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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의 땅, 샌프란시스코  

대서부에 사람이 닿기 시작한 것은 신대륙이라는 이름으로 동부에 사람들이 몰려든 한참 이후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조금씩 땅을 일구기 시작한 이후에도 그곳은 선교사와 사냥꾼이 중심이었던 낙후된 땅이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서부로 가던 길의 거대한 난관이었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1848년에 금이 발견되면서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처음에는 금을 찾아 사람들이 산으로 파고들면서, 1848년 6월에 이르러 샌프란시스코의 가옥 절반이 텅 빈 채로 방치됐다고 한다. 신문사도 폐간되고, 인구도 몇 주 만에 수십 명으로 줄어들었다.

작은 도시가 순식간에 비워져 버렸다. 그러나 비워진 도시에 희망이 있는 한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골드러시의 마력은 텅 빈 샌프란시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확대된 도시로 만들었다. 1848년 3월 인구 840명에서 1849년 초에 5000명, 1850년에는 2만 5000명까지 늘어났다.

마치 포식자와 같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끌어당겨 삼키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와 인접한 오리건(Oregon) 주의 경우 1848년 여름, 당시 성인 남자 인구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3000여 명이 농작물을 내버려둔 채 캘리포니아로 향했다고 한다.

그때의 광기와 열정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은 미친 듯이 산을 파헤쳤고, 1849~1857년까지 10만 명의 채굴자는 10억 달러 이상의 황금을 채굴했다. 그리고 그중 절반의 재화가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흘러들어 갔다. 덕분에 샌프란시스코는 당시 런던에 이어 세계 제2의 번화한 도시로 발돋움했으니, 진정한 골드러시는 산맥이 아니라 평화로웠던 이 항구도시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지만 농장과 직업, 집과 가족을 버려둔 채 우르르 배로 육로로 이 땅에 발을 디딘 '49년에 온 사람들(forty-niners)'은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그곳은 더 이상 그들에게 희망의 땅도 아니었다.

풍부한 금맥은 재빨리 캘리포니아의 농장주들이 차지해 버렸으며, 대다수의 사람은 모처럼 금광을 발견하더라도 감쪽같이 사기당해 버리거나,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사방이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곳에 높은 빌딩이 없어 풍경이 무척 좋다. 멀리 러시안 힐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골든게이트브릿지도 보인다.
▲ 코이트타워의 언덕에서 바라본 언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 시내. 샌프란시스코는 사방이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곳에 높은 빌딩이 없어 풍경이 무척 좋다. 멀리 러시안 힐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골든게이트브릿지도 보인다.
ⓒ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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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정돈과 질서가 필요했다. 하다못해 전학만 가더라도 텃세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힘들 게 이 땅을 개척하던 사람들에게 이주민들은 도둑이나 강도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텃세에 이주민들은 자신을 보호할 울타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료한 모습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도심은 자신의 경계와 질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도심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창건자이자 도시의 '상류계급'을 이주민과 서민층과 구분하기 위해 비바람에 버려진 아홉 개의 언덕 위에 만든 마을이 노브 힐(Nob Hill,상류계급의 언덕)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노브 힐과 해안가 사이에는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그 일을 대신했던 거대한 이민자 그룹이 만든 차이나타운(ChinaTown)이 자리 잡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도로를 경계로 전통적인 건물과 한가로운 카페가 즐비한 이탈리아인들의 노스 비치가 조성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구불거리는 길롬바드 스트리트이 있는 러시안 힐(Russian Hill)이 이어진다.

샌프란시스코는 현대적인 도시라고 하기에는 전통의 흔적이 너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게 매력이기에 창고에 물러날 옛 전차마저도 다시 도로로 나오고 있다.
▲ 피어39와 피셔맨즈워프를 지나는 오래된 케이블카. 샌프란시스코는 현대적인 도시라고 하기에는 전통의 흔적이 너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게 매력이기에 창고에 물러날 옛 전차마저도 다시 도로로 나오고 있다.
ⓒ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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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은 해안가에 피션맨즈 워프와 피어 39라는 쇼핑단지와 레스토랑 천국을 만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종과 계급, 계층이 빠른 시간에 같은 공간에 섞여들었기에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갈등의 해결책이 되기도 하고, 문화는 상처를 드러내고 봉합하는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경계를 세운, 그렇게 조절을 배워나간 도시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신중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그 지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간에 또 다른 이질적인 문화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급격한 사회의 발전과 그로 인한 소외에 대한 저항은 비트 문학과 운동을 발생시켰고, 그 시발점이었던 진보적인 서점과 문화공간은 층을 지은 다채로운 거리의 모퉁이에 아직도 온전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성적 자유와 관용을 위한 운동은 세계 최대의 게이 축제와 함께 카스트로 거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는 어떤 공간이나 어떤 기념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조화시키고, 융화시켜낸 도시와 거리 그 자체가 놀라움이고, 명소인 셈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간이 남긴 지혜와 지혜가 새겨낸 거리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은 크지 않다. 가장 높게 트랜스피라미드 빌딩이 솟아 있고, 그 옆으로 코이트타워가 있다. 몇몇 빌딩을 제외하고는 낮고 정연한 주택과 언덕들이 도심을 채우고 있다. 바다 너머에는 알카트라즈가 있다.
▲ 바다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은 크지 않다. 가장 높게 트랜스피라미드 빌딩이 솟아 있고, 그 옆으로 코이트타워가 있다. 몇몇 빌딩을 제외하고는 낮고 정연한 주택과 언덕들이 도심을 채우고 있다. 바다 너머에는 알카트라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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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용 뮤지엄, 사랑방같네

금요일 저녁, 드용(De Young)뮤지엄을 찾았다.

사실 박물관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저 보기만 해야 하는 박물관의 돌조각과 그림들은 역사적 지식과 그에 따른 호기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의무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드용 뮤지엄을 찾은 것도, 파티가 열리는데 즐길 만하다는 지인의 말과 지난 며칠간의 피로감 때문에 멀리 나가는 게 귀찮았다는 게 솔직한 이유였다.

금요일 밤이면 한국에서는 술집만이 가장 흥청거릴 시간이고, 공공기관이나 박물관 주변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로 유령도시가 되어 있을 때인데, 짙은 어둠 사이에서 나타난 드용 뮤지엄은 환한 조명과 함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골든게이트공원의 중심에 드용 뮤지엄과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가 자리잡고 있다. 뮤지엄 내부도 좋지만, 밖의 공원도 아이들과 어울리기에는 그만이다.
▲ 독특한 드용 뮤지엄의 외관. 골든게이트공원의 중심에 드용 뮤지엄과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가 자리잡고 있다. 뮤지엄 내부도 좋지만, 밖의 공원도 아이들과 어울리기에는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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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자랑할 만한 미술품과 그에 어울리는 특색 있는 건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이 품고 있는 문화는 그 외관보다 화려하고, 안의 전시물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꽉 찬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단정한 전시실 앞 공간에 화려한 조명과 함께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음료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의자에 앉아 공연을 보는 사람들, 이곳저곳의 전시실을 드나드는 사람들 그리고 공연 무대 앞에서 제멋대로 춤을 열심히 추고 있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이곳은 뮤지엄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조금 큰 동네 사랑방이나 마을회관 같았다. 주변을 스쳐 가는 사람들도 이웃사촌이나 친구의 친구처럼 느껴져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박물관이라는 공적인 공간이 미묘하게 사적인 관계의 장으로 변해있었다.

잔잔한 문화적 충격이랄까. 이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럽지만, 나에게는 아마 조금 긴 감동으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옆 전시실로 들어가 본다. 그곳에서는 한 흑인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와 그리고 그의 그림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뮤지엄에서는 파티가 펼쳐진다. 마침 흥겨운 공연이 한창이라, 아이들이 앞에서 춤추기에 여념이 없다.
▲ 드용 뮤지엄의 금요일 파티. 매주 금요일마다 뮤지엄에서는 파티가 펼쳐진다. 마침 흥겨운 공연이 한창이라, 아이들이 앞에서 춤추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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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끊임없이 자기와 자기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붓은 쉬지 않았으며, 아이와 어른은 진지하게 그의 모습과 이야기와 그림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아이 중 몇 명은 내일부터 미래의 꿈이 화가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뮤지엄은 시간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그 보존된 시간은 예전에는 개인의 시간이었다가 우리의 기억에서 벗어난 순간 공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이 된 것들이다. 그 시간이 모여 있는 공간이 마치 이웃 친구 집처럼 가깝고 편하다면 개인적인 시간과 공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의 경계는 모호해질 것이다.

지금은 바로 과거이고 미래인 셈이니,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소중함을 갈고 닦으면 그 자체로도 예술품과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는 법이다.

계속 대화를 하면서 그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가 그린 게 확실해 보이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진지하고, 또 재미있는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 드용뮤지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계속 대화를 하면서 그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가 그린 게 확실해 보이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진지하고, 또 재미있는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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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용 뮤지엄의 건너편에 있는 캘리포니아 사이언스 오브 아카데미(California Science of Academy)역시 바로 그런 곳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박물관이라는 소개 문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는 곳이다. 아니 꾸며져 있다는 말 자체도 어색하다.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거대한 구와 같은 건축물이 있다. 그중 하나는 식물원이자 동물원인 셈인데,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그 높이와 기후에 맞는 식물, 동물 그리고 새와 물고기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커다란 원과 그 지하는 바다부터 숲과 하늘까지, 가로와 세로로 세분되어서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하늘에는 동그란 원을 통해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고, 적절한 습도를 위해 가끔 물안개를 내뿜는다. 이곳은 너무나 잘 꾸며진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곳이고, 그들의 시간과 공간으로 끌어들인 자연인 셈이다. 그게 너무 잘 꾸며져 자연을 만났을 때의 순수한 감동이 잘 포장되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바로 도달하는 듯한 곳이다.

드용 뮤지엄의 가장 높은 층에는 서점과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골든게이트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건너편의 과학아카데미의 자연 채광을 활용한 특색있는 지붕도 잘 보인다.
▲ 드용 뮤지엄에서 바라본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드용 뮤지엄의 가장 높은 층에는 서점과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골든게이트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건너편의 과학아카데미의 자연 채광을 활용한 특색있는 지붕도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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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박물관은 그저 스쳐가는 곳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박물관은 전시된 것 이상이 시간과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도시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은 2010년 2월부터 3월까지 아내와 함께 미국 서부로 스케치 여행을 하면서 촬영, 취재한 글과 사진입니다. 이 기사는 <시간풍경 도시여행>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행, #샌프란시스코, #시간풍경,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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