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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나들이는 자유로워지고, 아무리 멀어도 몇 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교통의 반달로 이제는 반보기의 애틋함은커녕, 적지 않은 사람들은 추석연휴를 장거리 여행이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친정 나들이는 자유로워지고, 아무리 멀어도 몇 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교통의 반달로 이제는 반보기의 애틋함은커녕, 적지 않은 사람들은 추석연휴를 장거리 여행이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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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오신 손주희 부부께서 오늘 천천히 헤이리를 소요하다가 그리고 모티프원의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해거름에 서울로 돌아가셨습니다.

결혼 8개월의 신혼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두 분은 내일 서울의 시댁으로 가셔서 차례를 모시고, 다시 밤 열차로 친정인 포항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하셨습니다.

시댁과 친정을 모두 오가야하는 일정이 새댁에게는 고된 행군일 수 있습니다.

#2

오늘 제이미(Jaime Dugan)양이 오셨습니다. 보스톤이 집인 분으로 1년 전에 한국에 오셔서 영어교육회사의 교재를 집필하고 계신분입니다.

28살의 제이미양은 6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된 분으로 한국에는 처음 오셨습니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어디쯤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를 찾고 싶지만 더 이상의 단서가 없으므로 아직 친부모님의 생사조차 알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맞는 이번 추석, 이 분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3

추석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의례로 근친(覲親 시집간 딸이 친정 어버이를 뵙는 것)이 있습니다.

여성의 외출이 금기시된 사회에서 출가한 딸의 친정 나들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사일 뿐만아니라 농사일을 병행했던 며느리의 농번기 나들이는 엄두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반보기가 근친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추석이 지난 때에 며느리가 양가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푸는 방법이었지요.

하룻밤 친정에 묵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때의 반보기는 생각해보면 참 애틋한 풍습이었습니다. 약속한 날 한나절의 모녀상봉 후 다시 고된 시집살이의 시댁으로 보내야하는 친정어머니나 그리움이 채 풀리기도 전에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어머니를 돌아서는 딸의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4

신혼 8개월의 손주희 새댁의 경우는 서울과 포항을 오가야하는 일이 고된 일정이라 하드라도 친정에서의 하룻밤 지내는 일조차 불가능했던 반보기 때의 경우를 견주어보면 참 행복한 나들이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보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제이미양의 처지는 여전히 우리의 애틋함입니다. 기아나 고아를 우리 스스로 보듬을 개인적 인식이나 여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 사회적 상호부조의 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필요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으며 국가에서는 그에 대한 제도적 여건을 만드는 것을 외면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돈을 받고 해외로 내보냈던 '고아 수출국'의 오명에서 지금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국전생 이후 전쟁고아에 대한 대책으로 시작된 해외입양은 1960년대 중반이후 우리나라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입양에 대한 인식이나 대책은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책임회피를 했던 그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적 기준의 도덕심을 가진, 또한 남다른 능력을 갖춘 어른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와 조용히 자신을 버렸던 나라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귀성길로 정체되고 있는 추석 전날, 너무나 쾌활한 제이미양의 모습이 더욱 저를 더욱 죄스럽게 합니다. 반보기로 만나야했던 그 애틋함의 만남조차 불가능한 사람이 이웃해 있음을 기억해야할 중추절입니다.

'가족과 함께' 추석잘보내라는 제이미양의 인사가 어느때보다 큰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추석잘보내라는 제이미양의 인사가 어느때보다 큰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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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반보기,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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