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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도가니`가 개봉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영화 속 사건에 대한 재조사 서명운동이 일어나는 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27일 포항의 한 극장을 찾은 손님의 모습.
▲ 도가니를 찾은 관객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도가니`가 개봉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영화 속 사건에 대한 재조사 서명운동이 일어나는 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27일 포항의 한 극장을 찾은 손님의 모습.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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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상을 벗어나는 이 현실을 아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 아직도 성폭행당한 제자를 위해 눈물 흘리며 싸우는 포항의 김태선 선생님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 공지영의 장편소설 <도가니> 작가의 말 중

소설 <도가니>가 영화로 만들어져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청각장애아들이 참혹한 성폭행에 희생되는 이야기다. 보는 이 드물 것 같던 이 심각한 영화에 관객이 차고 넘친다. 개봉 닷새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덩달아 분노가 전국에 끓어 넘친다. 포항의 한 관객은 "영화 제목을 왜 도가니로 지었는지 알 것 같다"며 "범인을 잡아도 공포와 분노의 도가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영화를 본 최교영(41)씨는 "평생 거대한 기득권의 세계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차라리 실화가 아닌 픽션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사건의 재조사와 철저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인터넷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이미 4만명이 참가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지를 관할하는 광주시교육청도 뒤늦게 "사건에 대해 재진단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도가니'가 뭔가. 사전적 의미는 (1)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2)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제 정말 국민들이 끓어 넘치기 시작한 듯하다.

은지사건 단념했던 일 후회하는 김태선 교사

이 도가니는 앞서 작가의 말에서도 봤듯, 포항과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도 2008년 비슷한 사건이 불거졌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일명 '은지 사건'. 은지(가명·현재 14살)라는 여자 어린이가 2006년부터 약 2년간 동네 남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 당한 사건이다.

당시 은지는 아버지를 잃은 후 지적 장애를 가진 어머니·남동생과 포항의 외딴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 동네 아저씨와 5, 6명의 중·고생들에 의해 성폭행 당했다. 한 40대 버스 운전기사는 은지는 물론 은지 어머니까지 성폭행했다.

공지영 작가가 감사를 표한 김태선 교사는 그때 은지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사건을 알게 된 그는 온갖 어려움을 감당하며 백방으로 뛰었다. 반응이 미약하자 2009년엔 인터넷에 사건을 올려 대책을 호소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벽은 너무 높았다. 지난 27일 기자와 만난 김태선 교사는 "국정감사가 오히려 내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과 고위 교육행정가들은 본질을 보지 않으려 했고 현장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그 피해자를 보호하며 유해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필요한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는 성폭력 관련 법에 나오는 조문을 보면 "쓴웃음만 나온다"고도 했다. 그 문구를 인용해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움직여보려 했던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고도 했다.

김 교사는 지금도 포항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는 "아이들에게 길에서 돈을 주우면 경찰서에 갖다줘야하고, 여자가 길에서 벌거벗고 있어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김 교사는 영화 <도가니>가 성폭력 아동을 구제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 마련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그러면서 기득권자들과 맞서는 게 어리석인 일이라고 판단해 은지사건을 단념했던 지난 일을 너무도 가슴 아파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포항, #도가니, #은지사건, #아동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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