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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구럼비바위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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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의 섬 제주도에 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라는 제주올레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코스, 제주 7올레길에 있습니다.

함께 가보겠습니다. 외돌개, 돔베낭, 속골, 수봉로, 법환포구, 일강정 바당올레, 서건섬에 이르는 내내 감동의 물결로 쪽빛 바다와 하나가 되어 왔던 길은, 강정천 큰내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바다와 만나는 냇깍(바다로 흘러가던 내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절정에 달합니다.

그 다음 길입니다. 강정천 징검다리를 건너 맷부리에 올라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철조망 너머 진소깍이 길게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애가 타는 듯 주상절리 육각을 세워 파도로 부서지고 있습니다. 그 너머 멀리 보일 듯 말 듯 보이는 곳입니다. 이젠 눈 감아야 보이는 곳입니다. 아아 구럼비~라고 장탄식을 하면 저절로 눈에 밟히는 곳입니다.

강정포구까지 장장 1.2Km에 걸쳐 한덩어리로 된 은회색 바위가 울룩불룩 구름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아마 용암단괴 한 판으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클 것입니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위가 될 것입니다. 곳곳 용천수 자연연못까지 더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정원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럼비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값진 까닭은 그것이 무수한 생명의 거처이기 때문입니다. 멸종위기종의 서식처일 뿐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온 강정마을의 혼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할망물 신성한 기운을 바치던 개구럼비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바다의 광장 구럼비바위는 낯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든 어서 오시라 너른 가슴을 조각조각 내밀 뿐입니다. 고맙구나, 자리를 잡고 앉으면 바로 앞에서 범섬이 춤을 춥니다. 멸종위기종 금빛나팔돌산호, 흰수지맨드라미가 어른어른 춤을 춥니다. 멸종위기종 나팔고둥도 덩달아 박자를 맞춥니다. 끄트머리 명당이라면 발밑에서 파도가 춤을 출 것입니다. 

멸종위기종 층층고랭이를 비롯하여 갯까치수영, 벌노랑이, 고마리…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환해지는 들꽃이 철마다 바위 틈틈 고개 내미는 그곳, 어릴 적 물장구치던 민물 용천탕 물터진개의 추억까지 밀려오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그곳은, 멸종위기종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맹꽁이의 거처이기도 합니다.

강정마을에는 있습니다. 도저히 금전으로는 환산할 길이 없기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정원, 구럼비가 있습니다.

구럼비바위 (칼라 반전)
 구럼비바위 (칼라 반전)
ⓒ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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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군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정원 '구럼비'로 가는 길목은 겹겹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앞마당으로 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5년째 온힘을 다해 지켜왔지만 9월 2일 새벽, 경찰의 무력으로 구럼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중덕 삼거리마저 봉쇄당했습니다.

강정마을 전체 주민 1970명 중 725명이 참여해 그 중 94%인 680명이 반대한다는 주민투표 결과가 나왔거나 말거나, 딱 이 자리가 해군기지 최적지라는 이유로 강탈했습니다.

7코스 앞바다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이자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이를 피해 그 동쪽 화순항을 1차 후보지로 했다가, 그 서쪽 위미리를 2차 후보지로 했다가, 모두 주민반대로 무산되자 보호구역마저 넘보게 된 걸 최적지라 부릅니다.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구럼비 바위를 파과하는 걸 최적지라고 부르며, 그곳에 거처하는 멸종위기종을 죽게하는 걸 최적지라고 부르며,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의 씨를 말리는 걸 최적지라고 부르며, 구럼비로 가는 중덕해안 곳곳에서 고대유물이 출토되는데도 공사를 강행하는 것을 최적지라고 부르며, 주민들이, 시민들이, 도의회가, 각계에서, 세계에서, 아무리 불러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것을 최적지라고 부릅니다.

남방 해양수송로 확보가 긴급하다는 군사적 이유를 들었으나 그 10년 동안 정작 불이 붙은 곳은 서해5도인데 해군기지 최적지라고 부르며, 이어도의 지하자원을 수호하는 역할은 국제해양법 협약에 따라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여 이미 실효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분쟁지역임을 자청하는 군사력이 아니라 독도처럼 경찰이 나서야 함에도 해군기지 최적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강정마을에는 남아있습니다. 바위 하나 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정원, 구럼비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깨어지는 만큼 오히려 더 평화에 대한 염원은 쌓여가는 구럼비는 이제 '강정의 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의 혼'이 되었습니다.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럼비는 이 시각 현재도 처참하게 깨어지고 있습니다. 중장비로도 모자라 시험을 핑계 삼아 발파작업까지 감행했습니다. 차마 구럼비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반전입니다. 칼라 반전을 통해 구럼비를 더욱 또렷이 내 기억 가운데 각인시키고자 합니다.

반전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평화 반전을 통해 구럼비가 다시 우리들 가운데 살아나길 바랍니다.  이제 꿈으로라도 가시기 바랍니다. 맨발로 젖은 눈물로 가다가 가다가 화들짝, 수 천 수만 번 구럼비를 부르며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삶을 해고당한 뭇 생명들을 지켜주십시오. 더 늦기 전에, 단 하루만 구럼비를 허락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정마을, #구럼비, #제주 7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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