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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을 알리고, 주민들을 후원하기 위해 책을 만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이주빈 기자의 글과 노순택 작가의 사진을 묶은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강정마을을 알리고, 주민들을 후원하기 위해 책을 만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이주빈 기자의 글과 노순택 작가의 사진을 묶은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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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안 섬은 고단한 삶의 상징이었다. 지나간 모든 왕조들의 관심에서 섬사람들은 없었다. 섬사람들이란 조정에 필요한 물자를 공출하는 수탈의 대상이자 왜적이 침입하면 앞에서 몸으로 막아야 할 전방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바다를 통해 근대가 이 땅에 상륙하면서 섬이 소란스러워졌다. 압제에 저항하려는 생각이 섬에 싹 텄고, 그 싹을 자르려는 세력이 총과 칼을 들고 섬으로 몰려들었다. 남로당의 이승엽은 영흥도에서, 진보당의 조봉암은 강화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우연만은 아니다. 1948년 제주의 민중들이 남한 단독선거에 보이콧 결정을 내린 값으로 치른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역사가 한반도에 고착된 섬의 정치학을 여과 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 세월을 보내고 잊을 만하니 다시 제주섬이 들끓었다. 국가권력이 남방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유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강정마을 해안이 부지로 결정되었다. 1900명의 주민 가운데 87명이 모여 유치신청을 한 것으로 '주민동의'는 완결되었다. 그것도 제주를 '세계평화의섬'으로 선포한 참여정부가 집권하던 2007년 봄에 이루어진 일이다.

강정마을을 수탈하기 위해 국가권력은 주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이 마을 사람들을 이웃마을 주민들과 이간질시키고, 마을주민들, 심지어는 형제 사이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주민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군과 경찰은 폭행과 연행을, 사법부는 구속과 벌금을 난발했다. 지난 4년 반 동안 주민들은 가장 정당한 투쟁 가운데서 최악의 수모를 맛봐야 했다.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오마이북 펴냄)가 그것인데, 이주빈 기자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기사들을 노순택 사진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엮은 것이다.

글을 쓴 이주빈 기자는 흑산도가 고향인 섬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입버릇처럼 "제주섬에 오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도 섬에 대한 그의 서정을 엿볼 수 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안다. 스치는 눈길 한 번에도 얼마나 마음이 울렁대는지.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고 열정적인 기쁨인가를. 외로움을 천형처럼 지고 태어나서 그렇다. 섬에서 태어난 순간 이미 고독은 떼어낼 수 없는 멍에인 것이다.' - 본문 43쪽

구럼비는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는 강정마을 해안에 있는 조면안산암질 너럭바위를 이르는 말이다. 해안을 따라 1.2km 길이로 널려 있는데, 그 너비는 약 150m에 달한다. 얼핏 보면 여러 개의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통바위다. 제주도에 널려있는 현무암은 구멍이 많고 표면이 거친 반면에 구럼비 바위는 구멍이 거의 없고 표면이 매끄럽다.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구럼비에는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등이 서식하고 바위가 갈라진 틈에서는 1급수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데, 주민들은 이 샘물을 '할망물'이라 불렀다. 이 마을에는 할망물이 아이 못 낳는 사람이 아이를 낳게 하고, 아픈 아이의 병을 낫게 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싸움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노순택 사진작가가 찍은 구럼비 사진이다. 구럼비에 물이 고여있고, 아이들이 평화롭게 물가에서 놀고있다. 그리고 바다너머 멀리 범섬이 내다 보인다. 평화롭던 구럼비는 이제 철조망에 가로막혀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노순택 사진작가가 찍은 구럼비 사진이다. 구럼비에 물이 고여있고, 아이들이 평화롭게 물가에서 놀고있다. 그리고 바다너머 멀리 범섬이 내다 보인다. 평화롭던 구럼비는 이제 철조망에 가로막혀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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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구럼비는 조상대대로 물려온 생활의 터전이다. 그런데 해군기지라는 괴물은  구럼비를 강탈하려 했다. 그래서 구럼비를 빼앗으려는 권력집단과 이를 지키려는 주민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해군기지를 놓고 벌어지는 싸움에서 구럼비는 투쟁의 중심에 놓였다. 지난 9월 2일, 경찰이 육지부에서 불러들인 공권력을 투입하여 해안으로 진입하는 농로를 차단한 이후, 주민들은 빼앗긴 구럼비를 되찾기 위해 매일 밤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해군은 폭약을 사용하여 구럼비를 파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싸움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부제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이다.

평화유배자들의 이름 첫머리에는 문정현 신부가 올랐다. 마을을 위해 기도도 하고, 싸움에도 앞장서지만, 주민들을 위해 해산물을 판매해서 얻은 1300만 원을 마을에 기부한 게 돋보이는 업적이다. 그래서 '길 위의 신부님'에서 '강정상단 대행수님'이라는 새로운 별칭을 얻었다.

30대 청년 김민수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원래 장래가 촉망되는 애니메이션 작가였는데, 투쟁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권일씨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마을을 찾았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주소지 이전으로 마을의 주민이 된 것은 물론이고, '강정김씨'라는 새로운 본을 만들어 스스로 시조가 되기도 했다.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 유일한 강정김씨인 셈이다.

평화유배자의 명단에는 외국인들도 올랐다. 프랑스인 벵자맹 모네와 타이완인 왕에밀리씨다. 벵자맹 모네씨는 직업이 '마음치료사'인데, 보헤미안 기질 때문인지 전 세계를 유랑하며 보내고 있다. 지난 5월에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가 마을에 텐트를 치고 전 세계로 마을의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해왔다.

왕에밀리씨는 동티모르에서 평화봉사활동을 거치고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그는 마을에 평화의 싹을 키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지었으며, 아침마다 구럼비 바위에서 108배를 올렸다. 이제 그가 평화의 씨를 뿌리던 자리는 해군에 빼앗겨 들어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민주노동당 현애자 전 국회의원이, 도내 시민단체 활동가로는 고유기 범대위 집행위원장의 이름이 소개되었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되기 한 참 전에 화순에서부터 군사기지 반대에 앞장서던 이들이다.

2011년 해군기지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측은지심에 마을에 눌러앉은 사람들도 있다. '개척자'들의 송강호씨와 생명평화결사 100일 순례단을 이끌고 온 권술룡 단장, '강정당' 당수 김세리씨 등이다. 주민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다. 송강호씨는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현재까지 당국이 그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수 억 원에 달한다.

해군기지 싸움에서 최전선에서 가장 오래도록 싸워온 이들은 역시 주민들이다. 책에는 강동균 마을회장과 고권일 대책위원장, 백합농사꾼 강희웅씨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리고 해군의 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법환마을(강정마을과 인접한 마을) 해녀회장 강애심씨가 소개되었다.

그런데 평화유배자들이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만 있겠는가? 최근에 경찰에 긴급하게 체포된 이들의 이름만도 다 나열하기 어렵고, 강동균 마을회장과 연행되어 수감된 김종환씨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고 고유기 집행위원장과 재판을 받은 홍기룡 집행위원장은 며칠 전에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부록으로 '제주해군기지 무엇이 쟁점인가'와 '강정마을, 4년의 기록' 등이 실렸는데, 해군기지 싸움이 진행돼 온 과정을 이해하는 자료로 매우 유익하다.

이주빈 기자의 서정성 깊은 문체와 노순택 작가의 사진이 잘 어울려 책은 진한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누구보다도 보수언론 기자들이나 한나라당 의원들,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구럼비가 "제발 이 죽음의 망나니 짓 그만 멈추라고 말려주세요"라고 전하는 말, 깊이 새겨 듣기를 바란다.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

이주빈 글, 노순택 사진, 오마이북(2011)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구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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