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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보리가 독사새끼를 만났습니다.
 야옹이 보리가 독사새끼를 만났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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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녀석이 집 마당에서 흙갈색 삼각형 머리의 독사를 만났습니다. 독사 새끼는 잔뜩 독이 올라 있습니다. 콩타작을 마친 자리에서 땅에 떨어진 콩을 줍다가 하마터면 이 녀석에게 물릴 뻔했습니다. 야옹이는 똬리를 틀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인 독사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야옹이는 아직 어립니다. 뱀을 난생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었습니다. 두 녀석들 표정으로 짐작컨대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겁니다.

야옹이: "너 누구여?"
독사 : "가까이 오지마 나 독사여."
야옹이 : "독사가 뭔디?

야옹이가 독사를 물끄러미 쳐바봅니다. 아마 녀석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겠지요. "너 뭐여?"  "나 독사"
 야옹이가 독사를 물끄러미 쳐바봅니다. 아마 녀석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겠지요. "너 뭐여?" "나 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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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도 채 안 된 야옹이 녀석의 이름은 '보리'입니다. 아주 어린 새끼고양이 때는 절에서 스님들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습니다. 조금 크자 절에서 지내기가 마땅치 않아 발포에서 김 공장을 운영하는 김유평 성님 댁에서 얼마간 지냈는데 여름 끝자락에 우리 집으로 입양 왔습니다. 공장에서 지내기가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보통 사나흘에서 일주일 정도 묶어 놓고 길을 들인 다음에 풀어 놓아야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보리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바로 풀어 놓았는데 적응을 아주 잘했습니다.

녀석은 처음 만나는 새 주인의 무릎 위에 턱하니 올라앉곤 했습니다. 집안에서 자랐던 버릇을 떨쳐내지 못한 모양입니다. 사람 가리지 않고 낯선 방문객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야옹 야옹" 거리며 애교를 떨었습니다.

우리는 동물들을 집안에서 키워 본 적이 없습니다. 애지중지 방안에서 품고 지내는 것보다 밖에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것이 동물들에게 더 좋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너른 마당, 밭고랑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개구리며 메뚜기, 땅강아지, 도마뱀, 두더지 등을 쫓아 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녀석에게는 낯설기만 한 독사를 만난 것입니다.

살모사 새끼를 본 고양이 보리, 결국...

보리 녀석이 기세등등한 살모사 새끼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보리 녀석이 기세등등한 살모사 새끼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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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만났던 녀석들은 자신을 보면 꽁지 빠지게 도망치기 일쑤였는데 이번 녀석은 오히려 위협적인 자세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 당돌한 녀석이었습니다. 보리 녀석이 기세등등한 살모사 새끼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잠시 딴 데를 봅니다. 뭔가 궁리하는 표정입니다.

야옹이 : "독사라구 했지? 가만 있자, 독사가 뭘까? 요걸 어떻게 할까?"

보리 녀석이 슬그머니 앞발을 내밀어 봅니다. 녀석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앞발질이 어설픕니다. 발길질이 어중간하게 멈춥니다. 독사 새끼는 미동도 않고 야옹이를 노려보고만 있습니다.

야옹이 : "어? 뭐시여? 요것 봐라 꼼짝도 않네."
독사 : "작다고 깐보다가 후회하게 될 겨."

카메라를 들고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저러다가 물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그냥 냅두기로 했습니다. 녀석은 앞으로 야생에서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 길쭉하고 독이 많은 독사들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장애물을 다 만나게 됩니다. 독사보다도 더 독이 많은 인간들도 만나게 됩니다.

야옹이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가 독사에게 앞발질을 하다가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본격적으로 발길질을 합니다.
 야옹이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가 독사에게 앞발질을 하다가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본격적으로 발길질을 합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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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질을 하던 야옹이 녀석이 발바닥을 핥아 댑니다. 따끔하게 물린 모양입니다.
 발길질을 하던 야옹이 녀석이 발바닥을 핥아 댑니다. 따끔하게 물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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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녀석이 꼼짝도 않고 있는 독사 녀석이 별 거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입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발길질을 합니다. 툭툭 건드려 봅니다. 독사도 만만치 않게 저항을 합니다. 눈 깜박할 사이였습니다. 카메라도 포착할 수 없었던 순간, 발길질을 하던 녀석이 갑자기 저만치 물러납니다. 그러고는 발바닥을 계속해서 핥아 댑니다. 따끔하게 물린 모양입니다.

"고양이도 어미한티 교육받아야 하는디 감당을 못하는 거 같구만, 그냥 놔둬서는 안 되겠네, 저놈한티 누군가가 물리지도 모르니까…."

나와 함께 보리와 독사를 지켜보던 김유평 성님이 독사를 제압합니다. 유평 성님은 고흥에 이사와 가깝게 지내는 이웃사촌입니다. 독사 녀석을 저만치 산으로 옮겨 놓을까? 죽여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을 김유평 성님이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아직 어린 새끼 독사이기에 불쌍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판단이라 여겼습니다. 독사는 사람과 마주쳐도 도망갈 생각하지 않고 고개 뻣뻣이 쳐들고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만 있으면 상관없는데 만약 독사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로 손이나 발을 내밀었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비포장 도로 한 가운데서 뻣뻣하게 버티고 있는 독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을철 독사는 독이 잔뜩 올라 있어 위험천만합니다. 잘못 물리면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합니다. 

독사에게 물린 왼쪽 발이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독사에게 물린 왼쪽 발이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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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야옹이 녀석의 발이 말끔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야옹이 녀석의 발이 말끔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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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독사에게 발길질을 했던 야옹이 녀석의 왼쪽 발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부어올랐습니다. 아내는 친구 박원희씨와 함께 응급처지를 해주면서 걱정을 합니다.

"어떻하지? 독이 퍼지면…."
"괜찮을 거여. 사람하고 달라서 동물들에게는 독에 대한 적응력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새끼 독사한티 물려서 독이 덜 할 거구."

다음날 아침, 보리 녀석의 발이 말끔하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내 발 멀쩡하지요?"라는 표정으로 부엌으로 들어서는 발판에 두 발을 턱하니 올려놓고 "야옹야옹" 밥 타령을 합니다. 퉁퉁 부은 발을 핥아대며 밤새 고생 좀 했는 모양입니다. 얼굴이 핼쑥해졌습니다.

죽은 새끼 독사가 떠올랐습니다. 죽임을 당한 독사 새끼를 생각하면 보리 녀석의 고생은 약과입니다. 나는 평소 삼라만상 모든 게 다 같은 소중한 생명인데, 어쩌구저쩌구 입을 함부로 놀려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사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죽여 버렸습니다. 비록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지만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김유평 성님이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였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리석게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독사처럼 독을 뿜어댔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독사처럼 독을 뿜어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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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글쓰기를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독오른 독사처럼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주위가 산만한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좋은 말로 경고를 했는데 오히려 그런 나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아닌 친구든 누구든 누군가를 무시하게 되면 너희들 자신도 무시당한다"며 버럭버럭 화를 냈던 것입니다. 

정작 꾸중을 들은 당사자는 멀쩡한데 엉뚱하게도 몇몇 여자 아이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글쓰기 선생의 화를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순수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눈물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화를 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물에 나 역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꾸역꾸역 참아 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을 무시한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너희들에게 어떤 경우든 화를 내면 안되는데 화 낸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자신에게 다짐을 놓고 있으면서도 결국 어리석게도 화를 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선생으로부터 빰때기는 물론이고 머리통에서 피가 줄줄 흐르도록 얻어맞아 가며 억압된 교육을 받아온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아이들을 억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업보를 비워내지 못하고 되려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끼독사가 또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 새끼독사보다도 더한 독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안의 독을 풀어 주었던 것입니다. 독사보다 더한 내 화 기운에 짓눌렸던 아이들은 눈물로 어리석은 나를 정화시켜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태그:#야옹이, #독사, #화기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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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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