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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인천 영흥도 화력발전소 인근 D룸살롱의 매출장부. 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직원들이 참석한 술자리는 색지로 표시했다.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인천 영흥도 화력발전소 인근 D룸살롱의 매출장부. 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직원들이 참석한 술자리는 색지로 표시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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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화력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관급공사뿐만 아니라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접대관행'은 여전하다. 이러한 공사현장의 접대는 주로 발주처와 협력업체(원청+하청업체), 원청과 하청업체 등의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지난 9월 27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공개한 3년치 영흥도 D룸살롱 매출장부는 그런 접대관행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오마이뉴스>의 보도 이후 인천경찰청은 영흥도 화력발전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접대관행을 수사하고 있다. 협력업체들로부터 수 년간 수십억 원의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남동발전(한전이 100%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 쪽은 장부에 등장하는 간부나 직원을 대상으로 내부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접대텍스트'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매출장부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어떤 장부?] 고객 명단과 2차 여부까지 세세하게 기록

영흥도 최초의 룸살롱에서 날마다 발생한 매출을 기록한 장부다. A4용지에 직접 줄을 그어 여섯 개의 칸을 만들고 '일일매출장부'로 사용했다. 각 칸에는 고객 이름과 양주 종류, 술값, T/C 등 매출내역, 여종업원 이름 등이 아주 세세하게 적혀 있다. 한 예로 공교롭게도 5·18민중항쟁 기념일이었던 2006년 5월 18일자 장부의 일부를 보자.

'B-R 현대 정○○ SK 남대리 W.D(17) 2 주대 : 500,000 T.C : 140,000 R.T : 30,000 은하, 태민'

이는 "B룸에 현대 정아무개씨와 SK 남대리가 와서 여종업원 은하와 태민을 데리고 윈저 17년산 2병을 마셨고, T.C 등을 합쳐 총 67만 원의 술값이 나왔다"는 것을 뜻한다. 장부를 보면 여종업원 이름에 동그라미를 친 경우가 많은데 이는 '2차'(성매매)를 나갔다는 표시다. 2차에 드는 비용은 1인당 25만 원이다. 전직 여종업원은 "그냥 술만 먹고 간 사람은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간혹 일일매출장부 제일 위쪽에 '운수대통'이라는 말을 적어놓은 것도 이채롭다.

가끔 매출장부에 '도시락'이라고 적힌 경우가 있다. '도시락'이란 룸살롱 여종업원이 술과 안주를 싸서 영흥도 발전소 사택이나 모텔에 가는 것을 가리키는 은어다. 전직 여종업원은 "한 달에 최소한 한두 번은 도시락 배달을 나갔고, 도시락 비용은 하청업체에서 댔다"고 주장했다.

[왜 장부 작성?] "파트너를 맞추어 주거나 월급 정산하기 위해"

종종 룸살롱의 고객 명단이 드러난 경우는 있었지만, 고객과 여종업원(접대부), 술값, 2차 여부 등이 한꺼번에 기록된 '3년치 장부'가 세상에 공개된 경우는 '영흥도 장부'가 유일하다. D룸살롱의 전직 동업자 K씨는 "장부에는 매상뿐만 아니라 아가씨들이 테이블(1차)만 뛰었는지, 2차까지 나갔는지 등을 기록했고, 카드나 현금, 외상 등 결제 유형도 적어두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사용한 카드 종류까지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경우도 있다.

특히 고객 이름과 소속이 정확하게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객들이 술집을 자주 찾았다는 하나의 증거다. 영흥도 장부는 이처럼 지나치게 세세해서 위험해 보인다. 장부 때문에 불법 성매매, 세금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위험한 장부'를 작성한 것일까? K씨의 설명은 이렇다.

"다음에 왔을 때 손님들의 파트너를 맞추어 주거나, 아가씨가 테이블만 뛰었는지 2차까지 나갔는지도 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 아가씨들에게 월급을 정산하기 위해서 손님과 아가씨 이름을 모두 적는다."

D룸살롱 전직 동업자인 K씨가 '도시락 지불증'이라고 주장한 자료. '52만원'에는 '2차비'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D룸살롱 전직 동업자인 K씨가 '도시락 지불증'이라고 주장한 자료. '52만원'에는 '2차비'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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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나?] 남동발전-협력업체가 주고객... 파출소 관계자도 등장

섬마을인 영흥도는 다리가 놓여져 육지와 연결됐지만 발전소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여느 어촌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화력발전소 공사가 시작되면서 영흥도에도 룸살롱이 생기는 등 '변화'가 생겨났다. '영흥도 최초의 룸살롱'인 D룸살롱을 드나든 주요 고객은 발주처인 한국남동발전과 협력업체였다.

하지만 장부에는 이들 외에 흥미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룸살롱과 거리가 멀 것 같은 파출소 관계자와 노조 간부가 고객명단에 포함돼 있는 것. 먼저 2007년 12월 28일자 장부에는 '김과장, 김◯◯, 제일 ◯사장, 파출소 외 3명'이라고 적혀 있다. 총 7명이 술자리에 어울렸고 338만 원의 술값을 계산했다.

결제유형은 '외상'으로 적혀 있고, 7명의 여종업원 중 4명이 '2차'를 나간 것으로 표시돼 있다. '김과장'은 한국남동발전의 간부이고, '스폰서'로 알려진 김아무개씨는 영흥도에서 한 업체를 운영하는 '지역유지'다. 다른 장부에는 파출소 관계자와 우체국 관계자도 등장한다. 한국남동발전의 한 간부는 "김씨가 낼 때도 있지만 기관장들이 돌아가면서 술값을 낸다"고 말했다.

연도가 명시되지 않은 한 장부에는 '항운노조 이○○'가  혼자 와서 현금으로 55만 원을 썼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55만 원은 2차비(25만 원)가 포함된 금액이다. 이아무개씨는 영흥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노조 간부 출신이다. 이씨는 장부에 몇 차례 등장하는 인물이다. 

또한 평범한 마을 주민들도 이곳을 드나들었다. 인근 마트 주인, 철물점 주인 등이 다녀간 것으로 매출장부는 기록하고 있다. 어떤 장부에는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냥 '노인네'라고 적혀 있어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밖에도 '이발소', '노래방', '농협', '정육점', 'OO의원' 등 여러 동네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국남동발전과 협력업체들이 접대장소로 이용한 영흥도의 D룸살롱.
 한국남동발전과 협력업체들이 접대장소로 이용한 영흥도의 D룸살롱.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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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동발전 S과장은 룸살롱 '마니아'? 

영흥도 D룸살롱을 드나든 한국남동발전 직원 가운데 S과장은 특히 '룸살롱 마니아'라고 불릴 만하다. 접대 술자리로 의심되는 102건의 술자리 가운데 22건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하청업체와 술자리를 해온 것.

장부에 기록된 22건 가운데 16번이나 2차를 나갔으니 룸살롱에 일하는 웬만한 여성들과 모두 성매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9월에는 한 달에 4번이나 룸살롱을 찾았다. 혼자 2회, 다른 사람과 함께 온 게 2회다. 10월에만 300만 원 이상의 '술값+2차비'가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하청업체의 접대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말한 것처럼 S과장은 혼자 룸살롱을 찾기도 했다. 장부에 나온 것만 5번이다. 그는 혼자 룸살롱에 와서 양주를 1~2병 마시고 대부분 2차를 나갔다. 그리고 계산은 외상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돈을 냈을까? 그의 가장 충실한 파트너는 하청업체 D시스템의 ◯부장이다. 그는 장부 기록상으로만 S과장과 8번 룸살롱을 찾았다. 과연 그 많은 술값을 누가 냈을까?

◯부장에게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D시스템에 연락을 했지만 그는 이미 회사를 옮긴 뒤였다. D시스템 쪽은 "부장님이 그런 곳을 좋아하기는 했는데, 회사 돈으로 그걸 결제해준 적은 없다"며 "가끔 술을 마시고 청구를 하기는 했으나 10만 원이 넘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룸살롱 마니아' S과장도 처음에는 "D룸살롱을 모른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기자가 매출장부를 언급하자 "3~4번 간 적은 있지만 계산은 내 돈으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남동발전의 한 관계자는 "S과장이 나이도 있고 점잖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흥도 D룸살롱의 2007년 월 매출액. 평균 월 매출액이 4376만원에 이른다.
 영흥도 D룸살롱의 2007년 월 매출액. 평균 월 매출액이 4376만원에 이른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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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의 연매출?] 월 평균 매출 5875만원, 9년간 46억 이상 추정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D룸살롱 매출장부는 2006년 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3년에 걸쳐 총 24개월 동안 작성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보관된 것은 2007년치 장부다.  이 장부를 살펴보면 D룸살롱은 최소 월 2795만 원에서 최대 월 5857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월 평균 매출액은 4376만 원에 이른다. 전직 동업자 K씨는 "매출이 월 1억 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국남동발전의 한 관계자도 "초기에는 D룸살롱 독점체제여서 장사가 아주 잘됐다"고 말했다. 

2007년치 장부에서 나온 '월 평균 매출액'(4376만 원)을 적용해 D룸살롱 연간 매출액을 추산하면 약 5억2000만 원에 이른다. 9년간 영업했다는 점을 헤아리면 D룸살롱은 수년간 46억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게다가 영흥도에는 D룸살롱 외에도 두 곳의 룸살롱이 더 있어서 영흥도 룸살롱의 전체 매출액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그에 상응하는 거액의 접대비가 사용됐음을 뜻한다.

[접대구조는?] '접대사회'에서 죽어나는 곳은 하청업체

영흥도 D룸살롱 접대구조도
 영흥도 D룸살롱 접대구조도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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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룸살롱을 두고 벌어진 접대에는 발주처인 한국남동발전과 협력업체가 복잡하게 엉켜 있다. D룸살롱의 매출장부에는 한국남동발전과 함께 S건설, H건설, D건설, D중공업 등 4개 대기업 건설사가 등장한다. 그 밑으로 전기, 배관, 운송, 용접, 기계 등의 분야에 D중기계, S건설전기, D시스템, S토건 같은 19개 하청업체들이 있다.

수년간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접대는 크게 '대기업 건설사→ 한국남동발전', '하청업체→ 대기업', '하청업체→ 한국남동발전', '대기업 건설사+하청업체→ 한국남동발전'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술자리에는 보통 2~4명의 사람이 참석했고, 대부분 성매매를 뜻하는 '2차'를 나갔다. 술값과 2차비를 포함해 평균적으로 135만 원이 나왔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대기업 건설사 S건설은 한국남동발전과 3번의 술자리에 600여만 원을 썼고, D건설도 3번의 술자리에 400여만 원을 썼다. 발주처와 가장 많이 술자리를 한 대기업은 H건설로 11번의 술자리가 있었고 1300만 원 가량을 썼다. D중공업은 2번의 술자리에 그쳐 가장 적은 횟수를 기록했다. 이는 예상보다 많지 않은 숫자다. "대기업이 발전소를 접대하는 게 아니다"라는 룸살롱 여종업의 증언과도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접대가 숙명인 사회'에서 죽어나는 곳은 하청업체들이었던 것.  

우선 대부분의 하청업체들이 접대자리로 보이는 원청 대기업 인사와 여러 차례 술자리를 했다. 원청 S건설은 D중기계, S건설전기 등의 하청업체와 6번의 술자리가 있었다. D중기는 대기업 H건설과도 3번의 술자리가, D중공업과도 한 번이 있었다.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하청업체와 술을 마신 곳 역시 H건설이다. H건설은 장부상 총 9개의 하청업체와 23번의 술자리가 있었다. 3000만 원에 가까운 돈이 지출됐고, 하청업체 S중공업과 총 10회로 원청과 가장 많은 술자리가 있었다.

하청업체들은 사업 발주처이자 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접대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가장 많은 술자리에 참석한 하청업체는 D시스템이다. 특히 이곳의 C부장은 무려 33번이나 룸살롱을 찾아 3600만 가량을 원을 썼다. 그 가운데 한국남동발전 S과장과 함께 한 술자리가 8번 이상이다. 장부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매번 2~3명의 사람과 함께 룸살롱을 찾은 것을 보면 접대 횟수는 그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한국남동발전은 총 8개 하청업체와 술자리를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발주처와 원청 또는 원청-하청 사이가 아닌 관계에서도 상당한 횟수의 술자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원청업체 대기업 S건설의 K과장과 H건설의 J과장은 장부상 최대 출석률을 자랑한다. 이들은 장부에 기록된 24개월 동안만 무려 49번 D룸살롱을 찾았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이 함께 온 것만 해도 23회에 이른다. 술값으로만 5000만 원 가까운 돈을 썼다. 룸살롱에 거의 모든 여성 종업원들이 이들과 2차를 나갔다. '룸살롱 절친'이라고 할 만하다.

한편 장부상으로는 '하청의 하청' 관계까지는 파악할 수는 없지만 먹이사슬 구조상 하청기업 간에도 접대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영흥도에만 있는 접대?] 건설경기 침체돼 강남술집 피한다

수조원이 투입된 영흥도 화력발전소 1·2·3·4호기.
 수조원이 투입된 영흥도 화력발전소 1·2·3·4호기.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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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첫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발주처와 협력업체 사이의 접대가 영흥도 화력발전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하청업체에서 근무한다는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보도내용은) 실체적 진실과 맞고, 거기뿐만 아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통렬한 고백'을 보내왔다. 그의 고백은 공사현장 접대관행에 관한 '폭로'에 가까웠다.

"골프접대, 룸살롱접대는 현장당 연 2회가 기본이고, 명절과 휴가 때엔 별도로 현금을 요구한다. (발주처 등은) 봉급도 많고, 복리후생도 좋고, 대학학자금도 주는데도…. 하청업체는 보통 임원이 접대하는데 하청업체 임원 보수가 월 300-400만원이에요. (접대에 들어가는) 모든 돈은 하청업체 법인카드로 결제한다. 서초동, 강남 밤문화를 한번 잠행해보라. 80% 정도 건설사 관련 하청업체가 카드로 (술값을) 결제한다.

1차 저녁식사(소주) 후 2차 룸(살롱)으로 이동한다. 양주+가요반주+팁에다 모텔 접대 봉사료(2차비)까지 (결제)해야 '접대했구나' 한다. (발주처 등을) 대감님이라 부른다. 밤 접대가 없으면 하청업체는 더 힘들다. 100% 기준(발주처)→ 건설사 45% 현장실행 → 하청업체 40~45% 낙찰. 즉 정부 노임 100% 기준으로 보면 (하청업체는 그것의) 10%로 일한다. 동반성장과 청렴이행결의, 다 무용지물이다. 골프접대나 밤문화접대도 호황일 때 가능하지 요즘처럼 건설경기가 침체되면 서초나 강남 술집 사양한다. (술집에서) 하루 5-7통 스팸문자 온다. 절제한다. 피한다. 더러워 도망간다."


태그:#영흥도, #한국남동발전, #화력발전소, #매출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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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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