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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때 영화제 때 남포동에서 영화인들이 표현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회 때 영화제 때 남포동에서 영화인들이 표현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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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6회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깊은 인상으로 남게 된 것은 1997년 2회 영화제 때부터였다. 2회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에 있어서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정치적 독립성을 확고히 다진 시기로 평가된다.

당시 김동호 위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개막식을 찾은 김대중 후보에게 인사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영화제가 정치인들의 홍보장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용관 당시 한국영화프로그래머(현 위원장) 역시 이를 바탕으로 대선후보 홀대에 항의하던 야당 국회의원들과의 멱살잡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석근 당시 사무국장(현 부산영상위 운영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주말 남포동에 나타나 야외무대에 오르려던 이회창 후보를 단상 앞에서 육탄으로 저지하며 끝까지 막아내, 부산영화제의 전설이 됐다.

영화제의 중심인 남포동에서 벌어진 영화인들의 시위에 대한 대응도 특별했다. 당시 영화인들은 영화제라는 공간을 활용해 검열 철폐와 표현자유 인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심의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예술 작품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가위질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이었다.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이 존재해 표현의 자유가 제약 당한던 시기였다. 

영화인들이 남포동을 휘젓고 다니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즈음 어디선가 경찰 책임자가 나타났고, 그는 시위대를 향해 즉각적인 해산을 요구했다. 10분 안에 자진해산하지 않으면 강제 해산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주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자칫 국제영화제 행사장이 경찰의 강제해산작전으로 큰 소동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용관 프로그래머가 현장에 급하게 등장해 경찰 책임자에게 항의했다. "이것은 영화제 부대행사인 야외무대 행사와 똑같은 행사고 영화제의 일부분이다. 경찰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며 경찰이 개입하지 말 것을 단호히 요구했다. 경찰 책임자는 불법시위라고 엄단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경찰은 개입할 수 없었다. 영화제 핵심 관계자가 결기를 세우니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인들의 시위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후 마무리됐다. 영화제 초창기, 영화제가 이런 것이었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주 인상 깊은 풍경이었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닌 어처구니없는 현실 상황

가택 연금 중인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삶을 다룬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제목은  현실속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택 연금 중인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삶을 다룬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 제목은 현실속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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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되는 영화가 몇 편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와 모즈타바 미르타마스브의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다. 7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 작품은 정치적 이유로 가택연금 상태에 들어간 이란 영화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삶과 열망을 담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는 이란의 대표적 감독 중 하나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그의 반정부 활동을 이유로 지난해 징역 6년 선고, 20년 동안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내린 뒤 가택 연금했다. 6년간 인터뷰 금지와 연출 금지도 처분도 내려졌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자신이 찍고자 했던 신작에 대해 장면 하나하나를 설명한다. 언제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신작의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영화'라고 할 수 없기에,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나왔다. 이 제목에는 '이 현실이 차라리 영화라면 좋겠다'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바람이 들어 있기도 하다.

김 프로그래머는 "역설적이지만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만하고, 그래서 가슴이 짠해져 온다"면서 "지난 9월에는 6명의 영화인이 체포됐는데 이 영화를 자파르 파나히와 함께 연출했던 모즈타바 미르타마스브도 그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장편영화에 대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단편영화 여러 편을 만들어 이어 붙여 장편 분량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어 눈물이 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세계 영화인들은 지난 칸영화제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12월 탄원지지 성명을 내고 동참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를 상영작에 목록에 올려 통해 이란의 상황을 알리면서 이란 영화인들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영화 속에서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실제 상황을 영화제를 통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훼방꾼은 조남호와 이명박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인 오는 8일 출발 예정인 5차 희망버스 웹자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인 오는 8일 출발 예정인 5차 희망버스 웹자보
ⓒ 희망버스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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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5차 희망버스가 영화제 기간과 겹치자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연일 영화제 행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희망버스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겉으로는 영화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희망버스를 막기 위한 단순한 핑계 거리에 불과해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그런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한 전례가 없다"며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무 관계자들은 "부산시와 시의회 등을 비롯한 관변단체들이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면서 영화제가 어느 정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자칫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지침이 스태프들에게 내려진 것으로도 알려졌다. 예전 '좌파' 공격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인 듯 부산영화제 측이 예민한 정치 사회적 사안에 대해 조심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려는 것 같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29일 발표한 성명에서 "희망의 버스를 함께 타는 많은 시민들과 영화 문화 예술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 개최를 누구보다 응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2003년 칸영화제에서 공연예술노조의 파업과 2005년 칸영화제에서의 경찰들의 파업으로 칸영화제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는 보도를 아직 접해보질 못했다. 오히려 2008년 미국 작가노조와 배우노조의 파업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갔지만 아카데미의 권위는 여전하다"며 영화제를 핑계로 대는 보수진영의 논리를 반박했다.

기획단은 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부산 영도에서 267일째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고 덮는 것이 영화제의 성공적 개최일 수 없다"며 "재벌의 사병인 용역깡패가 백주대낮에 폭력으로 활보하고 공권력이 물대포와 진압으로 일삼는 것이 이미지 실추의 본질"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진정한 훼방꾼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지만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지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지지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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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제를 핑계로 대는 보수진영의 희망버스 반대 논리를 보면 영화와 영화제의 성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무지함이 드러난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는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잼다큐강정>이 상영된다. 김진숙의 농성은 독립영화인들에 의해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 자파르 파나히처럼 억압적 현실에 맞서고 있는 현장을 영상으로 전하기 위함이다.

영화인들은 영화를 통해 정치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한다. 영화제는 그런 감독들이 관객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자리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해방구라고도 불린다. 아쉽게도(?) 그 내면은 보수진영의 생각하는 단순한 축제와는 큰 차이가 난다.

한 여성이 크레인 위에서 벌이고 있는 농성이 300일에 가까워져 오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의 기미는 요원하다. 지성과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단순한 방관자로 있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영화제가 핑계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자파르 파나히의 작품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태그:#부산국제영화제, #희망버스,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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