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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놀이터가 있는 어린이집(자료사진)
 실내놀이터가 있는 어린이집(자료사진)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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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경제 강의를 듣고 다시 한 번 가계부를 쓰기에 도전한 임태희(가명, 38세, 기혼)씨는 역시나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실제로 지출 내역을 모조리 기입해 보고 결산해 보니,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재확인해 봐야 할 만큼 적자 폭이 컸다. 빠듯한 살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적자가 나고 있을 줄이야…. 숫자로 확인된 적자 폭은 안 그래도 심란한 태희씨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내가 이래서 가계부 안 쓰려던 거였는데…. 꼭 필요한 데만 쓰고 어디 함부로 쓴 데가 없어서 적어봐야 속만 상하고 지출을 줄일 수는 없고….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요."

태희씨는 현재 초등학교 3학년 된 딸과 7살된 아들 2남매를 키우고 있다. 두 아이의 교육비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 당장 돈벌이를 시작해야 하나 싶지만 아이들 맡길 만한 데가 마땅치 않아 일 나가는 것을 망설이고만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쓰는 돈을 줄이자니 어디에서부터 얼마나 줄여야 할지도 막막하다.

200만 원이 조금 넘는 남편의 수입, 그중 각종 공과금과 자동이체 결제대금, 대출이자 등으로 매월 따박따박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을 제외하면 태희씨가 그나마 만질 수 있는 돈은 80여만 원 남짓이다. 이중 순수하게 식생활비로만 나가는 돈이 40만 원 정도. 하지만 정작 태희씨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비용은 갈수록 늘어가는 교육비다.

최근 보육비지원확대정책에 따라 태희씨 역시 일정 금액의 교육비를 지원받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이의 경우 방과 후 보육료로 약 9만 원 정도 지원받고,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아이의 경우도 유치원 다니는 비용 중 약 18만 원 가까이를 지원받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던 바다.

그러나 가계부를 작성하면서, 지원되는 금액 외에 두 아이들에게 46만 원이라는 금액이 교육비 명목으로 매월 지출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첫째 딸 피아노학원, 영어학원과 둘째 아들 태권도학원, 방문학습지 비용이었다. 지원금 27만 원까지 생각하면 두 아이들에게 73만원이라는 돈이 매달 교육비로 나가는 셈이다. 학기당 재료비나 기타 준비물로 들어가는 비용들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교육비가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이들 대학 보내려면 지금부터 한 아이당 30만 원 이상은 매달 저축해야 하더라구요. 지금 현재 교육비 들어가는 것도 벅찬데 도대체 어떻게 추가로 한 아이당 그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냐는 거죠."

대학 등록금만큼 들어가는 취학 전 교육비

언젠가 동창회 때 만난 대학 후배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생과 취학을 앞둔 7세 유치원생 두 자녀를 두고 있는 후배였다.

"지금까지 보육시설에 제 두 아이를 맡기면서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 계산을 해봤거든요. 물론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까지만요. 놀랍게도 거의 8000만 원을 지출했더라구요."

대학 후배가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전까지 보육시설에 맡기면서 쓴 비용.(기타비용은 학습지나 교재교구 비용)
 대학 후배가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 전까지 보육시설에 맡기면서 쓴 비용.(기타비용은 학습지나 교재교구 비용)
ⓒ 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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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모의 교육열과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기간에 따라 비용 차이는 크게 날 수 있다. 그러나 구태여 맞벌이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둘째를 낳고부터는 엄마 혼자 두 아이를 모두 돌보기가 어려워 첫째아이는 기저귀를 뗄 때부터 놀이방에 보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저것 안 시키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했다는 후배도 이 정도인데 영어유치원이나 다른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보육시설을 이용했다면 어땠을까?

학문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턱없이 비싼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기 중 아르바이트는 물론, 휴학을 반복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학기당 등록금이 1000만 원을 넘어서고 매년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인상률을 상회하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니, 당장 대학을 보내야 할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더라도 자녀를 둔 부모 모두에게 대학 등록금은 공포스러운 재무목표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의 숨통을 턱 막히게 하는 대학 등록금만큼을 8세 정규교육을 받기 이전, 즉 '프리스쿨(pre-school)' 단계에서 몽땅 써버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도 대학 등록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지출되고 있다. 그러니 정작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돈이 부족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적정보육비 정해두고 쓰지 않으면 '낭패'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까'보다 '어떤 교육을 안 해도 좋을까'를 결정하기가 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시키면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고, 계속 더 많은 '교육 상품'들을 양산해내는 학원들 앞에 부모는 자신감이 떨어진다. 대세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면 우리 아이만 도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잘하라고 시키는 사교육이 아니라 뒤처지지 말라고 어쩔 수 없이 시키게 되는 사교육은 갈수록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치원에서 하는 특강들이 있어요. 영어, 과학 외에도 각종 놀이교육 같은 게 많더라구요.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은 노는 게 낫겠다 싶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 안 하게 되면 뒤처질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애초에 그런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터라 그래도 그냥 우리 애들은 놀게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어린이집에 있어도 그 시간에 우리 아이들만 돌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따로 없어서 곤란하다고 하는 거예요. 단체 생활에서 예외를 둘 수 없다 뭐 이런 반 강제적 느낌이랄까요."

남들은 다 하고 있는 것을 안 시키겠다고 하는 부모들은 자식이 뒤처질 수 있다는 협박들을 들어야 한다. "애들은 다 놀면서 크는 거"고 "우리 어릴 때는 중학교 가서야 비로소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공부만 잘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시대를 읽지 못하고 과거에 안주하는 고리타분한 부모가 되는 지름길이다.

아이가 뒤처진다는 협박과 시대에 뒤쳐진 부모라는 누명까지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보육비 안 쓰기를 실천해 보려 했던 태희씨는 결국 '유난 떨지 않고' 대세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유난히 독보적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또래 무리에서 뒤처지지만 않으면 된다. 그런데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한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지금 스스로 적정 교육비를 정해두고 쓰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다. 해두면 다 좋을 것이지만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이것저것 마구 지출하다가 정작 아이 교육비가 필요한 순간에 돈이 없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순서대로 하나씩 해나가도 늦지 않다. 아이를 낳아 대학에 보내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유아교육비, #대학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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