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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날 밤(9월 12일), 정원으로 나가니 한가위 보름달이 산위에 떠있습니다. 태풍에 비가 올 거라는 기상 예보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보름달이었습니다.

 

갑자기 마주친 보름달에게 나는 무엇을 어찌해야할 지를 몰랐습니다. 함께 있던 아내가 소원을 말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딱히 달에게 도움을 구해야할 구체적인 소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명절에도 아들 식구들을 보지 못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외로움에 대해 잠시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느닷없이 작년에 나를 '아버지가 같은, 다른 엄마의 형제 같다'고 했던 토론토의 배다른 형제(?)가 생각났습니다.

 

조나단은 모티프원에 단지 하룻밤을 묵은 여행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몇 시간의 얘기를 나눈 후 나를 이복형제라 불렀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그의 파트너(남편이라고 해야 할지 부인이라고 해야할지…….)인 웨이드Wade의 메일로 시작되었다.

 

예약문의,

안녕하세요. 저희는 캐나다에서 온 두 여행자입니다. 한 사람은 작가인데, 댁의 집에서 머물고 싶습니다. 하룻밤 유숙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될지요? 가능하다면 알려주세요.

고맙습니다.

웨이드

 

극히 사무적인 메일로 저는 조나단Jonathan과 웨이드Wade와 접촉했습니다만 그들이 모티프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체크인도 하지 않은 체 서재에서 얘기로 보냈습니다.

 

 

저도 여행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그들과 어떤 여행지에서 만난 입장으로 대화를 즐겼습니다. 세계의 어느 오지나 다국적 기업의 상표들이 침투하여 지역적 특성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함께 안타까워했습니다.

 

3시간쯤의 얘기 뒤에 조나단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이복형제 같아요. 아마 저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어떤 분과 사랑에 빠지고 그 분이 아버지 몰래 당신을 낳은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의 생각이 이렇게 같을 수가 없어요."

 

두 사람은 헤이리를 한 바퀴 돌고 서점에 들러서 '엄마 마중'이라는 동화책을 한 권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림만으로도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한글로 된 내용이 궁금해서 주위에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서 한글로 내용을 번역해 달라고 했습니다."

 

조나단은 동화책의 한글 텍스트 아래에 영어로 모든 내용을 적어왔습니다. 주인공 꼬마의 귀여운 인형도 함께 사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 자정이 넘을 때까지 또다시 수다로 보냈습니다. 조나단은 자신들의 사생활까지도 모두 얘기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부부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게이를 용인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당신에게는 얘기하고 싶군요. 당신은 예술가이기도 하므로 우리를 이해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웨이드와 저는 LA에서 함께 저널리즘을 전공했습니다. 웨이드는 LA의 공중파 방송국에 뉴스리포터가 되었고 저는 칼럼을 쓰는 작가로 지내고 있어요. 주로 각국의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매체에 기고를 합니다.

 

우리 둘은 대학 1학년 때 만나자 마자 일주일 만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바로 동거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함께 살고 있습니다.

 

웨이드는 뉴스리포터로 일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알려질까 몸씨 불안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비교적 동성애자에 대해 엄격한 편입니다. TV에서 매일 보던 사람이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지면 좋은 가십거리가 되거든요.

 

우리는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웨이드의 명성이 손상되는 것을 염려하기보다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방송국일을 그만두고 함께 웨이드의 나라인 캐나다로 갔습니다. 캐나다는 동성애자에 대해 훨씬 관대하거든요. 토론토에 정착해서 웨이드는 홈오토메이션 회사를 냈고 저는 글을 쓰고 있지요.

 

저의 부모님은 말레이시아에 사세요. 아버지는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을 은퇴하셨고 어머님은 인도분인데 아버지께서 간청해서 결혼을 했지요. 양가에서 반대를 하셨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았습니다. 저의 부모님 두 분다 웨이드와 저의 관계를 알고 계시지만 동성애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자주 말레이시아의 부모님을 방문하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은 웨이드를 친구로만 받아들여요.

 

 

웨이드의 부모님은 몬트리올에서 부자로 살고 계세요. 우리는 종종 웨이드의 부모님을 방문하지요. 웨이드의 부모님 역시 우리를 커플로 받아들일 수는 없데요. 단지 저를 웨이드의 형제로 대해주세요. 하지만 양가 부모님 모두다 우리의 입장을 모두 알고 계시고 용인하고 계십니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복잡하고 사실 그대로 내놓을 수 없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조나단과 웨이드가 게이 부부라는 사실의 고백이 내심 놀라움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게이클럽에서 하룻밤 이슬을 피해본 적도 있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거리로 유명한 토론토의 Church Wellesley Village에서 한나절 그들과 함께하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갖기 위한 기회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웨이드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아이패드로 토론토 자기집의 불을 이곳에서 켜고, 끄고, 커튼을 열고 닫으며 난방을 켜고 끄는 시연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조나단은 방명록에 제게 남기는 글을 썼습니다. 짧은 한국의 여행일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음식을 통해 한국인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한가위 만월을 보면서 배다른 형제, 토론토의 조나단을 생각했습니다.

 

이안수 선생님께

당신과 몇 시간만 함께 지내고도. 마치 같은 아빠 다른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의 호기심, 열린 마음, 예술적 기질에 굉장히 영감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아주 쉽고, 관대하게 나누세요.

 

제가 음식문화를 통해서 그 사람들의 문화와 사람에 관해 다 알 수 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세요? 제가 한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받은 인상을 말씀드릴게요.

 

제가 한국에서 머문 기간이 짧고, 제 경험이 상대적으로 얕을 수 있기 때문에 반찬, 한 가지에 대해서 말해볼께요.

 

반찬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굉장히 많은, 조금한 양의 반찬들이 고되게 하나하나 손으로 하는 예술적 기교로, 선조들께 어렵게 얻은 전통과 지혜에 대한 존경으로 준비되죠. 한 예로 발효과정을 들을 수 있어요. 좋은 박테리아를 기르는 발효과정이 매운 음식도 쉽게 소화 할 수 있도록 돕지요.

 

짜고, 달고, 쓰고, 매운맛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인생은 복잡하고, 인간의 경험은 많은 감정들과 맛들의 조화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반찬을 통해서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마음씨가 좋은지 알 수 있어요. 무엇보다 반찬은 공짜고 무제한이잖아요. 그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도 가장 기본적인 밥이라는 음식으로 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어요.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로 한국 사람과 안수선생님의 마음씨 일 거예요. 그리고 시장에서 상인들조차도 제가 아무것도 사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음식을 나눠줬던 일도요.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방명록 3페이지나 쓴 거 용서하세요.)

 

토론토나 말레이시아에 꼭 오셔서 같이 지내요!

 

조나단 왕 드림.

 

덧붙이는 글 | -관련글 바로가기 | 동성애 클럽에서의 첫날밤
http://motif_1.blog.me/30105613673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Church Wellesley Village |www.churchwellesleyvillage.ca 


태그:#추석,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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