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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패드(왼쪽)와 삼성 갤럭시탭10.1
 애플 아이패드(왼쪽)와 삼성 갤럭시탭10.1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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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은 저쪽에서 찼으니까 그 중 한두 개만 막으면 되는 거 아니냐?"

애플과 '특허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4일 오후 김포공항에서 한 말이다. 지금까지 독일, 네덜란드, 호주 법원의 잇따른 삼성 제품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이 "애플이 고른 장소, 고른 논리로 페널티킥을 찬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작 삼성이 찬 첫 페널티킥은 애플 골대를 멀찌감치 벗어났다. 네덜란드 헤이그법원이 이날 밤 삼성이 제기한 애플 아이폰-아이패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애플 '페널티킥' 3연속 골?... 삼성은 첫 골 놓쳐 

이날 오전 애플 안방인 미국 법원에서 삼성 제품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연기했 때만 해도 해도 국내 언론에서 삼성에게 유리한 게 아니냐는 희망 섞인 전망이 뒤따랐다. 루시 고 미 새너제이 지방법원 판사는 13일(현지시각) "삼성전자 갤럭시탭10.1이 애플 아이패드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면서도 "애플이 그 특허의 유효성을 규명해야 한다"며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유보했다.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당장 판매금지 조치가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삼성 처지에선 호재였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 법원의 기각 결정은 찬물을 끼얹었다. 삼성은 지난달 25일 애플 모뎀 칩셋에 자사 3G 이동통신 기술 특허를 사용하면서 특허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아이폰과 아이패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하지만 헤이그법원은 이날 "애플이 사용한 삼성 기술은 유럽 통신표준연구소(ETSI) 규정상 표준화된 '필수 특허 기술'"이라면서 "표준 특허의 경우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FRAND·프랜드)' 방식으로 비특허권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판매금지 요청을 기각했다.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 법원 결정 일지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 법원 결정 일지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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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드' 탓에 '표준특허' 침해 주장 무력화

애플 제품에 삼성 기술이 사용된 건 인정하면서도 삼성 역시 애플에게 합리적인 특허권료를 요구해야할 '프랜드' 의무를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칩당 2.4%에 이르는 로열티를 요구한 것은 지나치다는 애플쪽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향후 본안 소송 결과에 따라 애플은 삼성에 적절한 특허권료를 지불할 수 있지만 적어도 아이폰-아이패드 판매금지라는 최악 상황은 피했다.

제품 외관이나 사용자 환경(UI) 등 '트레이드 드레스' 같은 디자인 특허를 앞세운 애플에 맞서 기술 표준 특허로 유리한 협상 국면을 만들려던 삼성전자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은 그동안 한두 달 내 결과가 나오는 가처분 신청보다는 시간이 1년 넘게 걸리는 본안 소송으로 애플과 합의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애플이 유럽과 호주 법원에서 잇따라 판매금지 결정을 이끌어내자 삼성전자도 다급해졌다. 급기야 지난 5일 아이폰4S가 발표되자마자 이탈리아와 프랑스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지만 이번 네덜란드 법원 기각 결정으로 사실상 무력화됐다.

애플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제기된 삼성 기술 특허 침해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프랜드 조항을 앞세워 방어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프랜드 조항으로 '표준 특허'가 무력화될 경우 애플을 위협할 만한 다른 카드 찾기가 쉽지 않다

반면 애플 역시 소송 과정에서 기술 특허는 거의 무력화됐지만 디자인 특허 주장이 판사들을 잘 먹혀들고 있다. 앞서 호주 연방법원은 지난 13일 독일 뒤셀도르프지방법원과 네덜란드 헤이그지방법원에 이어 갤럭시탭10.1 판매금지 결정을 내려 애플 손을 들어줬다. 삼성 제품 판매금지 결정을 유보한 루시 고 판사 역시 디자인 특허 유효성에 의문을 나타냈지만 법정에서 아이패드2와 갤럭시탭10.1을 직접 비교하며 외관이 비슷하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특허전쟁> 저자 "삼성, 백기 협상 위기"... 이재용, 팀 쿡 만나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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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애플 특허 소송을 다룬 <특허전쟁>을 쓴 정우성 변리사는 15일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machitori)에 "삼성이 의욕적으로 제기한 가처분신청에서 네덜란드 판사가 애플 손을 들어줬다"면서 "삼성은 애플의 유리함을 인정하고 백기 들고 협상하자는 플랜C로 몰리게 됐다"고 밝혔다.

정 변리사는 앞서 삼성의 애플 특허 소송 대응 전략을 '싸우는 시늉만 하고 어떻게든 빨리 합의하자는 전략'(플랜A), '더욱 공격적으로 싸우는 전략'(플랜B), '백기를 들고 협상하는 전략'(플랜C) 등으로 구분한 뒤 결국 삼성이 애플 요구를 받아들여 제품 디자인을 바꾸는 '플랜C'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더 공격적인 플랜B를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표준특허로는 안되는 게 이번 네덜란드 판결에서 입증되었다"면서 "애플을 상대로 치명적인 특허를 찾아 공격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수세에 몰린 삼성은 여전히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최지성 부회장은 "제1거래선으로 (애플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며 '분리된 대응'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팀 쿡 애플 CEO 초청으로 16일(현지시각)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리는 고 스티브 잡스 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사간 물밑 협상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태그:#삼성전자, #애플, #특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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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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