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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저녁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16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14일 저녁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16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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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감독의 갓 나온 따끈따끈한 작품들부터, 거장의 철학이 배인 작품까지 1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엄선한 작품들은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고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화려한 레드카펫을 밟는 여배우의 의상이 화제가 되기도 하고, 스타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시를 받는다. 전 세계 영화인들은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서로의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1년을 준비해서 9일 간의 행사를 통해 평가를 받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특성이다.

국내 영화계 최대의 잔치인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 막을 내렸다. 허름한 남포동 극장가에서 처음 시작됐을 때를 떠올리면 올해 16회를 맞는 영화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음을 보여 줬다. 화려한 전용관 '영화의 전당'은 그 상징이었다. 부산시는 영화의 전당 개관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 3대 영화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울 만큼 기대가 크다.

늘어난 관객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관객은 위대하다'는 표현이 저절로 나온다. 부산영화제를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관객들이었다. 엉성했던 첫 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관객의 힘이었고, 부산영화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지켜낸 것도 관객들이었다. 부산영화제 측의 말대로 관객은 올해 영화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급박한 개장 속에 치러진 영화제는 마무리까지 깔끔하지 못했다. 새 전용관에서의 출발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영화의 전당과 부산영화제 측의 갈등이 표출되면서 어수선해졌다. "개막식 때 비가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영화제 관계자의 말처럼 비 새는 전용관은 망신이었다. 이번 영화제의 주인공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열정을 보인 관객들이었다지만 관객 배려는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 시간이기도 했다.

현실로 드러난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의 우려

14일 오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서 이용관 위원장이 영화의 전당 측의 비협조로 올해 영화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14일 오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서 이용관 위원장이 영화의 전당 측의 비협조로 올해 영화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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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결산 기자회견에서 직접적으로 노출된 영화제 측과 영화의 전당 사이의 갈등은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일찍 터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지붕 두 가족 체제에서 예상됐던 우려가 결국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제를 성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용관 위원장의 말에는 영화제를 치르며 속 끓였던 심정이 배어 있었다. 

한 스태프는 "따로 그 문제를 놓고 기자회견을 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영화의 전당 측이 뭐든 제약만 한다"며 "실무 스태프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위원장님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전했다. 강성호 사무국장은 "영화제가 뒷정리가 마무리되는 12월쯤 사무국 이전 계획을 세워 놓았으나,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계획대로 진행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도 예상했다.

영화제 측의 입장에 대해 영화의 전당 측 또한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건물이 완공되지 않아 관리에 대한 공식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으나 원론적인 표현이 많았던 것을 보면 부산영화제 측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안은 야외 구름다리 통로의 개방문제였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통로를 막았다'는 것이 영화의 전당 측 해명이지만 영화제 측은 납득하기 힘든 이유라는 반응이었다. 단순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양측의 기 싸움이 벌어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영화제 측으로서는 영화의 전당 측이 부산영화제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지 않자 영화의 전당 활용에 회의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졌던 것과는 다른 환경에 불편함이 커졌던 것이다. 

"우린 텐트를 치고라도 할 수 있다. 너무 좋은 건물이지만 우리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가난하게 시작했기에 수영만이 낫다"라는 이용관 위원장의 발언은 이 같은 영화제 실무진들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양측의 생각은 조정해야겠지만 일단 지원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전당' 측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이런 문제가 드러난 것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갈등이 잘 정리되는 게 중요한 것이겠지만, 지난 15년간 잘 이어져 오던 영화제가 이제 막 지어진 새 집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부산시의 현명한 해결 방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관객 존중, 말보다는 행동 통해 드러나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날 영화의 전당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관객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날 영화의 전당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관객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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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가 관객 중심을 표방하고 있지만 관객 배려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안정화되던 예매 시스템은 일반상영작 예매 첫날 관객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일부분 불안감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늘어나는 관객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해명이었지만 문제 해결은 부산영화제가 할 일이지 관객들에게 떠넘길 사안은 아니다. 예매일 분리 등의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관객들의 참여가 늘면서 영화제 측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관객 숙소도 원하는 관객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상영관 주변의 휴식 공간도 관객들이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직 주변 시설이 마무리 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관객들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했다.

예년과는 달리 간이매점의 일부 물품 가격이 비쌌던 것 등은 관객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시중에서 1000원 하는 컵라면은 간이매점에서 1500원이었다. 관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상혼에 관객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셔틀버스 운행 시간도 관객들의 불만 사항이었다. 오후 8시면 모든 운행이 종료돼 그 시간 이후 영화 상영이 끝난 뒤에는 이동이 불편했다. 심야상영 관람자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국내 다른 영화제들이 늦은 시각까지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셔틀버스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부산영화제의 관객 배려는 조금 더 세밀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관객과 함께하는 행사가 부족했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예전에는 밤샘 공연 프로그램인 시네마틱 러브나 관객들과 함께하는 폐막파티 등이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행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장소 문제 등이 있었겠지만 영화제 측이 말로만 관객에게 고마움을 나타내기보다는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 다가갈 때 그 진심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약자들과의 연대로 영화제의 격을 높인 영화인들의 실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과 제주 강정마을을 지지하는 영화 감독들의 1인 시위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영화의 전당 앞에서 펼쳐졌다.
▲ 1인 시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과 제주 강정마을을 지지하는 영화 감독들의 1인 시위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영화의 전당 앞에서 펼쳐졌다.
ⓒ 민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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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의 노력이 영화제의 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그 중심에는, '300일 가까운 참혹한 시간을 85호 크레인 위에서 갇혀 지내는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을 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는 영화인들의 마음이 자리한다.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여균동 감독,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 배우 김꽃비 등 영화인들은 한진과 강정을 지지하는 구호를 펼쳐 들었다.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화려한 레드카펫을 걸은 배우 김꽃비씨는 영화제 막바지인 지난 13일 85호 크레인 앞으로 조용히 김진숙을 찾기도 했다.  

<하얀 전쟁> <남부군>의 정지영 감독과 <시>를 만든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 등이 참가한 영화인 희망버스는 이 같은 노력의 상징이었다. 올해 부산영화제 3관왕 <돼지의 꿈> 연상호 감독과 지난해 수상작 <무산일기> 박정범 감독 등은 영화제 기간 중 1인 시위를 통해 한진과 강정에 대한 영화인들의 지지를 나타냈다.

희망버스 반대와 관련해 부산시와 관변단체가 부산국제영화제 개최를 내세우며 영화제 측을 압박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행동은 영화제를 위했다기보다는 영화제의 정체성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실제적으로 영화제를 지켜낸 것은 영화인들의 행동이었고, 정지영 감독의 표현대로 희망버스는 외신의 주목 속에 "영화제의 격을 높였다." '진실을 담고자 하는 우리의 카메라 렌즈를 끄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는 영화인들의 다짐은 올해 영화제에서 가장 빛났다.

희망버스와 관련된 논란은 부산영화제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했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기계적 중립성은 영화제가 지향해 나갈 방향성과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란에서 정치적 이유로 탄압받고 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지금껏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현실에 맞서왔다.

그런데도 국내적 현안에 대한 소극적인 반응은 영화인들의 의지와는 어긋난 것이었다. 물론 영화제를 바라보는 대내외적인 시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영화제의 독립성을 더욱 필요해 보였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영화제 성장, 이용관 체제 안정이 바탕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 민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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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위원장 이후 영화제를 이끌게 된 이용관 위원장 체제가 지금껏 쌓아온 성과를 무난히 이어나갔다. 부산영화제의 성장은 사실 이용관 위원장 체제의 안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과 경쟁해온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가 세대교체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위상이 추락하고 흔들리면서 아시아의 부산과 북미의 토론토영화제에 추격당하고 있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에 비해 질 쟈콥 위원장이 물러나고 티에리 프레모가 위원장을 계승해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낸 칸영화제는 흔들림 없는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부산영화제의 출발을 일궈냈던 이용관 위원장 체제가 무난하게 안착될 때 부산영화제의 성장과 발전은 자연스런 수순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고 지원의 확충도 필요하고, 영화제를 이념적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잘못된 시선도 사라져야 한다.

세계 주요 영화제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위상이 커졌듯이, 부산이라는 지자체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발전기금이 국고 대신 투입되는 현재의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영화제를 통해 해외에서 높아지는 국가 브랜드의 가치 등을 고려해 정부의 재정 지원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런 과제를 무난히 해결해 낸다면 목표로 하는 세계 3대 영화제로서의 도약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영화의 전당에 첫 발을 내디딘 이번 1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음을 동시에 알려준 시간이었다.


태그:#부산국제영화제,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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