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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용 자동차를 타고 서킷을 달리고 있는 이철우씨. 199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대회를 누빈 국내 카레이서 1세대에 속한다.
 경주용 자동차를 타고 서킷을 달리고 있는 이철우씨. 199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대회를 누빈 국내 카레이서 1세대에 속한다.
ⓒ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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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51)씨. 그는 자동차 경주 선수였다. 1990년대 선수로 활동하면서 크고 작은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국내 1세대 카레이서인 그가 전남 영광에서 경주용 자동차 대신 용달차 운전대를 잡았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 위해서다.

"경주용 자동차도 좋았죠. 박진감 있고 멋도 멋고요. 지금은 용달차 운전대가 더 좋아요. 여유도 있고요. 앞으로 보람있게 살고 싶습니다. 어릴적 뛰놀던 고향 들녘에서. 깨복쟁이(벌거숭이, 옷을 다 벗은 사람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친구들과 함께."

카레이서 생활을 접고 귀농한 이철우씨. 새로 둥지를 튼 전남 영광에 있는 자신의 축사에서 얘기를 나누다 환하게 웃고 있다.
 카레이서 생활을 접고 귀농한 이철우씨. 새로 둥지를 튼 전남 영광에 있는 자신의 축사에서 얘기를 나누다 환하게 웃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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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씨가 자신의 축사에서 한우에 이탈리안라이글라스 말린 것을 사료 대신 주고 있다.
 이철우씨가 자신의 축사에서 한우에 이탈리안라이글라스 말린 것을 사료 대신 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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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대처에서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귀농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지 31년 만이다. 그의 서울생활은 아버지에 의해 시작됐다. 사업에 실패한 부모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면서다. 타향 서울은 막막했다. 뭘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운전을 배운 이유다. 운전을 할 줄 알면 직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막상 운전면허를 따자 운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자동차 운전은 어렸을 때 가까이서 봤던 일이었다. 그가 어렸을 적 아버지가 택시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자동차 정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운전을 제대로 하려면 차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외삼촌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공장에 들어가 일을 했다. 군대에 다녀 온 기간을 빼고는 자동차 정비 일을 계속했다.

그의 자동차 정비 실력은 빼어났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재미도 있었다. 고급 자동차 정비 일이 맡겨졌다. 시나브로 자동차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자동차의 성능을 높이는 튜닝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됐다.

이씨는 1990년 1월 정비공장에서 나와 별도의 자동차 정비센터 문을 열었다. 독립인 셈이었다. 여유가 생기면서 자동차 경주에 관심도 갖기 시작했다. 포니, 맵시나, 스텔라 등을 타고 동호회 활동에 나섰다. 당시 자동차 동호회원들의 연습 공간은 영종도, 몽산포, 만리포, 안산 등지였다.

구형 스쿠프로 거머쥔 첫 대회 우승... "언제부턴가 양보를 하더라고요"

1992년 발보린컵 대회에서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이철우씨(맨 앞). 그는 구형 스쿠프로 우승을 차지, 기염을 토했다.
 1992년 발보린컵 대회에서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이철우씨(맨 앞). 그는 구형 스쿠프로 우승을 차지, 기염을 토했다.
ⓒ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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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코리아 모터스포츠 챔피언십에 참가한 이철우씨(왼쪽), 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손을 들어 기쁨을 표시하고 있는 이씨의 모습(오른쪽).
 1992년 코리아 모터스포츠 챔피언십에 참가한 이철우씨(왼쪽), 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손을 들어 기쁨을 표시하고 있는 이씨의 모습(오른쪽).
ⓒ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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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경주는 매력적이었다. 짜릿한 속도의 쾌감과 함께 귀를 찢을 듯한 굉음에다 온 몸에 흐르는 전율까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동차 경주대회에도 참가했다. 1992년 처음 참가한 발보린컵대회에서 출력이 낮은 구형 스쿠프를 갖고 우승을 차지했다. 오프로드(비포장도로) 경주는 물론 전용트랙(서킷) 경주까지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일본 등 외국에서 열린 대회에도 참가했다.

이씨는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동차 경주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1998년 대회를 끝으로 자동차 경주대회 참가를 접었다.

"나이가 들면서 승부욕이 조금씩 떨어지더라고요. 예전엔 코너링 승부를 즐겼는데. 언제부턴가 승부에서 이기려고 하기보다 양보를 하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이제 그만해야 되겠다 싶었죠."

그는 경주용 자동차를 폐차시켰다. 여러 선수들이 서로 달라며 탐내던 차였지만 과감히 없애버렸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센터 일에 몰두했다.

카레이서 생활을 접고 전남으로 귀농한 이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밭에서 콩을 거두고 있다.
 카레이서 생활을 접고 전남으로 귀농한 이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밭에서 콩을 거두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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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1개월째에 접어든 이철우씨가 지난 12일 수확한 콩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가져와 말리고 있다.
 귀농 11개월째에 접어든 이철우씨가 지난 12일 수확한 콩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가져와 말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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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동차 경주에서 멀어진 후유증이었을까. 몇 년 뒤 자동차 정비 일에 싫증이 느껴졌다. 방황이 찾아왔다. 자동차 정비업을 그만두고 한눈을 팔기 시작했다. 관광버스 운전도 하고, 인테리어 일도 해봤다.

한동안 자동차 경주팀 감독으로도 일했다. 후배를 양성한다는 생각에 의욕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감독의 욕심과 회사의 기대가 다르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뒤 이씨는 자동차 튜닝사업도 몇 년 동안 했다.

"일도 재밌고 수입도 쏠쏠했죠. 그런데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언제까지나 이 일을 할 수만 없다는…."

"시골 어르신들께 농기계·용달차 안전운전 교육해 드리고 싶어요"

이철우씨가 지난 12일 자신이 직접 지은 축사에서 한우에 먹일 건초사료(이탈리안라이글라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철우씨가 지난 12일 자신이 직접 지은 축사에서 한우에 먹일 건초사료(이탈리안라이글라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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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씨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옛 친구이자 학교 동창인 송용덕씨와 고추가 널린 비닐하우스 안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철우씨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옛 친구이자 학교 동창인 송용덕씨와 고추가 널린 비닐하우스 안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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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씨에게 병이 하나 생겼다. 향수병이었다. 애틋했던 고향 하늘이 자주 떠올랐다. 천진했던 옛 친구들이 자주 꿈에 나타났다. 고향이 그리웠다. 마음의 고향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부터 이씨는 귀농을 염두에 두고 유랑에 나섰다. 전국을 다 돌아다녔다. 하지만 마음 둘 만한 곳이 여의치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향만한 곳이 없었다. 부모와 형제 모두 떠나고 없지만 그래도 고향생각뿐이었다.

어릴 적 뛰놀던 고향, 전남 영광군 군남면으로 돌아왔다. 지난 1월의 일이다. 옛 친구들이 제일 반겨 주었다. 그는 미리 사놓은 땅 1300평에 손수 집을 짓고 축사 100평을 지었다. 송아지 세 마리와 염소, 닭을 키우며 농촌생활 적응을 시작했다.

주변 밭엔 콩이며 고구마, 고추, 깨를 심었다. 빗자루를 만들어 쓸 요량으로 수수도 심었다. 한우 대체사료로 쓸 사료작물(이탈리안라이글라스)도 심었다. 조금 있으면 '지원군'도 내려온다. 직장생활이 정리되지 않아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부인이 연말쯤엔 내려올 예정인 것이다.

이철우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집을 찾아온 옛 친구 송용덕씨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철우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집을 찾아온 옛 친구 송용덕씨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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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하지 않게 하나씩 준비해 가려고요.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잖아요.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기회가 되면 시골 어르신들을 상대로 농기계나 용달차 안전운전 요령 교육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성격만큼이나 여유가 묻어나는 말이다. 자동차 경주를 했으면서도 아직까지 과속이나 신호위반으로 스티커 한 번 받아보지 않았다는 이씨다. 그의 생활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안전한 주행의 연속이길 기대해본다.


태그:#이철우, #귀농, #카 레이서, #영광, #자동차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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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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