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시간은 이곳에서 멈췄다북쪽 로키에서 세월은 정말 강물처럼 흐른다. 북쪽 로키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이 된 지역이다. 아이다호, 몬태나, 와이오밍 등 로키가 종단하는 이 곳에서 시간은 더 없이 여유롭게 인생을 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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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 강물 옐로스톤 강. 몬태나, 아이다호, 와이오밍 주 등을 흐르는 강물의 흐름은 세월을 낚을 듯 유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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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은 억겁의 세월을 머금고 있다. 만년설들이 녹아 내려 만들어진 산 발치의 호수들도 똑같은 장구한 세월을 품 안에 담고 있다. 물줄기는 산 아래까지는 급전직하로 쏟아지지만, 이후론 유유하게 평탄 고원을 돌아 나온다.
로키는 대륙의 분수령이다. 물줄기들은 서쪽으로는 콜롬비아 강으로, 동쪽으로는 미주리 강으로 흘러 들어 제 갈 길을 간다. 북 로키를 지배하는 시간은 분초가 아니다. 이 곳에서는 아마 1000년이 우리네 1초쯤일 게다. 기껏해야 100년을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그래서 사실상 이 곳에서는 멈춰선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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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로스톤 호수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충청남도보다 면적이 약간 넓다. 이 공원 안의 옐로스톤 호수는 대전 광역시보다 수표 면적이 약간 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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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와 나는 이 곳에서 '생각의 옷장'을 정리했다. 뒤죽박죽 섞인 생각들, 특히 서로에 대한 엉클어진 인식을 차곡차곡 접고 개서, 원래 저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으려 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몸의 균형을 잡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시간에 휘둘리는 공간에서는 제 정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춘기, 그것도 엄마 없이 외국에서 보내야 했던 어린 시절 윤의는 두말 할 것 없이 불안정했다. 나 역시 가파른 시간을 보내야 했다. 흔히 인생의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40대, 뒤돌아보면 갈팡질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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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티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의 산들이 호수 너머로 보인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바로 남쪽에 있는데, 신비한 영산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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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국립공원과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에서 보낸 이틀은 우리 부자에게 멈춰진 시간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는 초겨울을 연상시켰지만, 우리들의 사고는 시간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다.
"저기 불탄 나무들 보이지, 저게 대자연의 순환이라는 거 아니." 나는 듬성듬성 머리 숱이 빠진 자리처럼 생긴 옐로스톤의 산비탈을 가리키며 윤의에게 물었다. 옐로스톤에는 수십m 길이까지 자라는 롯지폴 소나무들이 많다. 이들은 보통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단위로 자연발화에 의해 타버리는 운명이 되곤 한다.
'꼭 꺼야 할 불이 아니네'... 옐로스톤의 자연 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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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산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의 산 봉우리 가운데 하나. 산꼭대기 부근에는 한 여름에도 녹지 않는 눈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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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사람들은 산불을 끄려 애썼다. 적잖은 소방관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십 년 전 그게 꼭 꺼야 할 불이 아니라 걸 알게 된 뒤부터는 더 이상 적극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옐로스톤에서 자연 발화는 종종 어미 나무가 새끼 나무를 탄생시키는 대자연의 극적인 이벤트이다.
롯지폴 소나무의 솔방울은 어른 주먹 2개보다도 더 클 정도다. 게다가 송진이 얼마나 많은지 씨앗들은 솔방울이 땅에 떨어져도 싹을 틔우기 어렵다. 송진 속을 빠져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산불이 나면 송진이 녹고, 거기서 씨앗들은 비로소 세상으로 나온다. 불에 탄 어미 나무들의 재는 이들이 자라는 자양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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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지폴 소나무 산불을 경험한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산비탈. 죽은 어미 나무들의 재를 양분 삼아 어린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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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폴 소나무들의 말없는 가르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롯지폴 소나무들은 하늘을 찌를 듯 키가 크지만 가지를 옆으로 길게 뻗지 않는다. 큰 그늘을 만드는 어미 나무 아래서 새끼 나무들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어리석게도 많은 부모들이 애정이란 이름으로 큰 그늘을 만들고, 새끼 나무들은 마음껏 햇빛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간다. 나도 아마 십중팔구는 어리석은 어미 나무 축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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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페이스풀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 가운데 하나인 올드 페이스풀. 뜨거운 물이 땅 속에서 지상 수십미터까지 간헐적으로 솟아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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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북문을 빠져 나와 옐로스톤 강을 따라 북쪽으로 달려갈 즈음 내 머릿 속은 새로 포맷한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처럼 넉넉해져 있었다. 아집과 편견, 오만, 분노, 오해는 지워지고, 생각의 옷장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히 정돈돼 있었다. 눈을 돌려 윤의의 얼굴을 보니, 여름철 내내 극성을 부렸던 여드름이 잦아들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신경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우리 부자에게 북 로키는 새로운 시공간을 제공한 타임머신이었다. 최소한 우리는 둘에 관한 한 서로에게 조금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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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정원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북쪽 석회암 지대. 온천수에 녹아내리면서 독특한 풍광이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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