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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스마트폰을 다방면으로 이용한다는 여대생 김수희(23)씨. 한 달 전, 친구들의 추천으로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아래 앱)을 내려 받았다. 모르는 이와 채팅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려 했던 그녀는 접속과 동시에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27남, 변녀 구함'
'조건만남할 여자~ 오빠가 용돈 줄게. 얼마에 할래?'

연결되는 대화상대의 상당수가 위와 같은 음성적 성매매를 제안했고, 결국 그녀는 '기분이 더럽다'는 혼잣말과 함께 앱을 지워버렸다.

심심풀이 혹은 건전한 만남의 목적으로 개발된 앱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용자들의 이용문화로 본연의 기능이 변질되고 있다
 심심풀이 혹은 건전한 만남의 목적으로 개발된 앱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용자들의 이용문화로 본연의 기능이 변질되고 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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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만남' 등과 같은 음성적 성매매는 조건만남 알선 성인사이트나 인터넷 채팅 서비스 상에서 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앱의 개발 및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워짐에 따라 음성적 성매매는 모니터를 넘어 손 안에 들어오게 됐다. 음성적 성매매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스마트'해지고 있는 셈. 사용자들은 강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평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위치·거리노출, 가입절차 간소화... 음성적 성매매 조장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가가라이브', '뻐꾸기 채팅', 'Comalong', 'Hi! There', 'Who's here', '1km'(가나다순) 등의 앱을 통해 불특정 대상과의 교류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위에 제시된 앱 중 '가가라이브'를 제외한 다른 앱들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나 3G·무선인터넷의 중계기 위치를 근거로 해 상대방과 자신의 거리를 표시해 줘 사용자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Hi! There'를 사용하는 최아무개(26)씨는 "앱 상에서 위치 노출이 갖고 있는 장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는 음성적 성매매를 조장할 수도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며 "가까이 위치한 사람에게 쪽지를 날리며 음성적 성매매를 요구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여성을 가장하고 진행한 대화의 내용. 랜덤채팅이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원빈이 될 수는 없다. 위 남성(흰색 말풍선)은 조건만남을 요구하며 '가격'을 끈질기게 물었다.
 기자가 여성을 가장하고 진행한 대화의 내용. 랜덤채팅이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원빈이 될 수는 없다. 위 남성(흰색 말풍선)은 조건만남을 요구하며 '가격'을 끈질기게 물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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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랜덤채팅의 기능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앱들은 가입절차가 매우 간소화돼 있기 때문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음성적 성매매의 발생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실제 기자가 랜덤채팅 앱을 사용해 본 결과, 채팅상에서 10대 청소년 사용자들을 빈번하게 만날 수 있었고, 이 중 상당수가 '조건만남 등의 제안을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건전한 만남 혹은 심심풀이라는 개발 초기의 목적보다는 '음성적 성매매의 도구'로 변질된 랜덤채팅 앱. 기자는 이런 앱들의 사용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일회성 만남, 조건만남을 하는 대상들을 직접 만나 취재해 봤다.

낮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인천 주안역. 기자는 랜덤채팅 유사서비스를 사용해 이한나(가명·22)씨를 직접 만났다. 기자가 찾은 곳은 주안역 인근의 한 모텔. 모텔 안으로 들어가 303호의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안에 들어서자 한 여성이 객실 내부에 있는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기자는 그녀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평소 채팅에서 만난 대상들하고 일회성 만남을 갖는 편이에요. 하지만 조건만남 같은 성매매는 하지 않아요. 채팅방 들어가면 앞뒤 가릴 것 없이 그런 제안을 던지는 남성 사용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솔직히 짜증나죠."

여성 사용자의 관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해 음성적 성매매를 시도하려는 일부 남성 사용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한심해 보여요. 그냥 손쉽게 어린 애들하고 한 번 '하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일부 여성 사용자들도 문제이긴 해요. 손쉽게 돈 벌려는 속셈 아니겠어요? 그냥 인터넷 채팅도 모자라 스마트폰으로도 그런 짓을 하게 되니 참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실제 '술 한 잔 하자'는 일회성 만남으로 모르는 이를 만났다가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치근덕거림'을 경험한 적이 종종 있다고 한다.

"인터넷 채팅 서비스는 회원 가입 조건이 있기 때문에 신고하면 쉽게 추적이 가능하잖아요.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한 랜덤채팅은 추적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좋은 뜻으로 만났다가 성폭행에 노출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위험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성적 호기심과 꼼수가 빚어놓은 일그러진 랜덤문화

그렇다면 랜덤채팅을 사용해 음성적 성매매를 시도하는 일부 남성 사용자들의 실태는 어떨까. 기자는 여성으로 가장해 남성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채팅 창에는 조건만남을 요구하는 남성 사용자들의 메시지들이 빗발쳤고, 기자도 이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등의 대화 태도를 취했다(관계를 요구하는 남성의 수도 많지만 이를 먼저 제안하는 여성도 더러 있기 때문에).

기자는 그 중 한 남성과 실제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선 랜덤채팅을 사용해 조건만남의 수락여부를 논한 다음 서로의 무료문자앱(카카오톡 등)의 계정을 교환했고 이를 사용해 약속장소, 조건만남 시간 등을 결정했다.

성적 호기심과 쉽게쉽게 '하려는' 꼼수. 여기에 스마트폰의 기술력까지 더해져 음성적 성매매에 탄력이 붙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성적 호기심과 쉽게쉽게 '하려는' 꼼수. 여기에 스마트폰의 기술력까지 더해져 음성적 성매매에 탄력이 붙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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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장소에 나타난 문아무개(23)씨는 기자가 기다리고 있던 장소에서 불과 10km 이내에 거주하고 있었다(랜덤채팅에 사용된 앱 '뻐꾸기 채팅'에서는 14km라고 표기). 기자가 약속장소에서 기다린 시간은 대략 20~25분가량. 스마트폰의 랜덤채팅 앱을 사용해 음성적 성매매가 이뤄지는 시간은 이처럼 매우 짧았다. 기자는 신분과 취재 목적을 밝히고 문씨와 대화를 시도했다.
"약 한 달 전에 랜덤채팅을 내 스마트폰에 내려 받았어요. 친구들이 심심풀이용으로 쓸 만하다고 해서 사용해 봤습니다. 친구들이 이런 앱을 통해 조건만남 등을 해봤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제가 이렇게 조건만남을 목적으로 실제 대상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성매매를 시도한 문씨. 그리고 성매매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되레 조건을 먼저 제시한 기자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만약 성매매가 실제 벌어지고 적발됐다면 문씨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기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처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약속장소에 나오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저는 신기해서 나와 봤어요. 일종의 호기심이랄까요? '정말 이런 것이 존재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씨는 '돈을 주고 성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하지 못했다. 이처럼 문씨의 사례는 음성적 성매매에 대한 호기심과 성욕 해소의 소위 '꼼수'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개발업체의 자체적 노력 절실..."여가부는 실태파악부터 제대로!"

일부 사용자들의 사용 문화도 문제겠지만 단순히 사용자만 나무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랜덤채팅 앱들의 개발 및 운영을 담당하는 업체 측의 대처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뻐꾸기 채팅'을 운영하는 모코플렉스 대표는 "앱 개발 초기에 이런 문제점들을 예상은 했지만 앱을 통한 수입 창출이 힘든 영세 개발자들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업체가 음란 사용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를 가한다면 사용자 수가 줄어 광고 수입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향후 업데이트 될 '뻐꾸기 채팅'의 구성. 모코플렉스 박나라 대표는 "기존 앱이 음침한 분위기를 준다는 평을 들었다. 앱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바꿨다"고 말했다.
 향후 업데이트 될 '뻐꾸기 채팅'의 구성. 모코플렉스 박나라 대표는 "기존 앱이 음침한 분위기를 준다는 평을 들었다. 앱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바꿨다"고 말했다.
ⓒ 모코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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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뻐꾸기 채팅', 'Hi! there', '1km' 등의 앱들은 ▲친구차단, 신고하기 등의 기능을 추가하거나 ▲랜덤채팅 시 동성 사용자들만 연결되게 하거나 ▲좀 더 밝은 색상과 캐릭터가 등장하는 디자인으로 업데이트하는 등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한 음성적 성매매를 근본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모코플렉스 대표는 "몇몇 업체들은 수입의 극대화를 위해 자체 정화 기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 앱 시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면 업체 스스로 깨끗한 사용 환경을 사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관련 정부부처 등 공적 분야에서의 감시와 단속 역시 절실하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기술 발전에 따른 성매매의 변화를 예상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한 음성적 성매매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며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이러한 성매매가 우리사회에 얼마나 퍼져있는지 실태파악 조차 못해 우려스럽다"고 여성가족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스마트 기술. 하지만 스마트 기술이 성매매까지 '스마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는 갖가지 음성적 성매매 가능성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사용문화 개선 ▲스마트폰 앱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개발 업체들의 노력 ▲관련 정부부처의 명확한 실태파악에서 출발한 감시 및 단속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태그:#성매매, #조건만남, #랜덤채팅, #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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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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