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됐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올해 초부터 진실위 전직 조사관들은 '조사관 백서'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 연재물은 '조서관 백서' 작업의 마무리의 일환으로 준비됐습니다. 공식 보고서의 딱딱함을 벗어나 진실의 조각들을 알기 쉽게 풀어나갈 것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 이스트필름

관련사진보기


고문은 피고인의 자백을 확보하기 위해서, 상호 모순되는 진술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범을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일종의 형이상학적이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피고인의 오명을 제거하기 위해서, 혹은 여죄를 발견하기 위해서 행해진다.

고문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서구에서는 11세기 이후 종교재판의 영향으로 일반 법정으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근대 들어 몽테스키외 등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고문에 대한 탄핵이 확산됐고, 고전범죄학이론가 체자레 베카리아에 의해 고문의 논리적 근거가 논박됐다.

고문하면 다 분다? 빈약한 고문의 논리적 근거

베카리아에 의하면, 범죄사실이 확실하다면 범죄자의 자백이 필요없기 때문에 고문은 쓸 데 없다. 반대로 범죄사실이 불확실하다면 범죄사실이 입증되기 전에는 무고한 자로 간주되므로 고문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 때로 진상을 발견하기 위해 고문한다고 하지만, 바로 그 수단 때문에 범죄자와 무고한 자의 차이점이 사라진다.

고문은 건장한 악당을 면책시키고, 허약자, 결백자에게 유죄의 형을 선고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무고하든 범죄를 저지르든 간에 억세고 용기있는 자는 혐의를 벗게 되고, 나약하고 겁많은 자는 유죄의 형이 선고될 것이다. 나아가 격심한 고통은 대다수 인간의 표정을 통해 드러날 모든 표지를 왜곡시켜 진위를 구별해낼 미세한 차이점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고문을 통해 상호 모순된 진술의 해결이나 공범을 알아낸다는 것도 허구에 불과하게 된다. 고대 로마에서조차 고문은 노예를 제외하고는 사용이 인정되지 않았다.(참고: 체자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결국 고문이 진실의 수단이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기껏 고문 가해자들의 사후 정당화논리에 불과하다. 이 글은 불과 수십 년 전, 혹은 현재일지도 모르는, 권위주의 시대 국가체제의 심장부를 들여다본다. 통제받지 않는 정부, 법치하지 않는 권력의 칼끝은 항상 가장 평범한 시민을 향해 있었다.

70일간 불법구금... 안기부와 검찰·경찰·법원 모두 한통속

형사소송법상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체포한 후 48시간 이내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법 원칙은 '간첩사건'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법원조차 그러했다.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 사건 조사과정에서 당시 수사관들은 고문가해 의혹을 대부분 부인했지만 신청인과 참고인들의 피해 주장은 구체적이고 일관됐다.

일본 관련 간첩조작사건의 수사기관은 주로 중정(중앙정보부)과 보안사였고, 일부 경찰이 담당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불법구금 일수는 최하 6일부터 70여 일에 이르렀다.

진실위는 당시 체포·연행이 임의동행 형식이었다 하더라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었다는 점과 구금된 장소로 봤을 때 '체포'로 보아야 하고, 당시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긴급체포 후 48시간 내 영장을 발부받아야 했기 때문에 48시간을 초과해 발부된 영장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수사관들도 영장 없이 48시간을 초과해 구금한 행위가 위법이라는 점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주석 사건을 조사한 당시 안기부 수사관들은 피의자 장기구금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오주석을 연행한 안기부 수사관 이○○는 "연행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주석을 춘천에서 연행해 장기 구금한 것 같다"며 "장기 구금은 우리가 반성할 일이다. 중간에 귀가시키거나 하면 증거를 없앨 수 있어 장기간 구금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안기부 수사관 이○○도  "50여 일 동안 안기부에 구금한 것은 당시 수사관행상 어쩔 수 없는 일"로 "이는 검찰이나 법정에서도 용인된 부분"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다른 공동피의자들도 비슷한 기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안기부 수사관 박○○는 "자백을 받을 때까지 장기 불법구금했다"며 "간첩사건의 경우 순순히 자백하는 경우가 없고 조총련 사건은 증거도 빈약해 추궁하여 자백을 받으려고 장기 구금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사기관의 장기 불법구금에 대해 검찰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 수사관 김○○는 "사건 수사 초기에 검찰과 협의했고 수사를 진행하면서도 상의했다"고 진술했다. 안기부 수사관 우○○도 "피의자를 연행해 왔을 때 검찰에 연락한다", "직접 가기도 하고 검사가 부 내로 오기도 해 사건에 대해 협의를 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검찰도 송치 이전에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의 불법구금 사실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수사기록을 검토한 법원 역시 피의자들의 장기 불법구금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불법구금 기간 동안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의 밀폐된 조사실에 갇혀 생활했다. 가족이나 변호인 등의 접견은 불허돼 최소한의 법률적 도움이나 자기방어가 불가능했다. 불법구금은 피조사자로 하여금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다는 좌절감과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차단됐다는 고립감을 심어준다. 이 좌절과 고립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자신이 간첩혐의를 받고 있고, 중정이나 보안사와 같은 기관에서 고문 등이 가해진다는 말을 들었거나 암시를 받은 상태라면 피조사자는 이미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황에서 피조사자는 쉽게 수사관들이 요구하는 질문에 순응하는 답변을 하게 된다. 심지어 불법구금 기간이 길어지면서 피조사자가 수사관의 요구를 미리 간파하고 자신이 허위 자백한 내용의 미비점을 스스로 메꾸어 가기도 한다. 이는 마치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학살장소로 끌려가던 청년이 자신의 손목을 묶은 밧줄이 헐거워졌다고 감시 군인에게 고쳐 매줄 것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상황에서 피조사자의 목적은 오로지 현재의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없어진다.

수사관들의 변명 "다른 사람들은 했지만... 난 고문 안 했다"

피해자 유OO 작성
▲ 보안사 수사분실의 엘리베이터식 의자 고문기구 피해자 유OO 작성
ⓒ 진실위 조사관 백서 준비모임

관련사진보기


피해자 조OO 작성
▲ 엘리베이터식 의자 고문기구 피해자 조OO 작성
ⓒ 진실위 조사관 백서 준비모임

관련사진보기


고문피해 유형은 대부분 비슷했다. 몽둥이를 이용한 신체 구타, 협박, 욕설이 일반적이고,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자주 사용됐다(구체적인 고문피해사례는 피해자들의 진술을 그대로 인용해서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보안사의 경우, 특수 고문도구인 '엘리베이터식 의자'가 조사실에 설치돼 재일동포 모국유학생 수사에 빈번하게 사용됐다. 이 독특한 고문 도구는 아직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강종헌 사건을 수사한 보안사의 수사관 손OO은 "보안사 서빙고분실에는 엘리베이터실이 있었다. 거기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의자가 있어, 의자가 캄캄한 지하로 내려가면 공포심이 들게 했다"고 말했다. 또 "보안사 지하실은 옆방에서 나는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구조였다. 때문에 일부러 비명소리를 내서 겁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관들은 고문가해 여부에 대해 대체로 부인하고 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당시 수사에 참여한 수사관, 가해자, 제보자들은 사건에 대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업무 범위가 아니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말할 수 없다'는 등 부인진술이 많았다. 

오주석 사건을 수사한 안기부 박OO 수사관은 "처음 자술서를 작성하게 하려고 녹취를 할 때는 며칠씩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를 하기도 하지만 가혹행위나 고문은 절대 없다"고 진술했다. 반면 심OO 수사관은 "나는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없다. 하지만 수사관마다 성격과 수사 요령이 달라서 뺨을 때리거나 한 수사관이 있다"고 가혹행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보안사 공작과장 최OO은 "겁도 주고 회유를 하거나 윽박을 질러서 자백을 받는데, 수사관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면서 "손가락꺾기 같은 것은 특별히 장비가 없이 할 수 있는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본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칠성판에서 물고문"... 동료 수사관도 "난 못 보겠어"

반면 일부 수사관들은 고문 가해를 인정하기도 했다.

"처음에야 부인하지만 받아내는 방법이 있다. 나 같으면 그런 경우는 절대로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진술을 받아 낸다. 지난 번 의문사위원회에서 나에게 '고문 안 하느냐'고 물어봐서 '고문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잠을 안 재우고 하는 방법도 고문이다. 몰지각하게 때리고 하는 고문은 안 한다'는 답변도 했다. 수사기관에서 고문 안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피의자가 자백을 하긴 했는데 뭔가 더 있다는 것을 알 때 (고문을) 한다. 고문도 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물고문도 눕혀서 하는 사람이 있고, 의자에 앉혀놓고 하는 사람이 있고, 뭐 정말 후려 패거나 물에 쳐 박는 수사관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패는 시늉만 하지 진짜 패지는 않았고, 의자에 앉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수건을 코와 입에 덮은 후 주전자로 물을 한두 번 이마에 부어서 겁만 주는 정도만 했다. 만약 입에 물을 부으면 숨을 못 쉬게 되므로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 이성희 사건을 수사한 중정의 수사관 차OO의 증언 

같은 중정 수사관 장○○도 "매에는 장사 없다. 아무리 말 안하고 있다가도 때리고 나면 다들 예, 예하며 고분고분해진다. 그러면 그것을 범죄사실로 확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정 수사관 김○○은 "본인은 수사에 참여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당시 그것(구타)은 수사절차상의 당연한 행위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피의자들의 변명일 뿐이다. 자백을 유도하기 위한 물리적 행위는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순순히 자백을 하게 되고, 증인이나 참고인 조사도 원활히 진행되는 법이다. 잠 안 재우기, 벽보고 세워놓기, 밥 안주기 등은 통상적인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검찰 조사 시 중정직원이 입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의자가 조서작성을 거부하는 경우 등에 대비한 검찰조사의 보조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산분실 조사실 내의 군용침대 존재와 침대에서 막대기를 뺄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군용침대가 있었고, 침대 옆에 끼워진 막대기를 뺄 수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1980년 그 시절은 간첩 사건하면 대단히 중한 사건으로 취급되던 때였다. 당시엔 강압수사가 관례화되어 있었다. 간첩사건 피의자들이 조사실에 들어오면 몽둥이 찜질은 기본이었고, 그 외에도 물고문, 통닭구이 등도 했다. 수사에 참여한 모든 수사관들이 몽둥이 구타 등 강압수사를 했다.

나는 피의자신문시에 비교적 피의자의 감정을 움직여 수사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주로 구사했기에 폭력을 쓴다든가 하는 적은 별로 없었는데도, 몽둥이로 신귀영 등 피의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수건을 얼굴에 덮고 주전자로 물을 뿌리는 물고문도 했던 것 같으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전기고문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 신귀영 사건을 수사한 당시 부산시경 경찰관 김○○

오주석 사건의 공동피고인 김OO은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인근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진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주치의 OOO(현 OO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의사)는 "안기부 수사관들이 간첩 혐의가 있다는 김○○를 병원으로 데려와 진찰 및 입원을 시켰다. 당시 김○○는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의 전환장애 증상이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치료상 심층 인터뷰가 필요한데 윗선에서 너무 깊숙이 인터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소견서에 고혈압이나 다발성치핵이 있는 걸로 보아 다른 과 검진도 받은 거 같다"고 진술했다.

이장형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이OO는 "그때 최OO이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문을 탁 차고 들어오면서 '형님, 난 저거 못 보겠어'라며 이OO이 고문하는 것에 대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그 방엔 이OO이 들어갔고 최OO, 최OO, 이OO가 여럿이 함께 들어갔다. 칠성판에 올려놔서 묶어놔도 물고문을 하면 버둥거린다고, 그러면 그걸 잡아주거나 물을 떠다주거나 했다"고 진술했다.

고문치유센터 건립이 절실한 이유

2004년 12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주최로 국회도서관 지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고문·용공조작 피해자 1차 증언대회' 모습.
 2004년 12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주최로 국회도서관 지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고문·용공조작 피해자 1차 증언대회' 모습.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진실위 조사 결과, 권위주의 정권시대 수사기관들은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을 사실상 강제연행한 다음,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수일에서 수십 일 동안 변호인 및 가족들의 접견이 차단된 채 고립된 불법감금 상태에서 피해자들에게 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 자백을 받아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기관)의 인권유린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위 불법구금은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에, 위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의 폭행가혹행위죄에 각 해당하고, 형사소송법 제420조제7호, 제420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또 수사기관에서의 극심한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피해자들이 자백한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 또한 자백 내용을 피의자신문조서로 작성하는 형식적인 수사절차만을 거친 채 법원에 기소했다. 이는 검찰 스스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공익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직무를 저버린 처사다.

법원도 피해자들이 장기간 불법감금과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 자백이며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호소하고, 공소사실 중 객관적 사실과 명백히 모순되는 부분이 있었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이외에 물증이 없어 허위 조작의 개연성이 높은데도 별다른 보강증거도 없이 증거재판주의에 반해 피해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했고, 상소를 기각하는 위법을 범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들의 고통은 수사기관과 구금시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출소 후에도 각종 신체적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냈다. 또 가족마저 해체되거나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회적 고립상태에 장기간 놓여 있었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피해복구의 노력은 당연하고도 절실하다. 국가 차원의 고문치유센터의 건립을 통해 적극적인 치료대책을 세워야 하고 고문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사, 감시기구 설립을 통해 고문근절을 위한 근본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태그:#진실위, #간첩 조작, #고문
댓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직 조사관들의 백서 준비 모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