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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의 세미나실 입구.
 한 대학의 세미나실 입구.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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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의 내 첫 '팀 프로젝트'는 태국의 전통 의상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태국의 식문화를 조사해 발표하는 날, 전통 의상을 대여해 입고 발표한 것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좋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거의 모든 회의는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다. 팀원들이 모여 태국 음식을 먹으면서 회의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라인 모임'이 될 줄은 몰랐다. 다같이 모여 과제에 대해 논의해야 했지만 강의실에 남아 모이자니 다음 수업 학생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휴식공간 역시 학생들로 꽉 차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4년이 지난 지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른바 '팀플'로 통칭되는 팀 프로젝트는 팀별로 과제를 수행한 후 보고서나 파워포인트와 같은 결과물로 정리해 제출·발표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팀워크와 발표능력을 중시하면서 대학들도 발맞춰 팀 프로젝트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지난 10월 대학생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7.2%가 팀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팀플'은 보편화 돼 있다. 많은 학생들이 팀 프로젝트를 위해 '팀원'을 꾸려 의견을 나누고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 소재 6개 대학의 스터디 룸 현황이다. 정보 공개를 거부했거나 파악이 안 된다고 응답한 학교들은 도서관의 홈페이지에 명시된 스터디 룸 개수를 반영했으며, 과방이나 동아리방 등의 공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서울 소재 6개 대학의 스터디 룸 현황이다. 정보 공개를 거부했거나 파악이 안 된다고 응답한 학교들은 도서관의 홈페이지에 명시된 스터디 룸 개수를 반영했으며, 과방이나 동아리방 등의 공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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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소재 6개 대학의 '스터디 룸 및 세미나실 보유 현황'을 조사해본 결과 대학의 스터디 룸 보유랑은 8개~42개 정도였다. 적게는 7000명에서 많게는 2~3만여 명에 달하는 대학들의 학생 수를 생각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개수다. (각 대학 학생수 : A대학 1만여 명, B대학 2만여 명, C대학 7000여 명, D대학 1만여 명, E대학 7000여 명, F대학 8000여 명, 캠퍼스의 경우 서울만 포함) 대학들은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스터디 룸을 설치하거나, 단대별로 스터디 룸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펴고 있지만 그마저도 학생 수에 비하면 소규모에 불과해 학생들이 모일 공간이 없어 불편을 겪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스터디 룸 예약전쟁'에 밀리면, 빈 강의실 찾아 삼만 리

A대학 스터디 룸의 예약현황.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부터 하교하는 시간까지 예약이 꽉 찬 상황이다.
 A대학 스터디 룸의 예약현황.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부터 하교하는 시간까지 예약이 꽉 찬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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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룸의 숫자가 적은 만큼 예약 경쟁도 치열하다. A대학의 재학생 김윤혜(25, 가명)씨는 "스터디룸은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아 하루 전날에도 이미 예약이 꽉 찬다"고 설명했다. B대학의 재학생 이세연(23, 가명)씨 역시 "스터디룸은 일주일 전에 신청하려고 해도 이미 예약이 되어있어 한 시간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스터디 룸의 개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학교여도 효율성 면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D대학의 경우 스터디룸이 31개로 조사대상에 포함된 다른 학교에 비해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다른 불편함이 있었다. 해당 학교에 재학중인 박혜진(24, 가명)씨는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팀원이 보통 5~6명인데 반해 2인실 스터디 룸이 많아 실질적으로 팀원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모자라다"고 말했다.

D대학과 함께 상대적으로 많은 개수의 스터디 룸을 보유한 E대학의 재학생 전민선(23, 가명)씨 역시 "도서관에 스터디 룸이 생기긴 했지만 예약제가 아니다보니 누가 사용하고 있으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팀 프로젝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만든 스터디 룸과 비효율적인 운영 때문에 빚어진 문제였다. 박혜진씨와 전민선씨 모두 어쩔 수 없이 빈 강의실을 찾아 헤매거나 학교 근처의 카페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스터디 룸 빈자리 채우는 '카페와 모임공간'... 학생들 "지출 부담 커"

한 모임전문공간의 내부 모습
 한 모임전문공간의 내부 모습
ⓒ 해당 모임공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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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룸을 찾는 데 실패한 학생들은 사비로 공간을 '대여'해야 한다.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스터디 그룹을 만드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모임전문공간이나 카페가 일종의 '스터디 룸'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촌이나 혜화 등 대학가에 많은 모임전문공간의 경우 1명당 5000원 정도의 사용료를 내고 세 시간 동안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다. 카페를 모임의 장소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학교 앞에 위치한 카페의 음료가격이 3000원에서 5000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학생들의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대학의 재학생 문현경(24, 가명)씨는 "타 학교의 학생들과 공모전이나 취업스터디를 위해 모여야 했는데 각자의 학교 스터디 룸 모두가 만석이라 모임 전문 공간에서 모여야 했다"면서 지출이 만만치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해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연대사업국장 김난영씨는 "학생에게 중요한 세미나실이나 스터디 룸과 같은 시설보다 편의·상업시설들에 대한 접근이 더 용이한 상황이 문제"라면서 "대학들은 학생들의 교육과 복지, 학생활동 등을 책임지고 있는 곳인 만큼 학교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것보다는 대학의 본래 목적에 맞게 학생들의 교육이나 학생활동 등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밝혔다.

팀 프로젝트는 대학 교육과정에서 필요한 활동이다. 당장 모일 공간이 없는 현실에서 인터넷 메신저를 통한 '인스턴트 회의'가 차선책이 된 지는 오래다. 이런 방식의 팀 프로젝트는 화려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진 몰라도, 다른 이와 협동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얻을 수 귀중한 경험은 상당 부분 빠진 '개인 프로젝트의 합'에 그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박주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스터디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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