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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3일간 SBS 생방송투데이의 목요일 코너인 '윤PD가 만난 수상한 사람'이라는 다큐를 찍었습니다. 제작팀에서 저와 가족의 과거 사진을 찾아주길 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낯선 모습의 우리 가족 과거를 만났습니다. 바로 어제 같은 그 과거의 사진 속에서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저와 저희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윤PD께서 저와 처를 앉혀두고 자꾸 말을 시켰어요. 아마 방송에서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니 놓아주지 않았겠지요.

 

지난 수십 년간 처에게 '미래의 언젠가 힘들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 여행하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혼자 세계를 떠돌았으니 이제 그 약속을 언제쯤 실행할 것인지를 처에게 방송 카메라 앞에서 약속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 십수년간 처에게 남발한 '힘들고 위험하고 못 먹는 여행은 나 혼자 하고 나중에 당신을 크루즈여행으로 모시겠다'는 언약을 어길 생각은 추호가 없습니다만 그 때가 언제일지는 여전히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PD의 질문을 받고도 여전히 막연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나의 어릴적 습성이 맛있는 것이 생기면 늘 나중에 먹을 요량으로 뒤로 미루었다. 그래서 오늘은 늘 곧 상할 것 같은 시효가 다된 것들이나 맛이 덜한 것들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내일은 또다시 오늘이고 오늘 또다시 '꼭 하고 싶은 것, 행복한 것'은 내일로 유보하고 오늘은 항상 고된 노동을 바치는 일을 우선시했다. 이제 나도 처와 함께 내일이 아닌 오늘 '행복한 것'을 해보고 싶다."

 

어찌된 일인지 아들, 영대가 저를 닮은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받는 용돈조차도 쓰질 않습니다. 심지어 끼니를 굶기도 합니다. 끼니까지 거르는 것이 안타까워 절박하게 목돈이 필요한지를 물으면 그렇게 모은 돈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돈을 쓴 사람은 결국 누나들이었습니다. 빌려달라는 누나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빌려주고 아직까지 되돌려 받지 못한 돈이 몇 십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영대는 끼니를 유보하고 모은 돈을 누나들에게 바치는 일을 여전히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제 교환학생으로 프랑스로 나가는 둘째딸 주리를 만나기 위해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이 왔습니다. 이제 대학교 졸업반이 된 그들의 수다 중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메일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때 주고받은 메일이 남아있더라.  십년도 더 된 그 메일을 다시 읽으니 기분이 묘하더라."

 

딸의 세대는 누런 편지지 대신 이메일 박스 속에서 과거를 끄집어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빗겨갈 수 없는 것이 세월입니다. 분명히 매순간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흐르는 것이 세월임에도 그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 손에 쥐어볼 수도 없는 것이니 그 흐름을 막을 방도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사진이 좋은 공부의 도구입니다. 사진 프레임이 더 넓게 제 생각을 가져가게도 하고, 때로는 더 깊이 저의 의단(疑端)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윤PD께서 찾아 달라고 했던 그 사진 속에서는 제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버린 이미 십 수 년 전의 모습이 인생은 찰나임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 지금이 과거가 되었을 때, 그 흘러간 시간속에 박제된 내 모습이 더 아름다운 오늘을 살아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세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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