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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약국의 셀프판매대에 진열된 장난감 비타민.(사진은 특정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한 약국의 셀프판매대에 진열된 장난감 비타민.(사진은 특정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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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기침이 심해 병원 처방전을 약국에 내밀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이가 떼를 쓰기 시작한다. 약을 조제하는 동안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에 딱 들어온 건 계산대 앞 진열대에 놓인 장난감 모양의 케이스에 담긴 비타민제였다.

"엄마, 나 저거 사줘! 저 뿡뿡이 말이야. 빨리 사주란 말야!"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짱구, 뽀로로, 파워레인저, 토마스 등 친숙한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비타민이 유혹하고 있다. 눈이 돌아갈 만도 하다.

아이가 있는 엄마, 요즘 약국 가는 일이 정말 힘들다. 이 곳이 약국인지 동네 문방구인지 완구점인지 구분도 못할 지경이다. 특히 소아과 인근 약국은 관련 제품만 모아 셀프판매대를 적극 활용, 아이들의 손이 잘 닿는 곳에 배치해 놓았으니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무슨 '어린이 전용'이라는 마크가 붙은 비타민은 왜 이리도 많은지…. 그것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말이다. 뽀로로, 뿡뿡이 같은 친숙한 캐릭터부터 시작하여 공룡, 불자동차, 토마스 기차 모형까지 진화를 거듭하더니 이젠 캐릭터 모형의 용기에 담긴 음료수까지 등장했다.

가뜩이나 아픈 아이 데리고 병원 가서 마음도 안 좋은데, 아이가 그거 하나 집어 들고 사달라고 떼쓰면 못 사준단 얘기 못하는 게 부모 아니겠는가. 결국 오늘도 처방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장난감 달린 비타민 진열대로 직행했다. 물론 감기약 값보다 장난감 값이 더 나왔다.

그렇다면 그 장난감 달린 비타민제는 과연 아이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 되는 것일까. 이 비타민을 둘러싼 의심의 문을 하나 하나 열어보자.

시중 약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장난감 달린 비타민제를 4천 원에 구입했다.
 시중 약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장난감 달린 비타민제를 4천 원에 구입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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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파니까 의약품?...뒷면에는 '캔디류'

'설마 슈퍼도 아닌 약국에서 파는데, 허접한 장난감으로 위장한 상술이겠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비타민 함유량이 한 번 먹을 양은 될지 모르나 그것도 그렇게 효과는 없어 보인다. 아이가 사달라고 하는 것은 비타민보다는 그것이 들어있는 '통(=장난감)'이다.

몇 천 원이나 하는 비교적 높은 가격대이고 약국에서 팔기 때문에 의약품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대부분은 건강보조식품에 가깝다. 이들 제품은 효과나 품질을 높이기보다는 포장을 달리하는 것 하나만으로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 부모들은 그 제품 유형이 '캔디류'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아픈 아이와 부모의 심리를 이용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에 '낚인' 것이다.

실제로 시중 약국에 진열된 수십 여종의 어린이 비타민제를 직접 살펴보니 원재료와 함량은 대동소이했다. 이 가운데 요즘 가장 많이 팔린다는 비타민을 약국에서 구입해봤다. 구입 가격은 4천 원, 구입한 포장지 겉면에 적힌 제품 유형은 '캔디류'였다. 비타민 함유를 겉면에 강조해 언뜻 보면 의약품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약국에서 파는) '어린이 비타민 사탕'이었다.

아이들을 유혹한 주범(?) 격인 완구를 살펴보니, 이것 또한 중국산이었다. 지난 4월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중국산 장난감 234개를 조사한 결과 10여 개 제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신경이 쓰였다.

혹시라도 신체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 물질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완구에 제조성분 표시는 없었다. 다만 국내의 한 시험기관을 통해 안전확인을 거쳐 자율안전확인신고를 했다는 사실만 명시되어 있었다.

시중 약국에 진열된 수십 여종의 어린이 비타민제들은 원재료와 함량이 대동소이했다.
 시중 약국에 진열된 수십 여종의 어린이 비타민제들은 원재료와 함량이 대동소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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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중국산...인공감미료와 합성첨가물은 기본

원재료와 함량을 자세히 살펴보니 인공감미료로 아스파탐을 사용하고 있었다. 설탕에 비해 감미도가 200배 이상 높은 이 성분은 인체 유해 여부에 대해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뇌를 공격하는 흥분 독소로 알려져 있다. 사용기준은 식품첨가물공전에 따르면 빵류, 과자 및 이의 제조용 믹스에서는 0.5% 이하로 되어 있지만, 구입한 제품에는 정확한 함량이 표시되지 않았다.

또 식품의 점착성 및 점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식품첨가물인 스테아린산마그네슘도 사용됐다. 이 첨가물은 스테아린산 및 팔미틴산의 마그네슘염의 혼합물로서 물, 알코올, 에테르 등에 녹지 않는다. 1일 섭취 허용량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거나 연구결과가 부족하여 미설정되어 있으나 사용기준은 1% 이하이어야 한다.

일일섭취허용량(ADI)
일생 동안 매일 먹더라도 유해한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체중 1㎏당 1일 섭취허용량

특히 이들 제품은 아이들의 기호에 맞춰 젤리나 정제 형태로 출시되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감미료와 향료 등 화학성분이 포함된 제품은 유해성 여부를 떠나 장기간 섭취하면 의존성이 높아져서 음식을 골고루 잘 먹지 않으려는 경향이 높아진다. 특히 인공감미료와 구연산, 사과산 등 인공산미료가 첨가된 제품의 경우, 장시간 노출 시 치아 표면에 손상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한 내과전문의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비타민제가 의약품으로 허가된 제품이라면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일일섭취허용량(ADI)을 초과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건강보조)식품이나 캔디류로 판매할 경우 아스파탐 등 인공감미료의 구성성분이 자율신고 사항이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캔디류 등은 식약청에서 모니터링을 통해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린이의 경우 인공감미료 등의 섭취가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약국, 슈퍼, 문구점, 쇼핑몰에서 구입한 비타민의 성분 비교.
 약국, 슈퍼, 문구점, 쇼핑몰에서 구입한 비타민의 성분 비교.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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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슈퍼, 문구점, 쇼핑몰에서 구입한 비타민들.
 약국, 슈퍼, 문구점, 쇼핑몰에서 구입한 비타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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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서 파는 것과 별 차이도 없는데 가격만 비싸 

그러면, 약국에서 파는 장난감 달린 비타민과 동네 슈퍼에서 파는 비타민 맛 캔디류는 함량과 원재료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실제로 인근 슈퍼와 학교 앞 문구점에서 비슷한 유형의 제품을 구입했다. 모두 6개 제품의 비타민 함량은 1회 제공량 기준으로 대부분 1일 권장량(100mg)을 넘는 수준이었지만, 약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조금 더 함량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비타민이 성장기 아동에게 좋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중 수용성인 비타민C는 적정량 이상이 넘어서면 체내에 저장되지 않고 배설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므로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원재료와 함량을 살펴보니 감미료의 종류나 첨가제의 함량도 비슷했으며, 오히려 슈퍼와 문구점에서 파는 제품이 첨가제의 종류가 더 적은 경우도 있었다.

결국 약국을 믿고 아이에게 비타민도 보충하고, 장난감으로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구입한 비타민제는 문방구 사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제품 가격은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캔디류는 200원~500원 선, 슈퍼 판매 제품은 700원에 판매되고 있는 반면 약국에서는 2000~4000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유사제품도 약국보다 더 싼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했다.

한편 식품의약청안전청 관계자는 "(약국에서 파는 장난감 달린 비타민제는) 의약품인 비타민제가 아니라 확실히 사탕이다. 비타민이 일부 들어 있는 사탕일 뿐이다. 약국이 아니라 슈퍼나 문방구에서도 다 팔 수 있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장난감, #비타민,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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