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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고 경쟁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 원의 등록금 고지서에 숨이 막혔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해버렸습니다." - '대학거부선언' 중에서

11월 1일, 청계광장에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10대·20대 10여 명이 모였다. 이들 가운데는 대학을 다니다 그만둔 이들도 있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지난 8월, 19살 동갑내기인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10월에는 이 모임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공현'이 서울대 자퇴 선언을 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오는 11월 10일, '입시 좀비'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릴레이 1인 시위, 캠페인 등을 펼쳐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12일에는 '경쟁과 학벌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거리행동'을 청계광장에서 진행한다. 지난 10월 31일에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 행진'을 했다.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 살기 위해 대학 거부"

11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대학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11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대학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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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한 '대학거부선언'에서 이들은 대학을 그만두거나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학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대학거부선언'에는 30명이 참여했다.

이어 이들은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 어렵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들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할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 우리가 대학을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학벌·학력이 어떻든 차별 받지 않고 정당하고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11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대학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11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대학거부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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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는 서울산업기술대학을 자퇴할 예정이라는 강현(20)씨도 참석했다. 강씨는 "영어교육을 토익에 맞춰서 하는 등 취업에 맞춘 교육만을 하는 대학 틀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이라는 사회는 소수만의 우월성을 위해 모두가 차별당하고 희생당한다, 학벌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이상 이러한 매커니즘은 깨지지 못한다"면서 "지금은 몇십 명 만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점차 확대되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학 비진학자인 둠코(19)는 "대학입시거부를 축하드린다"면서 "이게 '정신승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같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대학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 #투명가방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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