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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도심에 자리한 사찰 조계사는 최근 '가을 국화 축제'를 벌였다. 지난 10월 2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열린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는 제목의 국화향기 나눔전이다. 지잔 8일, 경내에 들어서니 국화 향기뿐 아니라 다채로운 국화의 색채만으로도 눈과 코가 동시에 핑핑 돌아가며 아찔해 꽃에 취할 것 같았다.

 

조계사 국화 향기 나눔전에 선보인 국화는 전남 함평에서 가지고 온 토종이라 했다. 경내에선 함평 지역 토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가 열리고, 국화꽃 축제와 함께 분재 전시와 음악회, 범종을 울려라 교리경진대회와 실버 예술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금으로 쓰기 위한 국화빵 판매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나눔 행사 등도 함께 펼쳐졌다.

 

점심시간에 조계사를 찾으면 신도는 물론이고 인근의 직장인이나 여행객들이 찾아와 경내를 산책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요즘 인기와 관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웅전 앞의 국화꽃 코끼리다. 그 이름 하여 '꽃끼리'. 실제 코끼리 크기 만한 거대한 몸집이다.

 

 
곁에 있던 후배는 "코끼리 눈이 너무 리얼해서 무서워요"라면서도, 금세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인증샷을 찍어 남자친구에게 보낸다. 그런데 왜 코끼리일까. 그건 코끼리가 불교에서 진리의 동물이며, 신성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사찰에서도 흰 코끼리가 서로 마주보는 상이 새겨진 비석이라든가 조형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흰 코끼리가 국가의 수호신으로 대접받고 일반코끼리도 신성시된다. 
 
흰 코끼리가 불교의 상징 또는 대단히 귀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 데는, 붓다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여섯 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조계사를 거닐면서도 자꾸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 힌두교의 신 '가네쉬'(머리는 코끼리인데 몸은 인간인 신)였다.
 
힌두교든 불교든 코끼리에 종교적 마음을 투영해 각별히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종교적으로는 불교사원 내에서 그토록 코끼리 형상도 많이 있고 숭배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코끼리 타기 관광 등 '상품'으로 코끼리를 학대하는 현장도 있으니 씁쓸하다. 하긴, 요즘 종로에는 말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관광객이나 가족 나들이객을 상대로 마차를 타는 체험을 상업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원을 달려야 할 말이 아스팔트에서 고생하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 축제가 시작될 무렵 인근 길목을 지나다 몇 차례 눈에 띄어 손에 쥐게 된 조계사 국화향기 나눔전 팸플릿에서 제목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시월 국화가 시월에 피지, 그럼 언제 피나? 뭔 당연한 소리를?'이라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신문을 통해 주지인 토진스님의 인터뷰 글을 읽어보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던 성철스님의 말에서 빌려온 아이디어인데, "시월에 피는 국화는 구월에는 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단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자연의 순리가 있는데 인간은 그렇게 살지를 못한다. 시월 국화는 시월에만 피니, 시월에 그 국화를 바라보고 함께 하는 벗과 그 향기를 나눔이 더욱 귀하게 느껴지리라.

 

조계사에서 국화꽃 축제를 시민과 신도들에게 나누고 있을 때, 가을 들녘에서는 수확이 이루어졌다. 조계사에서도 10월 31일 '시월 상달맞이 국화 영산재'를 올렸다. 대웅전 앞에는 상달맞이 영산재가 끝난 며칠 뒤에도 계속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며칠 전 찾아가 봤더니 상점가에서 '빼빼로'를 열심히 팔아대던 11일, 조계사에서는 전통 가래떡을 권하는 펼침막으로 바꿔 달아놨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민간에서도 새로 난 곡식을 거두어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 해서, 음력 10월을 1년 중에서 가장 신성한 달로 여겨 '시월 상달'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계사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날 상달맞이 축제를 한 셈이다. 이젠 상달이라는 시월도 가고 11월도 벌써 절반이 다 지나갔다. 농촌에서도 추수가 끝났다. 

 

요즘 회원들과 봄가을 농사를 짓고 있는 시민단체 '나눔문화'에서도 지난 주말엔 3개월 동안 열심히 가꾼 배추와 무, 알타리무, 돌산갓, 시금치, 쪽파를 수확하고 수확감사제를 올렸다고 한다. 농부식 상달 제사인 셈이다. 회원과 손발 부지런한 단체 활동가들로 꾸려진 이 '나눔농부'들은 '햇님, 바람님, 물님, 흙님의 도움과 농부님들 손길 덕분'에 풍성하게 거두었다며 자연에 '축문'을 바쳤다.

 

"호미질도, 삽질도 서툰 초보 농사꾼들이지만 서로 마음 모아 함께 일했습니다. 씨앗을 심을 때는 하늘의 새, 땅의 벌레, 농부들이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세 알씩 심었습니다. 바라옵건데 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우리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게 해주십시오. 바라옵건데 언제나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 마음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의 평화가 지구마을 곳곳에 퍼져 좋은 농부들이 더 많아지게 해 주십시오." 

 

이젠 시월에 핀다는 시월 국화도 가고, 단풍도 은행도 떨어져 붉은 가을 정취도 자취를 슬슬 감출 것이다. 김장을 담그고 월동 준비를 해야 할 계절이다. 올 가을에는 국화도 단풍도 은행도 실컷 보고 가을을 만끽했다. 가을 야채도 마구 마구 먹어댔다. 올 겨울에는 또 어떤 풍경이 찾아들까. 매년 오는 겨울이고, 매번 바뀌는 계절이지만, 오는 계절을 또 조심스레 반겨 맞이한다.


태그:#조계사 국화축제, #꽃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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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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