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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길에서 발견한, 산에 버려진 자동차
 짧은 여행길에서 발견한, 산에 버려진 자동차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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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600여 미터의 산 중턱에 자동차 한 대가 버려져 있었다. 작은 차가 아니었다. 한때 거리를 주름잡고 다녔음직한 대형 세단이었다. 한눈에 척 봐도 꽤나 오랜 세월을 꽤나 견뎌온 것 같았다. 창문 유리는 거칠게 깨져 있었고, 드라이버 정도로 간단하게 뜯어낼 수 있는 부품들은 대부분 거칠게 뜯겨져 나가고 없었다.

돌무더기들 속에 묻힌 듯이 버려진 그 자동차를 처음 보았을 때 우리는 너무 황당해서 한참을 어어, 소리만 내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로 서둘러 도망가서 숨어 있던 시체라도 발견될 것 같은 분위기의 깊은 산 속이었다. 도대체 자동차가 이런 깊은 산에 처박힌 채로 썩어가는 이유가 무엇이냐, 응?

산꼭대기에서 죽은 채 발견된 표범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을 쓴 헤밍웨이 같으면 무엇인가 사뭇 장엄한 종교적인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헤밍웨이가 아니었다기보다는 뭐랄까, 장엄이라든가 믿음 같은 단어들을 살짝 불신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불신이란 이유야 어쨌든 믿음에 비해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었다. 구멍이 뻥 뚫린 것도 같고, 숨을 내쉬기조차 어려우리만치 무엇인가 밀도가 아주 높은 것들 속으로 내가 굴러 떨어진 것도 같은, 그 쓸쓸한, 그 황량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고자 나선 길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글쎄, 그것을 여행이라고 말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나이도 어지간히 들었고, 세상의 숱한 음모와 배신을 그런대로 제법 거쳐 온 내가 보기에 후배 녀석은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 어느 하루 문득 자살에의 유혹을 강력하게 받을 것만 같았다. 자살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은 실행이 어렵지만, 하늘의 무슨 계시처럼 갑자기 유혹을 받게 되면 금방 실행하게 된다는 것을 내가 이미 여러 사람들의 경우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툭하면 어디 가자는 등의 쓸데없는 소리로 녀석을 유인해서 함께 가거나 녀석이 가는 곳을 따라가 보거나 하던 참이었다.

'북 카페' 꿈꾸던 후배는 왜 대형마트로 갔을까

산에 버려진 자동차
 산에 버려진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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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 시절부터 북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던 후배 녀석은 그 즈음 십오 년 넘게 끌어온 꿈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포기라기보다 빼앗겨 버렸다는 말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북 카페 운영에 관한 꿈이 어찌나 크고 깊었던지 녀석은 담배, 술, 오락 등등 삶과 직결되지 않는 모든 행위를 별나라의 일로 돌린 채 눈을 꾹 감고 돈을 모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마친 이후부터 모아온 돈이 이십 대 중반에 벌써 시골에 논을 사도 열 마지기는 삼직한 액수가 되었다. 이것이면 그런대로 시작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물색할 즈음 외사촌 형님이 돈 냄새를 맡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급하게 석 달간만 높은 이자를 쳐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했다.

광주에서 유통업 경험을 쌓은 외사촌 형님은 그 무렵만 해도 군소도시에서는 유일한 대형 마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까지 해서 종업원만도 이십여 명을 넘나드는 그 무렵의 마트는 영업이익이 제법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해의 그 달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서 급전이 필요하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후배 녀석은 외사촌 형님의 그 말씀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돈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시침 뚝 떼고 눈이나 깜빡거리고 있어야 할 이유 또한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재주도 없었다.

그렇게 돈을 빌려간 외사촌 형님께서는 약속한 석 달이 지나고 육 개월이 지나도 돌려줄 줄을 몰랐다. 기다리다 못한 후배가 결국 찾아갔을 때 외사촌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돈은 빌린 게 아니라 투자를 받은 것이라는, 그러므로 외사촌 형제가 이제부터 힘을 합해 열심히 사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돈을 빌려주며 누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자랑을 하면서 빌려준 것은 아니었다. 외사촌일망정 형제간에 돈을 주고받으면서 무슨 각서나 차용증서 같은 것을 쓰는 것 또한 면구스러워서 얘기도 꺼내보지 않았다. 외사촌 형님이 그 돈은 빌려간 것이 아니라 투자를 받은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돈의 성격은 그대로 투자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후배 녀석은 하루아침에 마트의 주주가 되었고, 몇 달 뒤에는 아예 정식으로 동업자 등록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마트 부사장에서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

대외적으로는 총무 과장이었다. 과장님, 과장님, 소리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었다. 내부적으로는 부사장이었다. 부사장님, 부사장님, 하는 소리를 금융권 인사들로부터 한 달에 몇 번씩 들었다. 거의 모든 물류관련 서류에 총무과장의 서명이 들어갔고, 운영자금이나 사업 확장 자금을 신규로 대출받을 때마다 부사장의 서명이 들어갔다.

밖에서는 과장이요, 안에서는 부사장 역할을 해야 하는 생활이란 당연하게도 눈코뜰새 없음의 연속이었다. 시간은 일 년이 하루처럼 흘러갔다. 이십대를 훌쩍 넘어 삼십대도 끝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그 연령대에 흔하디흔한 연애 한 번 해볼 틈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돈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동업자 생활 십 년이 넘도록 애초의 '투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임대아파트 보증금이나 간신히 납부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마트의 재정상황은 계속 내리막을 달렸다. 손님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부채는 계속 늘어났고 수익은 모두 이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하루 사장인 외사촌 형님은 사업포기 선언과 함께 종적을 감춰 버렸다. 사업체는 즉각 채권자들 손으로 넘어갔다. 그토록 허무하게, 그토록 속절없이, 그토록 어처구니없이 끝나는 것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끝난 게 아니었다. 후배 녀석은 자신의 이름으로는 핸드폰 한 개 가질 수 없는 신분이 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통장의 예금인출이 정지되었다. 그 다음은 임대아파트 보증금이 압류되었다. 그 다음은 자동차가 압류딱지와 함께 끌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신용불량자로 공식 데뷔했다.

아직은 삼십대 후반이었다. 젊음이라는 무기가 아직은 있었다. 결혼을 한 적이 없으니 가족도 없었다.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달린 상황이었다. 친구들 집을 떠돌며 두 달 정도 신음하던 후배 녀석은 이를 악물고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두 달 뒤에는 제과점 빵배달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 수입으로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 년 남짓 밤잠 안 자고 눈을 크게 뜬 결과로 한, 중, 일 세 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제 됐다. 다시 할 수 있다. 사람이란 역시 대단한 존재로구나.

이중 삼중의 빚쟁이가 되고만, 후배녀석

산에 버려진 자동차
 산에 버려진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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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그는 신용불량자였고,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사업체도 운영할 수 없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신용지수가 제법 높았다. 그를 십 년 남짓 지켜봐 온 선배 하나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선배가 뒤늦게 공부 바람이 불어서 유학을 가고자 하는데 레스토랑을 고스란히 물려주겠다는 너무도 뜻밖의 제안을 해 왔다. 물론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라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했다.

레스토랑은 손님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손님이 제법 있는 그 레스토랑을 후배 녀석이 외상으로 인수해서 운영하던 그해의 어느 날 서울에서 사건이 터졌다. 지하 노래방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출입구가 하나뿐인 까닭에 인명피해가 많았다. 그것을 계기로 소방법이 개정되고, 출입구가 하나뿐인 지하 공간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영업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후배의 레스토랑은 지하에 있었고, 건물이 밀집해 있는 까닭에 새로운 통로를 만들 수가 없는 구조였다.

이건 뭐냐? 나비효과인 것이냐? 나비나마나 결론은 너무도 명확했다. 소방당국은 경고장을 보내기 시작했고, 레스토랑은 인테리어 비용도 아직 다 갚지 못한 채 문을 닫아야 했다. 후배 녀석은 결국 이중 삼중의 빚쟁이가 되고 말았다. 죽으라는 건가? 그래서 이제 그만 죽어야 하는 건가?

"형님, 담배 한 가치만 주세요."

그 즈음의 그는 나를 만나면 습관적으로 그런 말부터 했다. 담배에 아주 걸신이 들려 버린 것 같았다. 다른 말은 거의 없었다.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은, 웃음이 울음으로 비쳐지는 기이한 웃음이나 가끔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자신을 절망하게 만든 사람을 원망하거나 원인을 찾아서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뭐 이렇게 되었어요, 하는 투로 쓴웃음이나 실실 웃고 있을 때, 그런 상황에서 유용한 말은 글쎄, 뭐가 있을까.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야, 놀러나 가자"하는 정도밖에는 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야, 어디 그냥 놀러나 가자."

그렇게 나선 길이었다. 고창에서 솔재를 넘어 장성으로 가다가 방향을 돌려 정읍 쪽으로 가다가 다시 방향을 틀었다. 일제 말기에 짓다가 중단한 채로 방치된 기차 터널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던가, 어쨌던가,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수 있는 지리적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그 뒤로는 어디를 어떻게 돌아 다녔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 싫어졌다고나 할까, 무서웠다고나 할까, 가능한 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만 그렇게 돌고, 또 돌고 다니다가 버려진 자동차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냐?"

우리는 사냥꾼처럼, 외과의사처럼, 혹은 수사관처럼 버려진 자동차를 만져보고 두들겨보고 심지어는 발로 걷어차보기도 하면서 주변을 돌고, 돌고, 또 돌고, 또 돌았다. 자동차가 무슨 죽을 때를 알고 제 무덤을 찾아간다는 코끼리도 아닌데 저 혼자 산에까지 와서 쓰러진 것은 아닐 터이었다. 누군가 사람이 운전을 해서 끌고 왔을 터이었다. 그러면 누가, 왜, 응?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로 우리는 버려진 자동차 주변을 한 시간도 넘게 서성거렸다.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처음에 했던 한 마디 "이게 도대체 뭐라냐?" 정도가 아마 그때 우리가 했던 유일한 말이었을 것이다. 글쎄, 도대체 그것을 무슨 감정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자다가 느닷없이 눈을 뜬 것도 같고, 무엇인가에 작신 얻어맞은 것도 같은, 꿈 속에서의 충격적인 장면이 현실에서 재현된 것도 같은 그런 어리둥절한 심사인 채로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형님, 저 칼국숫집 사장 하게 생겼어요"

바지락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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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나는 중증치매 선고를 받은 어머니와 지지고 볶는 아주 바쁜 생활에 들어갔고, 후배 녀석은 어찌어찌 신기하게도 먼저 다가온 어떤 처자와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해서 칼국수 전문 체인점에 조리부문 매니저로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공사판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역시 아주 바쁜 생활인이 되어 갔다. 그런데 녀석이 매니저라는 직위를 그만둔 이유가 창조적이라고나 할까, 재미있었다.

녀석을 매니저로 '초빙'한 칼국수 전문 체인이 신생 업체인데 사장이 돈을 좀 벌면서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나 어쨌다나. 집에 아내가 있고 아이들도 있는데 무슨 욕망이 그리도 찬란하게 샘솟는 것인지 또 다른 여자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홀랑 빠져 버렸다는 거였다. 그런 정신없는 사장 밑에서 있다 보니 자신도 곧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고, 그래서 그만두고 공사장 막노동을 택했다는 거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를 공사장 막노동자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형님, 저 칼국수 집 사장 하게 생겼어요."

공교롭다고나 할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정신없이 휘청거리고 있던 내게 후배 녀석이 전화를 해 왔다. 그리고 그런 뜻밖의 소리를 했다. 어떤 사람이 가게 임대료와 시설 일체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동업을 제안해 왔다고. 요컨대 후배는 기술과 신용만 갖고 들어오면 사장 대우를 해준다는 자본가가 나타났다는 거였다.

그 뒤로 한 달이 지났는데도 개업에 관한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해 보았다. 아직 준비 중이란다. 다시 한 달여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서 또 전화를 해 보았다. 아직도 준비 중이란다. 집 한 채를 짓는데도 두세 달이면 뚝딱인 세상에서 이게 대체 뭔 퇴행인가 싶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가서 보니 가게가 아주 근사했다. 이른바 인테리어 공사도 진즉에 다 끝났고, 간판도 이미 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남녀 출입구가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고, 내부는 거울 앞에서 탱고라도 출 만큼 시원하게 널찍했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음식점에 들어가면 화장실 갈 일이 항상 걱정이던 나로서는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준비가 이렇게 다 됐는데 왜 개업을 안 하는 거야?"
"개업식은 없이 그냥 장사 시작할 거예요. 그런데 아직 맛이 안 나와서요."

개업식 행사로 지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장사 바로 시작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맛이 안 나와서 손님을 안 받고 있다는 얘기는 고도의 철학적인 분석이 필요했다. 조리사 자격증을 세 개나 가지고 있고, 칼국수 전문 체인에서 조리부문 매니저까지 했던 녀석이 자기만의 새로운 맛을 찾고 있다는, 맛이 안 나와서 영업을 두 달, 석 달씩이나 미루고 있다는 녀석의 깊은 심성이 내 가슴에 어떤 샘 하나를 만들어 주었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 홍시 세 개를 씻어 올려놓고, 향을 피워놓고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누웠는데 그 밤의 꿈에 느닷없이 버려진 자동차가 보였다. 산속에 버려진 채로 썩어가던 그 자동차, 눈을 뜨고 일어나서 앉았는데도 버려진 자동차는 사라지지 않고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오브제'인가 의아해서 그때 현장에서 몇 장 찍어놓은 사진을 어렵게 찾아내 놓고 들여다보았다.

뭐냐, 너? 응? 뭐냐고.  
첫째, 사람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
둘째, 치정과 관련이 있다.
셋째, 우정과 관련이 있다.
넷째, 정신 병력과 관련이 있다.
다섯째, 폭력조직과 관련이 있다.
여섯째, 앞서 열거한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런 하나마나한 가설들을 늘어놓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만 발랑 드러눕고 말았다. 그러자 새로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의문은, 산속이라 해도 지나가는 차량이 최소한 이십분에 한 대씩은 있는데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신고를 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자신도 그날은 신고할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얻어맞은 기분으로 자동차 주변을 빙빙 돌다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어대며 그 자리를 떠났고, 떠난 뒤에 잊어버렸을 뿐이었다.

후배와 함께 산 속 그 자동차를 찾아 나서다

이른 아침의 가을하늘, 이런 하늘을 보고 난 뒤에는 하늘 보았다는 말이 안 나온다
 이른 아침의 가을하늘, 이런 하늘을 보고 난 뒤에는 하늘 보았다는 말이 안 나온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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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이상하고 기이하다. 참다 못해 후배 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4년여 전에 봤던 그곳을 가보고 싶은데 찾아갈 수가 없다고, 도무지 어디가 어디였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없다고, 그러자 칼국수 맛 내기 연습에 한참 바쁜 녀석이 대뜸 "저랑 같이 한 번 가볼까요?"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지금 생각하면 아주 희한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무슨 보물 같은 명소를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산속에 버려진 자동차를, 쓰레기가 되어버린 그 자동차를 찾아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다만 그것을 보고 싶다는, 그것을 한 번 더 보고 나면 뭔가 세계사적인 문제 하나가 해결될 것 같다는 그런 막연하고도 황당한 갈망을 안고 길을 나섰지만, 산속에 버려진 그 자동차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산 속을 돌고 또 돌고, 목을 길게 빼고 좌우사방을 정신없이 둘러보기도 하고, 괜히 소리쳐 불러보기도 하고,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다가 내려오고 말았다.

그런데 가슴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산을 내려와서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 뭔가 중대한 문제를 이미 해결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였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내려왔을 뿐인데도, 버려진 자동차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는 자체가 하나의 숨은 해답이었던 것 같은, 내 안에 있었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다가 짧은 여행을 계기로 불현듯이 알게 되었다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 고대의 수많은 현자들이 그토록 여행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던가, 모르겠다.


태그:#절망, #희망, #여행, #버려진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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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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