재'를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예컨대 성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이타적 구성원'인 b, c, d, e가 '이기적 구성원' a를 공히 지목한다면, 그는 처절한 응징을 받아야 한다. 쉽게 말해 F 학점이다.

대학 교수님들께 간언한다. 위와 같은 장치들을 하루속히 도입하여 주시라. '불신대학'에 출몰하는 '이기적 존재'들을 용도폐기시키고, 그들 안에 잠자고 있던 '이타적 속성'을 깨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정과 신뢰, 그리고 사랑(응?)이 넘치는 대학을 복원하는 것이다.

전교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위에 묘사한 '대학 선진화 방안'은 대단히 허술한 미봉책이다. 몇 가지 장치로 인간의 이타적인 속성을 잠시나마 극대화 시킬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 상호협력과 신뢰의 가치를 교육받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이익'과 '응징'의 원리로 '이타심'을 강제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친구의 공책을 찢어서라도 경쟁에 승리하라는, 미친 교육의 문제이다. 동료를 찍어 밟고 올라서라는 오늘의 교육을, 소통하고 교감하여 함께 나아가라는 내일의 교육으로 만들 수 없다면, 불신천하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단히 어둡다.

뜬금 없지만, 옛날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실화인지는 모르겠다. 전설이나 민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화거나.

청교도들의 신대륙 이주 이후, 미국에서는 백인들과 인디언들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어느 잉여로운 오후, 선생님께서 "문제를 풀테니 준비하세요"라고 말한다. 백인 아이들은 시험대형으로 책상 간격을 넓힌 채 문제를 기다렸다. 그러나 인디언 아이들은 책상을 붙여 동그랗게 모여 앉는 것이 아니던가? 당황한 선생님께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디언 친구들의 대답이 가관이다.

"저희는 문제가 생기면 항상 협력해서 해결하라고 배웠어요."

아,
이거 참교육이다.
그리고, 참교육 하니까 느닷없이 떠오르는 세 글자. '전교조'

전교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안타깝다. 불과 몇 년 전에 중등교육을 마친 필자에게 전교조란, 그나마 나를 예뻐하던 선생님이 소속된 조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슬프게도 그렇다.

그럼에도. 전교조 선생님들께 다시 참교육을, 그러니까, 희망을 구한다. 가카께서 지배하는 현실을 절망하기엔, 아이들의 현실이 더욱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지치고 외로운 어깨 위에 시대정신이 빛나고 있다. 그 빛이 나아가는 길에 기꺼이 함께할 것을 사적으로 약속드린다. <착한 것>의 저자 또한 같은 생각일 것이다. 아님 말구.

참교육을 통해 상호협력과 신뢰의 가치를 배우며 성장한 아이들. 이들이 국가권력과 세계질서의 주인공이 되는 그 날. -미스코리아들이 그토록 염원하였으나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성취된 적 없던 '세계평화'가 올 것이다.

잉여

마지막으로, 나는 <착한 것>을 만국의 잉여들에게 권한다. 흔히들 추리닝 차림으로 컵라면 끼니를 때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잉여를 연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잉여는 보다 넓은 의미이다.

교육이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정의롭지 못한 이 땅의 현실에 불편함을 느끼고, 언젠가 떨거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당신, -대한민국 99%에게 이 책을 권한다. 왜냐하면,

희망의 근거

인류는 인간에게 절망한다. 핵과 전쟁, 폭력과 탐욕, 기근과 학살… 인류는 인간에게 말한다. 보라, 당신들이 뿌려놓은 절망의 근거들을, 나약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의 결과들을….

그런데, 이 와중에, 어처구니 없게도, <착한 것>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낙관한다. 희망의 근거는, 인간이다."

이기적인 인간, 즉 나쁜 것들이 절망으로 밀어 넣은 세상에서, 그는 끝끝내 희망을 발견한다. 그 희망의 근거는 이타적인 인간, 즉 착한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낙관을 낙관한다. 나쁜 것들과 착한 것들은 동일인물, 즉 '인간'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뒤틀린 절망과 희망의 간극에서, 나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만국의 잉여들이여, <착한 것>을 읽고 착한 것이 되자.
잉여가 착한 것이 되어 잃을 것은 잉여력 뿐이요, 얻을 것은 인류의 미래이다.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정태인 지음, 상상너머(2011)


태그:#정태인, #새사연, #청년유니온,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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