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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밥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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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러 동석이 올 거야."

시니(제 남편입니다)가 친구를 데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는 아니다. 영월에 내려오자마자 남편은 인천에서 계속하던 사회인 야구를 이곳에서도 하게 됐다. 동석씨는 야구단원 중 한 사람으로 시니가 무척 좋아하는 동생이다. 동석씨는 새마을금고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고, 시니는 두부 사러 구멍가게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냉장고 검열에 들어간다. 뒤지면 다 나온다. 오이는 깎아서 고추장이랑 내놓고, 양상추는 잘게 찢어서 요플레를 얹어 샐러드 만들고, 마른 김은 불에 구워 바삭하게 한 접시 내고, 된장찌개는 데우고, 두부는 구워 간장에 조리고…. 평소에 먹던 깻잎장아찌랑 고추장아찌, 김치, 쥐포무침으로 순식간에 한 상 차려진다.

"너무 맛이 있어요. 역시 집밥이 최고!"

동석씨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며 젓가락질하기에 바쁘다. 아마도 배고픔이 최고의 반찬이었으리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 가족들과 머리 맞대고 먹는 밥. 이것이 진정한 '집밥'이다. 총각인 동석씨에게 '집밥'은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삭스핀보다 훌륭했으리라. 밥은 이렇게 소중하다. 매일 먹지만 질리지 않고 한 가지라도 새로운 반찬이 올라오면 흥분하며 기쁘게 먹는 식구들을 보면 밥 차리는 걸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사람을 품으려면 '밥'을 먹여라

밥 속엔 모두가 원하는 그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성부터 사랑, 소통, 협력, 믿음, 이해, 격려까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눈이 즐거워지고 입이 기뻐하고 위가 포근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같이 먹는 사람들은 서로 닮게 된다. 넉넉하고 남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인천 민들레 국수집(처음엔 국수만 내주었는데, 기부로 인해 형편이 나아지면서 밥을 준다)의 서영남씨. 내가 아는 지인 중에 밥의 위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에 하나다. 인천의 가장 못사는 지역에서 밥 못먹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양념 듬뿍, 반찬 듬뿍, 사랑 가득 퍼 주는 사람이다. 그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밥 빌어먹는 이들을 최고의 VIP로 대접한다.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지키면서 "오세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선물합니다"라고 외친다.

이곳에선 맛이 중요하다. 밥 먹는 것은 끼니를 대충 때우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함이 아니다. 쇠고기를 아끼지 않고 과일도 남겨두지 않는다. 집에서 가족들과 먹는 밥과 똑같다. 고깃국으로 국물을 내 여러번 먹기보다는 구이나 조림을 해서 육질이 씹히고 양념국물이 주르르 흐르는 그런 반찬을 낸다. 마늘, 참기름 아끼지 않고 충분히 넣어 시금치 무침, 콩나물 무침을 더 고소하고 아삭하게 만든다. 밥도 금방 지어 갓 오른 김이 솔솔 코 끝을 간지럽힌다. 후식으로는 제철에 나는 과일을 준비하고 일하다가 먹을 수 있도록 주머니에 한두 개를 더 챙겨준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듯, 매일 새로운 밥을 짓는 이유는, 밥을 통해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랑! 사랑! 사랑! 내가 사랑을 받고 있구나" 번개처럼 다가온 깨달음. 밥을 먹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 받는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사람은 변한다. 존재를 느끼고 행복해하며 그걸 나누고 싶어한다. 비록 이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때까지 수도 없이 밥그릇을 채우고 비우는 일을 해야한다. 하지만 한번 사랑을 확인한 사람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게 된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

밥보다 더 위대한 게 있을까?
정신과 몸을 채워주는 완벽한 땅의 수확물이다.
영월,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제가 밥 차려드릴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밥,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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