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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67세는 어떤 나이일까? 앞으로 15년 후 내 나이 67세 때 나는 어떨까? 물론 마음에 품고 소망하는 모습은 있으나 솔직히 구체적인 그림이 잘 안 떠오른다.

'재분, 혜숙, 옥란' 셋은 67세 동갑내기 여고동창생이다. 나이로는 분명 노인인구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흔히 떠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다. 얼마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된 재분의 초대로 바닷가의 한 콘도에 오랜만에 셋이 모인다.

연극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의 포스터
▲ 연극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연극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의 포스터
ⓒ 극단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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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 추억이 쏟아져나오나 했더니 곧바로 '재분' 남편의 사망원인이 음독자살이며, 그 원인이 된 것이 바로 재분의 바람이었음이 재분 자신의 고백으로 드러난다. 40년 넘게 이어져온 우정이라 이야기를 이리저리 재고 비틀고 가리고 꾸밀 것도 없다.

식구들 굶기진 않겠다 싶어 교사와 결혼한 재분. 그러나 평생을 자기만 옳다며 큰 목소리로 살아온 독선적인 남편. 부부는 은퇴 후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게 되고, 재분은 그곳에 일하러 온 전직 교사이며 시인인 '한식'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

한참 전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잃고 혼자 살고 있는 '혜숙'. 지나칠 정도로 성실했던 남편 덕에 노후생활비 걱정은 없으나, 텅빈 가슴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일과.

남편이 파킨슨병으로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어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는 '옥란'. 금슬좋은 부부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병든 남편 수발이 도대체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다. 아내 없인 살 수 없는, 이제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남편에 대한 연민으로 버티고 있다.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과 서로 완전하게 교감하는 성(性)에 대해 재분이 털어놓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기 맘대로 공격적으로 짐승처럼 달려드는 남편으로 인해 단 한 번도 극치감을 맛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고백, 처음부터 상대의 감정에는 아랑곳 없이 자기만 만족하고 끝내버려 느낀 실망감,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서니 놀라서 뒤로 빼던 남편 등등.

손길 하나, 숨결 하나, 말 한 마디에도 상대를 향한 배려와 부드러움과 위로가 들어 있는 한식과의 교감을 가감없이 자랑하는 재분에게 두 친구는 여러 번 묻는다.

"그 나이에 그게 돼?"

그것은 섹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기다려지고, 만나면 가슴이 떨리고, 살아온 삶을 들려주며 자연스레 웃음과 눈물을 나누고, 그러다 그것이 다름아닌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가슴이 시키는 대로 손을 내밀고 서로를 안게 되는 그 모두를 담고 있다. 67세에도 그 모든 게 가능하냐고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재분에게서는 '그게 가능하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남은 것은 재분과 한식이 함께할 앞날의 계획뿐. 그러나 아내와의 사별 이후로 어떤 여자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한식은 도망치려 하고, 재분 또한 '이 나이에...'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그러나 친구 옥란은 '사랑하면 왜 꼭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냐'며, 함께 있어주는 사랑, 위로가 되어주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따뜻한 포옹...

산울림 소극장 입구
▲ 연극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안내판 앞에서 산울림 소극장 입구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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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때 무척 궁금했다. 내가 30대였을 때 50대 선배에게 직접 묻기도 했었다. 50대 동년배의 배 나오고 펑퍼짐한 아저씨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냐고. 혹시라도 그런 남자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낀 적이 있냐고. 그게 가능하냐고. 당시 선배의 대답은 어이 없을 만큼 간단했다. "니가 내 나이 돼봐라. 그럼 알게 될 걸!"

이제 내가 당시 그 선배의 나이가 되었지만 잘 모르겠다. 물론 아직 내 눈과 마음을 빼앗는 적당한 상대를 못 만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다시 사랑이 찾아오고 그에게 마음과 몸을 완전히 열게 될 거라는 상상이 잘 안 된다. 내 인생에 맹목(盲目)의 사랑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했던 전력이 있던 터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연극의 제목, 극 중 한식 혼자 혹은 여고동창 셋이 같이 부르는 노래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는 참으로 중의적이다.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벗이여 꿈 깨어 내게 오라"인데, 여기서 깨어야 할 꿈은 인생에 다시는 사랑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지레 단정지어 버린 꿈인지, 아니면 다시 또 빠져든 사랑의 꿈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 둘 다일까.

토요일 낮 공연이어서인지 중년과 노년 여성관객 훨씬 많았는데 남성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열심히 먹여 살려도 결국 마지막에 저런 소리밖에 못듣는구나' 하면서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여성이 느끼는 결혼생활과 부부관계의 속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아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그걸 무시하고 살다보니 노년의 삶이 삐그덕거린다.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 보내는 남자와 여자 모두 행복하지 않다.

같이 잘 늙어가는 길은 귀기울임과 관심과 배려와 소통에 있다. 집에 오니 빈집에서 늦은 낮잠에 빠진 남편의 귀밑머리가 어느 새 하얗다.

덧붙이는 글 | 연극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윤대성 작, 임영웅 연출 / 출연 : 손봉숙, 이현순, 지자혜, 윤여성, 박윤석) ~10월 9일까지, 소극장 산울림, 02-334-5915



태그:#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노년, #노인, #할머니, #여성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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