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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소백의 능선
 눈 덮인 소백의 능선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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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은 월악산 국립공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소백산 국립공원에 더 많이 가 봤다. 그 이유가 뭘까? 산이 더 아름다워서일까? 그렇지 않다. 소백은 육산(흙이 많이 뒤덮인 산)이고 월악은 골산(다른말로 석산, 바위산)이어서, 산이 주는 멋과 맛은 월악이 한 수 위다.

그럼 산이 높아서일까?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높이는 호오(好惡)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내가 소백산을 자주 찾은 진짜 이유는 스토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소백한, 정말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산이다.

나는 몇 년 전 충북 도계탐사라는 이름으로 소백산을 한 바퀴 돌았고, 지난 해 소백산 국립공원이라는 책을 내면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를 다시하게 됐다. 그리고 겨울에는 가끔, 소백의 백설(白雪)과 눈꽃을 보러 그리고 칼바람을 맞으러 능선을 찾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 소백산 자락을 따라 문화생태탐방로가 조성됐다. 이름하여 '소백한 자락길'이다.

소백산은 문화와 이야기가 산자락을 따라 주저리주저리 열려있고, 자연과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아왔다. 소백산 자락길은 이곳에 길을 연결하고 표지판을 세우고 스토리텔링을 해서 2009년에 완성되었다. 소백산을 찾는 사람들이 놀멍 쉬멍 10-20㎞의 구간 길을 걸으면 된다. 소백산 자락길은 모두 12개 코스로 되어 있다.

소백산자락길 제1코스
 소백산자락길 제1코스
ⓒ 소백산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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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코스가 바로 '고려가요와 함께 하는 문화생태 탐방길'이다. 이 코스는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서 시작해 풍기읍 삼가리에서 끝나는 12.6㎞의 걷기길이다. 이 길의 주요 경유지로는 선비촌, 순흥향교, 죽계구곡, 초암사, 달밭골, 비로사가 있다.

이 코스에는 서원과 향교로 대변되는 교육기관이 있다. 죽계구곡이라는 멋진 자연 속에는 선인들의 발자취가 시와 노래로 표현돼 있다. 초암사와 비로사는 신라 화엄종의 대가 의상스님과 그 제자들의 삶의 흔적이 서려 있는 고찰이다.

그리고 달밭골, 그 이름만 들어도 신선이 놀 것 같지 않은가! 달빛이 비치는 교교한 밤,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한에 잠 못 들어 했을 것이다. 달밭골은 옛날 화랑도들이 유오산수(遊娛山水)하던 길이란다. 여행하며 산수를 즐기던 곳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말에는 보부상이나 의병들이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그건 가능성이 조금 있어보인다.

풍기역
 풍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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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카페에 '고려가요와 함께 하는 문화생태 탐방길'을 걷자는 번개가 쳤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번개는 맞아야 되겠다 싶었다. 아침 8시 50분까지 풍기역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산내들내 길찾아' 팀 10명과 합류했다.

숙수사 당간지주와 백운동 취한대

숙수사 당간지주
 숙수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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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앞에서 소수서원을 거쳐 부석사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9시 15분에 있다. 한 이십 분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차를 타는 사람은 많치 않다. 이게 요즘 시골버스의 모습이다. 요금은 1인당 1200원이란다. 약 20분 후 우리는 소수서원에 내렸다.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합한 입장료가 3000원이다. 이곳 영주시민들은 반값인 1500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 회원 중 하나가 조금은 불만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 지역 사람들에게 조금의 혜택을 주는 것, 그렇게 나쁘지 않다.

소수서원에 들어가면 처음 숙수사 당간지주를 만날 수 있다. 아니, 서원에 웬 당간지주? 그것은 이곳 소수서원이 숙수사 옛터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숙수사 절을 빼앗아 서원을 세웠을 수도 있고, 폐사가 된 숙수사 터에 서원을 세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후자가 맞다고 한다. 단종 복위 실패로 세조 3년(1458) 숙수사가 불탔기 때문이다. 이 당간지주는 보물 제59호다. 통일신라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예술성보다는 역사성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백운동 취한대
 백운동 취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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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에서 우리는 서원 쪽으로 가지 않고, 죽계천을 건너 취한대로 먼저 갔다. 취한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을 붙인 정자로, 푸를 취(翠)자와 찰 한(寒)자를 쓴다.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한 자씩 차용한 것으로 '소나무는 푸르고, 시내는 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죽계의 시원한 물빛'을 뜻한다고 써 놓았다. 이 이야기가 더 운치있는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죽계천 이쪽의 서원에서는 공부를 통해 머리와 가슴을 뜨겁게 하고, 저쪽의 취한대에서는 풍류를 통해 머리와 가슴을 식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죽계천 준설공사가 한창이라 푸른 산기운과 시원한 물빛을 느낄 수 없다. 포크레인의 기계음만이 이곳을 뒤흔들고 있다. 취한대 옆에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흰 글자와 경(敬)이라는 빨간 글자가 있다. 백운동은 이곳의 지명을 나타내고, 경은 성리학에서 중시하는 수양의 방법론이다.

백운동 경(敬)자 바위
 백운동 경(敬)자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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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은 서원을 세운 뒤 죽계천 건너 바위에 성리학의 근본 사상인 경(敬)자를 새겼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음(主一無適)'이 경이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수양론의 핵심 사상으로, 선비들의 지침이며 성인이 되는 방법론이다. 효경(孝經)과 맹자(孟子)에서는 공경의 뜻으로, 논어(論語)에서는 삼가 근신하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경자 위에는 백운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퇴계 이황의 글씨라고 한다.

백운동과 경자 바위를 지나 북쪽으로 가면 다시 소수서원으로 넘어가는 나무다리가 있다. 이름은 백운교다. 최근에 세운 다리인데 꽤나 운치 있게 만들었다. 이곳을 지나 소수서원으로 가면 충효교육관이 나온다. 옛날 소수중학교 터에 만든 것으로 말 그대로 정신교육을 위해 만든 교육시설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또한 관리사무소가 들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거꾸로 사료관과 고직사를 지나, 강학당이 있는 본채로 들어간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다. 알고 보니 문화재청 산하 문화유산 전문 교육기관 전통문화학교 학생들이란다. 고건축과 옛 교육 방식을 알기 위해 이곳으로 현장답사를 왔다고 한다.

소수서원에 서린 수많은 이야기들

소수서원의 강학당
 소수서원의 강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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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의 원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다. 1542년 풍기군수로 재임하던 주세붕(1495-1554)이 이곳 백운동에 고려 말의 유학자 안향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서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듬해 학사(學舍)를 건립하고 백운동 서원이라 불렀다. 이것이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서원이다. 백운동 서원을 세운 신재 주세붕은 경상도 칠원(漆原) 사람으로 정치와 유학 그리고 시에 능한 사람이다.

152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홍문관 성균관 등에 근무하며 교학의 진흥에 힘썼다.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5년 동안 선정을 베풀어 그의 이름은 훌륭한 목민관의 대명사가 되었다. 부임 이듬해인 1542년 주세붕은 숙수사의 옛터인 백운동에 성리학의 선구자인 회헌 안향 선생을 기리는 사당인 회헌사(晦軒祠)를 세웠다.

다음 해인 1543년 그는 주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 사당을 서원으로 확장하고 그 이름을 백운동 서원이라고 불렀다. 1548년에는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했으며, 백운동 서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소수서원의 늦가을
 소수서원의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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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남쪽 폐허가 된 옛 고을 순흥 땅                        小白南墟古順興
죽계 차가운 물 흘러내리고 흰 구름 피어나네.               竹溪寒瀉白雲層
인재를 길러 도를 지키니 그 공적 얼마나 대단한가         生材衛道功何遠
사당을 세워 선현을 존중함은 일찍이 없었던 일.            立廟尊賢事匪曾
흠모하고 우러러 여러 곳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몰려오니 景仰自多來俊碩
학문을 배우는 것은 벼슬길을 흠모해서가 아니라네.       藏修非爲慕騫騰
옛 사람들을 보지는 못하나 마음으로 볼 수 있고            古人不見心猶見
네모난 연못에 비치는 달 차기가 얼음 같구나.               月照方塘冷欲氷

그는  곧 이어 명종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고, 1550년 소수(紹修)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이렇게 해서 백운동서원은 소수서원이 되었고, 서적, 토지, 노비를 함께 하사받았다. 여기서 소수라는 명칭은 당시 대제학이던 신광한이 임금에게 올린 '기폐지학소이수지(旣廢之學紹而修之)'에서 따 왔다. 이것은 '이미 학문이 피폐해 졌으니 이어서 닦을 수 있게 하라'는 뜻이다.

안향 영정
 안향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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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수서원은 죽계천을 끼고 남향하고 있다. 여늬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당인 문성공묘와 교학공간인 강학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성공(文成公)은 회헌 안향의 시호다. 서원은 일반적으로 전학후묘(前學後廟)로 이루어져 있으나 소수서원은 동학서묘(東學西廟)로 되어 있다. 강학당이 서원 한 가운데 위치하고, 문성공묘가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강학당 뒤로는 일종의 기숙사인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 직방재가 있고, 그 옆으로 장서각, 영정각, 전사청이 있다.

주세붕
 주세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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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관련이 깊은 안향과 주세붕의 영정은 현재 영정각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이들 두 영정은 국보 제111호와 보물 제7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향 영정은 고려 충숙왕 5년(1318)의 작품이다. 공자의 사당에 그의 초상화를 모실 때 하나를 더 옮겨 그려 향교에 모셨다가, 백운동 서원이 건립되면서 이곳에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안향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다.

그리고 주세붕 영정은 사모관대의 관복 차림으로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간략한 선으로 묘사하고, 넉넉한 몸체에 목은 거의 표현하지 않아 권위적인 기품이 느껴진다.

이 그림의 정확한 제작연대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훼손된 상태, 복식, 필법 등으로 미루어 주세붕이 살던 16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당시 초상화가 대부분 공신상인데 비해, 이 그림은 학자상으로 우아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이곳 영정각에는 안향과 주세붕의 초상뿐 아니라, 이원익, 이덕형, 허목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소백산 자락길 제1코스를 답사했다. 제1코스는 순흥면 내죽리의 소수서원에서 풍기읍 삼가리까지 이어지는 걷기길이다. 개천, 들판, 문화유산, 등산로 등이 잘 어우러진 명품 걷기 코스다. 1차로 이곳 제1코스에 대한 글을 5회 쓸 예정이다. 그리고 2차로 소백산 자락길 제 8,9,10코스에 대한 글을 5회 정도 더 쓰려고 한다. 이를 통해 자락길이 올레길, 둘레길 다음의 유행어가 됐으면 좋겠다.



태그:#문화생태탐방로, #소백산 자락길, #풍기역, #소수서원, #백운동 취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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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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