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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항구. 물결은 잔잔하니 맑았고 하늘도 바다도 모두 넉넉했다.
 고베 항구. 물결은 잔잔하니 맑았고 하늘도 바다도 모두 넉넉했다.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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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심사관에게 그렇게 두 시간여 시달리다 겨우 빠져나와 시모노세키 역에 도착해 보니 이미 시각은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단 히로시마로 가기로 하고, 친구가 여름철 할인티켓인 '청춘(세이슌)티켓'을 한번 이용해 보자고 하였다.

"우린 중년이지 청춘이 아니잖아. 가능할까?"
"그 청춘이 그 청춘이 아니여. 피 끓는 청춘들처럼 여러 번 갈아타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이면 누구나 청춘이라는 의미의 청춘이야."
"그래? 그럼 일단 한 번 물어보자."

과연 일본의 '청춘티켓'(1만1500엔으로 5일 이용 가능. 우린 둘이 사용했으므로 3일째 되는 날 한 사람은 별도의 보통 티켓을 끊음)은 그러했다. 고속열차에 비해선 시간이 배로 걸리고 히로시마까지 오는데 네댓 번 갈아타야 했으나 급할 것 없는 우리로서는 불만사항이랄 것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무궁화호처럼 적당한 속력으로 달려주니 창 밖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딱 좋았다. NHK에서 일본철도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던 그런 풍경들이 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때론 1시간, 혹은 40분, 50분 마다 한 번씩 갈아타게 되니 그때마다 바르게 탔는지 내렸는지 긴장감이 일었고, 오르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들이었다. 다들 무슨 사연으로 오고 가는지.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하루에 지나지 않는지.

히로시마 역 안내소... 호텔 예약까지?

원래는 역 안내소 따위 들어갈 생각일랑 없었다. 어느 역, 어느 터미널에나 다 있는 그림으로 된 유적 안내도를 보면서 동으로, 서로 아무 곳이나 땡기는 명승지에다 발자국 찍고 역시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호텔이나 들어서 묵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국심사 실랑이할 때 역 안내소를 한 번 언급하고 나니 갑자기 그곳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묻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침 때는 이미 오후 네 시를 넘었기에 볼거리보다 잘 곳이 더 급하기도 하였다.
 
"안녕하세요? 역 근처에 싼 호텔 없을까요?"
"가격은 얼마 정도를 예상하시는지요?"
"보통 얼마 정도로 있어요?"
"싼 곳부터 비싼 곳까지 다 있어요.^^"

그러면서 안내소 직원이 보여준 홍보지에는 얼추 80여 개가 넘는 호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장 역 주변 호텔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다. 역 안내소 책자에 등록된 호텔 주소가 그렇게 많다니, 혹시나 하며 걱정했던 풍찬노숙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가장 싼 호텔은 얼마예요?"
"가장 싼 곳은 00호스텔인데 한 사람당 2900엔입니다."
"(무척 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 싼 곳은 없나요?"
"있기는 하지만 유스호스텔은 역에서 멀고 방과 화장실과 욕실이 다 공용이라...."
"알겠어요. 2900엔 그곳으로 할게요."
"아, 이곳도 욕실은 공용이네요."
"괜찮습니다."

안내소 직원은 바로 2900엔 하는 호텔로 전화를 걸어서 방이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방은 물론 있었다. 그는 한국여성 2명이 곧 갈 것이라고 말한 후 지도를 펴서 00호스텔은 10분 거리에 있다며 형광펜으로 우리가 찾아갈 길에다 선을 그어주었다.

00호스텔은 한 번 짧게 해맨 후 바로 찾았다. 우리네 대학촌의 빌라 한 동 정도의 건물인데 깔끔하고 정갈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니 역과는 달리 100엔이 올랐고 세금도 있어 한 사람 당 3200엔이라고 하였다. '아, 그러냐'고 하면서 좋다고 하였다.

그렇게 첫날은 여느 호텔보다는 좀 좁았으나 다다미방에서 보송보송하고 푹신한 요를 깔고 잤다. 원래 생각은 아무리 적게 주어도 한 사람 당 5,6천 엔(7~8만원) 정도는 주어야 하루를 묵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둘이 합해서 그렇다니 의외였다.

수년 전 한 지인은 일본여행 갔다가 하룻밤 방값으로 우리 돈 35만 원을 지불하고는 아까워서 혼이 났다고 말했다. 하룻밤에 35만 원이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아까웠던 기억이 있기에, 그때보다 몇 년이 더 흘렀으니 방값으로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겪어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가만 보니 일본은 물가가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오른 것이었다. 버스, 지하철, 라면, 우동, 맥주, 책, 시디 등등 다 옛날 그대로였다.

하여간 둘이 하룻밤 숙박료 6400엔 정도야 너끈히 감당하겠고. 다음 숙박지가 될 교토나 오사카의 경우는 아무래도 조금 더 비싸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어인 행운인지 더 싸게 묵을 수 있었다.

특히 다른 점은 히로시마 역 안내소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방이 있나 없나 알아봐주고, 가도 되냐 안 되냐 타진 해주기만 했다. 그런데, 교토와 오사카 역 안내소에서는 직접 전화문의는 물론 예약까지 해주었다. 나는 혹시나 호텔을 못 찾을 것을 대비해,

"위치만 알려주시면 직접 가서 예약할게요."
"아니 예약은 여기서 해야 합니다."
"아니 왜죠?"
"여기서 예약을 하면 가격이 할인 됩니다. 직접 가서 하시면 조금 더 비싸요."
"어머, 그래요?"
"네. 여기서 예약을 하면 예약확인서를 드리는데 그걸 호텔 프런트에 주고 돈을 지불하세요."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 3일 밤을 나는 동안 낸 숙박비는 다음과 같다.

첫날 히로시마 역 근처 00호스텔: 6400엔(당시 환율로 약 8만6000원)
둘째 날 교토 시내 00호텔: 5250엔(약 7만 원)
셋째 날 오사카 시내 00호텔: 4600엔(약 6만 원)

7만 원 짜리 방 치고는 대만족~
 7만 원 짜리 방 치고는 대만족~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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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대중적 국제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닌 한, 일본의 경우, 빈방은 즐비한 듯하다. 그리고 아무리 싸도 관광안내소에 등록된 호텔들은 기본은 한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청결의 정도 등이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안내소 책자에 오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일본 가기 전, 일본여행을 자주 한 친구에게 호텔 예약 없이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되냐 물으니 자기는 한 번도 예약을 하지 않고 간적이 없다며 걱정스러워했다. 반대로 인도, 티벳 등 여행 경험이 풍부한 함께 간 친구는 "미리 정해 놓고 가면 재미없어, 가면 다 돼"라며 태평했다.

뭐, 나 또한 예약 같은 건 지루하니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기는 가는데, 혹시나 역에서 박스 덮고 자야 되는 건 아닌가, 긴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무탈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비슷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친구와 나의 경우이고 다른 이들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시길.)

아무튼, 일본의 경우 역 관광안내소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호텔 예약까지 해 준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에 있었던 여행기입니다.



태그:#일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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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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